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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초식공룡, 수십 킬로 걸쳐 씨 뿌리는 ‘농부’였다

등록 2021-01-14 15:51수정 2021-01-15 09:45

[애니멀피플]
소철 등 열매 통째로 삼킨 뒤 배설물과 함께 ‘파종’…트리케라톱스가 ‘최고 농부’
현생 코끼리처럼 중생대 초식공룡 트리케라톱스는 식물의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생태계 엔지니어’ 구실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현생 코끼리처럼 중생대 초식공룡 트리케라톱스는 식물의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생태계 엔지니어’ 구실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트리케라톱스 등 중생대 초식공룡은 열매와 함께 삼킨 소철 등의 씨앗을 멀리 떨어진 곳에 배설물과 함께 떨어뜨렸다. 초식공룡이 씨앗을 확산한 범위는 수십 ㎞에 이르러 현생 코끼리처럼 ‘생태계 엔지니어’ 구실을 했을 것이란 연구결과가 나왔다.

코끼리는 큰 나무를 뿌리째 뽑는 숲의 파괴자이지만 동시에 초원이 숲으로 바뀌는 것을 막아 누, 영양, 얼룩말 등 초식동물의 서식지를 지키기도 한다. 수십 년 동안 나무에 축적된 칼슘과 미네랄 등의 영양물질을 초원으로 되돌려보내는 양양분 순환 기능도 한다. 코끼리를 생태계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초식공룡도 중생대 생태계에서 코끼리와 같은 일을 했을까. 화석 증거는 그럴 가능성을 보여준다. 공룡의 배설물 화석과 더 직접적으로 공룡의 뱃속에서 식물의 씨앗이 종종 발견된다.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 초식공룡 이사베리사우라의 위장(아래 고동색)에는 소철 등 다양한 중생대 식물 씨앗이 온전한 상태로 들어있었다. 살가도 외 (2017) ‘사이언티픽 리포츠’ 제공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 초식공룡 이사베리사우라의 위장(아래 고동색)에는 소철 등 다양한 중생대 식물 씨앗이 온전한 상태로 들어있었다. 살가도 외 (2017) ‘사이언티픽 리포츠’ 제공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된 쥐라기 조반목 공룡 화석은 최근의 사례이다. 레오나르도 살가도 아르헨티나 리오 네그로-코니세트 국립대 고생물학자 등은 2017년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 새로 발견된 이사베리사우라의 뱃속에서 다량의 온전한 식물 씨앗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룡의 장내 물질에는 소철의 씨앗도 들어있었는데 거죽의 과육과 그 밑의 단단한 껍질 그리고 가장 안쪽의 핵과까지 3개 층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 공룡의 치아 형태는 소철 씨앗의 과육만 먹고 그대로 삼키는 현생 코끼리의 것과 유사하다”며 “과육 밑의 단단한 껍질은 씨앗이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씨앗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한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소철의 과육에는 고농도의 사이카신이란 유독성 발암물질이 들어있는데 초식공룡은 아마도 이 독소를 분해하는 효소를 생산하는 미생물을 간직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공룡시대 초기에는 소철과 은행나무, 침엽수가 많았고 후기에는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이 늘었다. 공룡이 이들 식물을 통째로 또는 부분적으로 삼킨 뒤 배설물과 함께 씨앗을 떨어뜨린다면 식물의 확산에 기여했을 것이다.

거대한 초식공룡인 다양한 용각류 공룡 상상도. 이들은 다량의 식물을 먹었지만 이동 속도가 느려 중형 초식공룡보다는 씨앗 확산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거대한 초식공룡인 다양한 용각류 공룡 상상도. 이들은 다량의 식물을 먹었지만 이동 속도가 느려 중형 초식공룡보다는 씨앗 확산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문제는 과연 얼마나 멀리 씨앗을 옮겼느냐인데 화석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다. 조지 페리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교수는 다양한 초식공룡의 체중 자료로부터 이들의 이동 속도와 배설 빈도 등을 모델링 해 씨앗 확산 거리를 추정했다.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페리 교수는 “초식공룡은 적어도 현생 대형 초식동물만큼 식물 씨앗을 멀리 퍼뜨렸을 것”이라며 “공룡의 먹이 식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영양가가 낮은 곳에서 공룡의 씨앗 퍼뜨리기는 생태계에서 큰 구실을 했을 것”이라고 논문에 적었다.

흥미롭게도 그의 계산을 보면 거대 초식공룡보다는 중형 공룡이 씨앗을 더 멀리 퍼뜨리는 것으로 나온다. 큰 공룡이 식물을 뱃속에 오래 보관하지만 속도가 느려 먼 거리를 이동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무게 80t의 아르겐티노사우루스는 시속 7㎞로 이동하지만 무게 8∼10t인 중형 초식공룡인 트리케라톱스는 시속 24㎞까지 달릴 수 있다. 이 모델을 보면 씨앗을 가장 멀리 퍼뜨리는 중생대 최고의 ‘농부’는 트리케라톱스와 몸무게가 6∼8t인 스테고사우루스이다.

트리케라톱스와 함께 씨앗 확산 능력이 뛰어난 초식공룡 스테코사우루스. 런던 자연사박물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트리케라톱스와 함께 씨앗 확산 능력이 뛰어난 초식공룡 스테코사우루스. 런던 자연사박물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페리 교수는 “이들 중형 공룡은 평균적으로 4∼5㎞ 거리에 씨앗을 퍼뜨리지만 드물게는 그 거리가 30㎞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이는 무게 6∼7t으로 현생 육상 포유류 가운데 가장 큰 아프리카코끼리와 비슷한데 이 코끼리가 씨앗을 퍼뜨리는 거리는 보통 수 ㎞ 길게는 60㎞에 이른다. 그는 “이런 계산과 추정은 화석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실제로 공룡이 배설한 씨앗이 싹텄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인용 논문: Biology Letters, DOI: 10.1098/rsbl.2020.0689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rep4277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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