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 독과 비슷한 독을 얻기 위해 반딧불이를 먹는 동남아 유혈목이 속의 뱀. 두꺼비에서 지렁이로 주 먹이를 바꾸면서 새로운 독소를 찾은 결과다. 후쿠다 마사야, 교토대 제공.
유혈목이는 하천 주변이나 경작지, 초지 등에서 흔히 만나는 아름다운 뱀이다. 녹색 바탕에 붉고 검은 점이 교대로 찍혀 ‘꽃뱀’ ‘화사’ 등으로 불리는 이 뱀은 독이 없는 뱀으로 종종 잘못 알려진다.
이 뱀이 두꺼비로부터 독을 얻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꽃뱀의 치명적 독은 잡아먹은 두꺼비의 독). 그러나 주로 동남아에 26종이 사는 유혈목이 속 뱀 가운데는 두꺼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딧불이 애벌레로부터 독을 얻는 종이 여럿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두꺼비가 느리게 어슬렁거릴 수 있는 것은 강력한 피부 독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경험 없는 포식자가 통째로 삼켰다가는 부파디에놀라이드란 독성 스테로이드가 심장에 치명타를 가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복잡한 화학물질인 독을 힘들게 만들기보다 남이 만든 것을 가져다 쓰는 생물도 155종의 독개구리 등 적지 않다. 우리나라 등 동북아에 서식하는 유혈목이는 주식이 개구리이지만 두꺼비를 잡아먹어 피부 독샘에 보관한다.
개구리를 잡아먹는 우리나라의 유혈목이. 두꺼비를 잡아먹어 독을 확보한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요시다 타츠야 일본 교토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중국, 일본, 인도, 미얀마 등 동남아에 널리 분포하는 유혈목이 속의 ‘랍도피스 누칼리스’ 등 지렁이를 주식으로 하는 뱀들이 피부에 두꺼비 독을 지니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이들은 뱀 표본과 독소 분석, 실험 등을 통해 이들이 반딧불이 애벌레를 잡아먹어 두꺼비 독소를 얻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 24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앨런 새비츠키 미국 유타주립대 교수는 “이번 연구로 척추동물 포식자가 먹이를 척추동물에서 무척추동물로 바꾸면서도 방어용 독으로 쓸 똑같은 화학물질을 확보한 첫 사례가 밝혀졌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유혈목이 속 일부 뱀 종류의 주 먹이(왼쪽)와 독 확보원(오른쪽). 유혈목이는 애초 개구리가 주 먹이이고 두꺼비에서 독을 구했는데, 새로 분화한 종들 가운데는 지렁이를 주로 먹고 반딧불이 애벌레에서 독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붉은 선은 우리나라 유혈목이이다. 요시다 외 (2020) PNAS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뱀 가운데는 주 먹이를 개구리에서 지렁이로 바꾼 종이 적지 않다. 지렁이는 개구리보다 흔하고 널리 분포하는 데다 길쭉한 몸 형태가 삼키기 쉽기 때문이다.
동남아 유혈목이도 그런 예이다. 덩치가 작고 색깔이 밋밋한 이 뱀들은 머리도 가늘어 지렁이처럼 가늘고 긴 먹이를 삼키도록 진화했다. 주식은 지렁이와 민달팽이다.
연구자들이 이 유혈목이에게 여러 종류의 먹이를 주는 실험을 한 결과 지렁이를 가장 좋아했고 개구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또 반딧불이 애벌레를 즐겨 먹었다.
이들 뱀의 표본에서 위장 내용물을 분석했더니 역시 반딧불이 애벌레가 들어있었고, 두꺼비를 먹지 않았는데도 유혈목이의 피부샘에서는 부파디에놀라이드가 검출됐다. 두꺼비와 반딧불이 애벌레에서 분비한 독물의 화학 성분은 대체로 비슷했다.
연구자들은 “두꺼비에서 독을 얻던 조상 유혈목이로부터 지렁이를 먹는 종으로 분화한 뒤에도 같은 종류의 독을 분류학적으로 거리가 먼 반딧불이로부터 얻게 됐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논문에 적었다. 반딧불이 애벌레는 두꺼비가 내는 것과 거의 비슷한 부파디에놀라이드를 분비한다.
지렁이를 주식으로 하고 반딧불이 애벌레에서 독을 얻는 유혈목이 속의 뱀인 랍도피스 펜타수프라라비알리스. 테페이 조노 제공.
그렇다면 이 유혈목이는 어떻게 두꺼비에서 얻던 것과 같은 독을 반딧불이에게서 얻을 수 있었을까. 연구자들은 반딧불이 애벌레가 지렁이처럼 몸이 길고 부드러워 먹게 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독소 자체를 단서로 반딧불이 애벌레를 먹게 됐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밝혔다. 뱀은 화학물질을 감지해 먹이를 찾는다.
새비츠키 교수는 “이 유혈목이는 전혀 다른 먹이를 먹게 되면서 방어 물질을 얻을 수 없게 되자 이를 보상하는 쪽으로 적응한 놀라운 진화 사례”라고 말했다.
인용 저널:
PNAS, DOI: 10.1073/pnas.1919065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