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칼레도니아의 ‘화석 침엽수’ 아라우카리아. 중생대 때부터 화석으로 나오던 오랜 나무이다. 중생대 때 지구 대부분을 덮던 침엽수는 현재 전체 종의 3분의 1이 멸종위기에 놓였다. 파비앙 콘다민 제공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침엽수(바늘잎나무)와 참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넓은잎나무)는 숲에 사이좋게 서 있지만 둘은 지구 육지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수백만년 동안 장대한 투쟁을 벌인 당사자다. 둘 가운데 지구에서 침엽수는 밀려나는, 활엽수는 득세하는 식물을 대표한다.
침엽수를 포함해 소철과 은행나무로 이뤄지는 겉씨식물은 씨가 겉으로 드러나며 꽃을 피우지 않고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 수정한다. 활엽수가 포함된 속씨식물은 꽃을 피워 번식하며 씨가 씨방에 둘러싸여 있다.
겉씨식물이 왜, 어떻게 속씨식물에 육상 생태계 주인의 자리를 내줬는지는 식물학계의 오랜 논란거리다. 광범한 화석기록과 식물 유전자의 분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침엽수의 쇠퇴는 꽃 피우는 식물과의 직접적인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란 주장이 나왔다.
꽃가루를 바람에 날리는 침엽수와 달리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은 곤충과 공생을 통해 효과적으로 번식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파비앙 콘다민 프랑스 몽펠리에대 진화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
PNAS)’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기후변화나 대멸종이 아닌 주요 생물 집단 사이의 장기간에 걸친 경쟁 끝에 흥망이 결정될 수 있음을 이번 연구에서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겉씨식물이 지구에 출현한 것은 3억8000만년 전 고생대 데본기였다. 겉씨식물은 이어 공룡시대인 중생대에 전성기를 맞아 육지를 뒤덮었다. 그러나 중생대 말 백악기에 등장한 꽃 피는 새로운 식물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꽃식물은 백악기 초인 1억4500만년 전 등장한 뒤 급속하게 종을 늘리며 각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연구자들은 “화석과 계통 유전학 증거로 볼 때 속씨식물의 이런 팽창세는 현재도 이어진다”며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경쟁한 끝에 한 무리의 생물 집단이 번성하자 다른 집단이 쇠퇴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질시대별 침엽수의 다양성 감소를 부른 요인. 오른쪽 위 그래프는 속씨식물이 등장하면서 급속히 다양성을 늘려 식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운데 그래프는 지질시대별 온도, 해수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나타낸다. 붉은 선은 대멸종 사태를 가리킨다. 속씨식물의 번성이 대멸종 사태나 기후변화와 무관하고 한랭기에도 다양성이 줄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파비앙 콘다민 외 (2020) ‘PNAS’ 제공.
연구자들은 침엽수의 멸종률은 백악기 동안 높게 유지됐고 현재도 증가세를 보인다고 밝혔다. 침엽수의 생물다양성 감소는 현재 속씨식물이 30만 종에 이르러 전체 식물 종의 90%를 차지하는 데 견줘 침엽수가 대부분인 겉씨식물은 1000종에 그치며 세계 침엽수의 3분의 1이 멸종위기에 몰려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침엽수는 활엽수에 따뜻하고 살기 좋은 열대지역을 넘기고 활엽수가 살기 힘든 추운 고위도나 고산지대, 척박한 토양에서 근근이 살아남았다. 연구자들은 “온대 북부 산림에서 광범하게 나타나고 있는 침엽수인 소나무과 식물이 활엽수인 참나무과 식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은 그 사례”라고 밝혔다.
지리산 천왕봉 동쪽 능선에서 칠선계곡으로 이어지는 지능선 일대를 항공촬영한 모습. 가문비나무와 구상나무 등 고산 침엽수가 집단 고사해 숲이 회색으로 얼룩져 있다. 서재철 제공
우리나라에서도 햇볕이 잘 드는 척박한 땅에 자리 잡지만 숲이 우거지고 땅이 기름져지면 참나무류에 자리를 내준다. 또 구상나무를 비롯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눈잣나무 등 북방계 침엽수가 고산지대에 희귀하게 살아남았다.
속씨식물이 겉씨식물을 압도한 경쟁력은 어디서 왔을까. 연구자들은 속씨식물의 빠른 성장 전략, 꽃을 통해 곤충과 공생을 통한 효과적인 가루받이, 새로운 화학적 방어 전략 도입, 기후 스트레스에 잘 견디는 능력 등을 꼽았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PNAS), DOI: 10.1073/pnas.2005571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