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기쥐는 위협받으면 갈기를 세워 줄무늬가 있는 옆구리를 드러낸다. 식물에서 추출한 독액을 이곳에 바른다. 케빈 디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드물고 은밀하게 행동해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동아프리카 갈기쥐는 수수께끼의 동물이다. 토끼 크기에 갈색 털이 북슬북슬하게 덮인 이 설치류는 포식자가 잘못 무는 것만으로도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다.
갈기쥐는 독물을 식물에서 추출하는 유일한 포유류이다. 이 지역 원주민은 독화살에 협죽도과의 독화살나무 유액을 바르는데 독성이 강해 코끼리도 쓰러뜨리고 사람은 수㎎으로 사망한다.
갈기쥐가 독화살나무의 줄기를 씹어 추출한 독액을 털에 묻혀 포식자에 대항한다는
연구결과는 2011년에 나왔다. 그러나 단 한 마리의 갈기쥐를 관찰한 결과여서 이런 행동이 이 동물에 일반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새러 와인슈타인 미국 유타대 박사후 연구원 등은 20일 ‘포유류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갈기쥐가 식물의 독성 물질을 화학적 방어를 위해 추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일부일처제로 새끼와 함께 작은 가정을 이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육장에서 갈기쥐가 독화살나무(아코칸테라 스킴페리) 줄기를 씹은 뒤 독 성분을 침과 함께 옆구리 털에 묻히는 모습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새러 와인슈타인 영상 갈무리
연구자들은 무인카메라를 설치했지만 갈기쥐가 좀처럼 포착되지 않자 생선, 땅콩버터, 바닐라 등 냄새 나는 미끼를 이용한 포획틀을 설치했다. 이렇게 붙잡은 25마리를 기르면서 기본적인 행동을 관찰했다.
먼저 사육장에서 독화살나무 가지를 준 22마리 가운데 10마리가 줄기를 잘근잘근 씹어 옆구리 털에 바르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포식자가 접근하면 갈기쥐는 얼굴을 어깨에 파묻고 고슴도치처럼 갈기를 세운다. 그러면 옆구리에 스컹크 같은 줄무늬 털이 드러나는데 갈기쥐가 독액을 바르는 곳이 바로 이 부위였다.
갈기쥐는 혀로 독을 바르면서 상당량을 섭취했을 테지만 이후 먹이를 먹고 돌아다니는 등 아무런 독성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논문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갈기쥐가 화살나무에 든 맹독 성분인 카르테노라이드에 저항성을 간직한다고 보았다.
구멍이 숭숭 뚫려 독액을 잘 머금을 수 있는 갈기쥐 옆구리 털. 옆의 다른 부위 털과 대조를 이룬다. 새러 와인슈타인 제공
갈기쥐는 카르테노라이드가 많이 든 또 다른 협죽도과 식물인 아스클레피아속 밀크위드도 먹었다. 이 식물은 제왕나비 애벌레가 먹어 화학방어에 쓰는 물질이다.
연구자들은 갈기쥐를 기르면서 외톨이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동물이 뜻밖에 복잡한 사회적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와인슈타인은 “생포한 갈기쥐 2마리를 사육장에 넣었더니 서로 가르랑거리고 털을 고르기 시작해 깜짝 놀랐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사육장에서 갈기쥐 짝은 깨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서로 만지고 따라다니는 데 보냈다. 찍찍거리고 가르릉대는 등 다양한 소리로 소통하는 모습도 보였다.
연구자들은 “관찰 결과 갈기쥐는 큰 덩치, 긴 수명, 낮은 번식률 등 일부일처제를 하는 동물의 특징을 여럿 보이고 다 큰 새끼가 어미가 포획된 곳 근처에서 잡힌 것으로 보아 새끼가 늦게 어미로부터 독립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외톨이 동물이 아니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풍부한 사회적 교류를 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몸길이 36㎝인 갈기쥐는 이제까지 외톨이로 은둔하는 동물로 알려졌지만 복잡한 사회생활을 꾸리는 동물로 밝혀졌다. 스테파니 히긴스 제공
이런 사실은 갈기쥐의 보전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공동 연구자인 버나드 애그완다는 “한때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갈기쥐가 로드킬로 죽는 사례가 흔했지만 현재는 정확한 개체수도 모를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복잡한 사회관계, 느린 생활사, 분산된 집단 등에 비춰 갈기쥐는 멸종 위험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인용 논문:
Journal of Mammalogy, DOI: 10.1093/jmammal/gyaa12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