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초원 들쥐가 천적을 피하는 영리한 비법

등록 2022-03-14 14:45수정 2022-03-23 15:43

[애니멀피플]
천적 때까치 깃드는 대형 다발풀 갉아
포식 위험 줄여…‘생태계 엔지니어’ 구실
건조한 내몽골 초원에 서식하는 스텝밭쥐는 포식자인 때까치가 꼬이지 않도록 키 큰 식물을 제거한다. 보고몰로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건조한 내몽골 초원에 서식하는 스텝밭쥐는 포식자인 때까치가 꼬이지 않도록 키 큰 식물을 제거한다. 보고몰로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애피레터 구독신청하기 https://bit.ly/3kj776R

중국 내몽골의 건조한 평원에 드문드문 키 큰 풀이 서 있다. 이곳에 사는 스텝밭쥐는 포식자인 때까치가 근처에 나타나면 먹을 것도 아니면서 서둘러 이 풀을 제거한다. 스텝밭쥐는 코끼리처럼 ‘생태계 엔지니어’ 노릇을 하면서 잡아먹힐 위험을 줄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종 지웨이 중국 동북사범대학 박사 등 국제연구진은 내몽골에서 한 실험 연구를 통해 스텝밭쥐가 때까치로 인한 포식 위험을 줄이기 위해 먹거나 쓰지 않는 키 큰 풀을 죽이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때까치는 키 큰 식물에서 먹잇감을 찾고 잡은 먹이를 갈무리하는 습성이 있다. 붉은꼬리때까치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때까치는 키 큰 식물에서 먹잇감을 찾고 잡은 먹이를 갈무리하는 습성이 있다. 붉은꼬리때까치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밭쥐의 천적인 때까치는 볏과의 대형 초원 식물인 다발풀을 먹이를 탐색하는 횃대나 사냥한 먹이를 가시나 가지에 걸어 보관하는 저장소로 쓴다. 연구자들은 “밭쥐가 다발풀을 제거함으로써 공중 포식자를 감시할 시야를 확보하고 포식자가 접근할 요소를 없애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더크 샌더스 영국 엑시터대 박사는 “주변에 때까치가 나타나면 밭쥐는 키 큰 풀을 엄청나게 줄인다”며 “그렇게 하면 사냥터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고 본 때까치가 얼씬거리는 일도 확 준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쥐가 다발풀을 제거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드는데 그렇게 하는 걸 보면 풀을 자르는 행동이 생존율을 크게 높이는 것임이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현장 실험 얼개. (A) 키 큰 다발풀이 듬성듬성 자라는 초원 (B) 다발풀의 뿌리를 끊기 위해 밭쥐가 판 굴(화살표) (C) 스텝밭쥐 (D) 스텝밭쥐를 잡은 때까치 (E) 때까치가 밭쥐를 잡아 다발풀 줄기에 걸어놓았다. (F) 밭쥐가 밑동을 갉아 말라죽는 다발풀. 종 지웨이 외 (2022)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현장 실험 얼개. (A) 키 큰 다발풀이 듬성듬성 자라는 초원 (B) 다발풀의 뿌리를 끊기 위해 밭쥐가 판 굴(화살표) (C) 스텝밭쥐 (D) 스텝밭쥐를 잡은 때까치 (E) 때까치가 밭쥐를 잡아 다발풀 줄기에 걸어놓았다. (F) 밭쥐가 밑동을 갉아 말라죽는 다발풀. 종 지웨이 외 (2022)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그물로 특정 지역을 덮어 때까치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자 밭쥐도 다발풀을 더는 쓰러뜨리지 않았다.

때까치 본 밭쥐는 다발풀의 줄기와 잎 밑동을 갉고 주변에 굴을 파고 들어가 뿌리를 잘랐다. 이 식물은 건조기후에 적응해 최고 2m 깊이까지 뿌리를 내린다.

연구자들은 이런 행동을 하는 스텝밭쥐를 “생태계 엔지니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생태계 엔지니어란 숲의 나무를 쓰러뜨려 초원을 유지하는 코끼리나 사막에 샘을 파는 야생말과 당나귀 등 생태계의 다른 많은 종이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대형 초식동물을 가리킨다.

대서양의 초식 돔 드림피시. 해초 꼭대기 층을 뜯어먹어 해초밭을 망치는 성게가 포식자의 눈에 잘 띄게 만드는 생태계 엔지니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대서양의 초식 돔 드림피시. 해초 꼭대기 층을 뜯어먹어 해초밭을 망치는 성게가 포식자의 눈에 잘 띄게 만드는 생태계 엔지니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대서양 돔의 일종이 해초 숲의 꼭대기를 뜯어먹어 결과적으로 해초 숲을 교란하는 성게가 포식자에 쉽게 잡아먹히도록 하는 소형 초식동물의 사례도 밝혀지고 있다. 생태계 엔지니어가 서식지의 다른 종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자기 자신의 이익(안전)에 기여하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비단털쥣과에 속하는 스텝밭쥐(브란트밭쥐)는 중국·몽골·러시아에 서식하는 설치류로 땅속에 굴을 파고 무리생활을 한다. 한 번에 7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연간 4∼5번 번식해 환경이 맞으면 수백만㏊ 면적에 폭발적으로 번성해 목초지를 잃은 농민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종 지웨이 박사는 “이번 연구는 목초지의 밭쥐를 관리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키 큰 다발풀을 유지하거나 새로 심어 때까치를 불러들여 밭쥐 밀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인용 논문: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2.02.07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1.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2.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3.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4.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5.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