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행동을 조사하기 위해 목에 위성추적 목걸이를 걸고 코에 중력 센서를 삽입한 아프리카코끼리. 폴 메인저 제공.
“먹고 자손 남기고 먹히지 않는 것은 동물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잠들면 이 모든 걸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잠을 자지 않아도 죽는다.”
잠은 현대 과학의 가장 큰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다. 폴 메인저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교 교수 등은 이런 잠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야생 아프리카코끼리의 현장연구에 나섰다.
덩치가 큰 동물일수록 잠을 짧게 자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중이 3000∼5000㎏인 성체 아프리카코끼리가 얼마나 오래 자며 그러면서도 복잡한 인지능력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였다.
연구자들은 코끼리의 가장 활동적인 부위인 코에 중력 센서를 삽입하고 목에 위성추적 목걸이를 달았다. 수면 여부를 알려면 뇌에 뇌파 측정기를 삽입해야 하는데 시술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코를 5분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잠든 것으로 가정했다.
한 달 동안의 측정 결과는 놀라웠다. 2017년 과학저널
‘플로스 원’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야생 코끼리가 하루 평균 2시간밖에 자지 않으며 그것도 거의 서서 자고 전혀 잠을 자지 않는 날도 더러 생긴다고 밝혔다.
메인저 교수는 “야생에서 저칼로리의 먹이를 하루 300㎏ 먹으려면 잘 시간이 거의 없다”고 전문가 매체
‘컨버세이션’에 기고한 글에서 밝혔다. 실제로 야생 코끼리는 하루 17∼18시간 동안 먹는다.
무리를 이끄는 암컷 지도자 코끼리는 포식자나 밀렵꾼, 발정기 수컷을 회피하기 위해 사나흘에 한 번 눕고 밤새 걷기도 한다. 이렇게 적게 자면서 어떻게 장기 기억 능력을 보유하는지는 수수께끼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조사 대상인 코끼리 두 마리는 모두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 암컷이었다. 그만큼 부담도 크다. 하루 평균 2시간의 수면도 주로 서서 잤다. 덩치 큰 코끼리가 누워 있다가 서는 데만 몇 초가 걸린다.
그렇지만 3∼4일에 한 번은 누워서 1시간쯤 잤다. 연구자들은 “렘(REM)수면을 위해서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안구를 빠르게 움직이는 얕은 잠인 렘수면 동안은 근육이 긴장하기 때문에 서 있을 수가 없다.
메인저 교수는 “코끼리는 뛰어난 장기 기억력을 보유하지만 렘수면은 사나흘에 한 번밖에 안 잔다”며 “이는 렘수면이 장기 기억을 형성한다는 기존 이론이 맞지 않을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코끼리들은 잠을 전혀 자지 않기도 했다. 한 달 새 각각 사흘과 이틀을 잠들지 않았고 밤새 30㎞를 이동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코끼리들이 포식자인 사자의 공격을 받았거나 밀렵꾼 혹은 발정 난 수코끼리를 피하려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육장에서 누워 자는 동안 새끼에 젖을 먹이는 아시아코끼리. 코르둘라 가레피, 취리히 동물원 제공.
그렇다면 야생의 거친 환경이 아닌 사육상태에서 코끼리는 ‘푹잠’을 잘까. 기존 연구에서 사육하는 코끼리는 하루 4∼6시간을 자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로리가 많은 먹이를 넉넉하게 받고 포식자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사육 코끼리를 대상으로 체계적으로 조사한 결과는 달랐다. 마르쿠스 클라우스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 등이 유럽 동물원 코끼리 10마리의 수면 행동을 조사한 결과가 과학저널 ‘주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렸다.
걱정거리가 없는 사육장 코끼리의 평균 수면 시간은 3시간 남짓이었다. 그런데 매일 8시간 가까이 자는 늙고 장애가 있는 코끼리 1마리를 제외하면 평균 수면 시간은 2시간 반으로 줄어들어 야생 코끼리와 비슷했다. 절반인 5마리의 수면 시간은 2시간이 안 됐다.
사육 코끼리는 대개 누워서 잤지만 2∼3차례에 나눠 토막잠을 잤다. 앞선 연구에서 야생 코끼리도 4∼5번에 나눠 잤다. 사육장이라도 코끼리는 한 번 누워 30분∼1시간 반 정도만 자고 일어나 30분∼1시간 동안 활동하다가 다시 잠자리에 드는 행동을 반복했다.
이 연구에서 흥미로운 건 바닥이 단단한 콘크리트가 아닌 부드러운 모래였을 때 코끼리가 더 자주 오른쪽 왼쪽으로 자세를 바꾸며 뒤척였다는 사실이다. 자면서 뒤척이는 건 편안한 잠을 자는 징표인 셈이다. 사람은 잠자면서 시간당 2.5회 뒤척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오래 자는 종은 작은갈색박쥐로 하루 19시간을 자며 나무늘보는 10시간을 자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속에서 양쪽 뇌를 번갈아 수면하는 돌고래는 하루 4시간 이상 귀신고래는 9시간 동안 잔다.
인용 논문:
Zoo Biology, DOI: 10.1002/zoo.21693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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