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적응력이 뛰어나고 사체부터 곤충과 식물 포유류까지 다양한 먹이를 먹는다. 세계 100대 침입종의 하나이기도 하다. 픽사베이 제공
오스트레일리아를 식민지로 개척한 영국 이주자들은 본국의 귀족 스포츠인 여우 사냥을 즐기기 위해 1855년 유럽여우 몇 마리를 들여와 풀어놓았다. 1870년대부터 야생에 자리 잡은 여우는 이 나라 야생동물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외래종의 하나가 됐다.
여우는 극지방에서 사막과 대도시까지 어디서든 살아가는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다. 쥐 등 중·소형 척추동물이 주요 먹이이지만 곤충과 열매, 풀, 동물 사체, 도시의 음식쓰레기 등 기회가 닿으면 뭐든 먹는다.
여우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100대 침입종’에 이름을 올린 이유이다. 또 이런 여우가 우리나라에서 절멸해 복원사업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세계적으로 특이한 사례로 꼽힌다.
호주의 중·소형 유대류 반디쿠트. 여우가 들어오자 피해를 본 대표적인 호주의 토종 동물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여우는 호주에 들어온 지 30년도 되기 전에 어린 양을 많이 잡아먹어 퇴치 대상이 됐지만 150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라지기는커녕 700만 마리 이상이 북쪽 열대지역과 태즈메이니아 섬을 뺀 호주 대륙의 3분의 2에 분포하고 있다.
여우를 없애려면 생태를 알아야 하고 그 기초는 먹이 분석이다. 여우의 배설물과 위 내용물에 관한 85건의 기존 연구를 분석한 결과 여우의 식성이 외래종 토끼에서 토종 포유동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우는 호주에 들여온 지 150년 만에 북부 열대지역과 일부 섬을 뺀 대륙 전역에 퍼져나가 토종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요 포식자가 됐다. 픽사베이 제공
패트리샤 플레밍 호주 머독대 교수 등은 과학저널 ‘포유류 리뷰’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여우 식단의 70%에서 포유동물의 흔적이 나왔다”며 “여우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광범한 호주 토종 동물을 먹어치우고 있다”고 밝혔다.
여우의 밥이 되는 호주 토종 동물에는 중·소형 유대류인 반디쿠트, 빌비, 사향쥐캥거루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여우가 언제나 토종 유대 동물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호주의 토종 유대류인 사향쥐캥거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호주 이주민은 19세기에 유럽 토끼를 호주에 들여왔다. 토마스 오스틴이란 이주민이 1859년 자기 농장에 들여온 유럽의 야생토끼 13마리는 50년 안에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지나치게 번성한 토끼가 가축의 먹이를 가로채자 대대적인 퇴치작업이 시작됐다. 마침내 1950년대와 1996년 그리고 2010년 이후 등 3차례에 걸쳐 더 치명적이고 효과적인 바이러스를 살포하는 방식으로 토끼의 개체수를 억누르는 데 성공했다.
토끼에게 치명적인 점액종 바이러스를 시험 살포하기 위해 울타리로 가둔 지역의 물웅덩이에 모인 토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여우의 익숙한 먹이인 토끼가 급격히 줄었다. 연구자들은 “여우는 토끼가 흔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토끼를 주식으로 삼았다”며 “그러나 지난 70년에 걸쳐 여우는 먹이를 외래종 토끼로부터 토종 동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호주 남부 지방에서는 토종 유대류를 보기 힘들게 됐다. 호주 남부의 태즈메이니아 섬에는 1998년 누군가 불법으로 방사한 여우 몇 마리가 퍼져나갔는데 이들은 나중에 제거되기 전에 멸종위기종 10종을 포함해 모두 77종의 토종 동물을 잡아먹은 것으로 밝혀졌다.
소형 유대 동물인 빌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호주 정부는 여우를 조절하기 위해 독약을 살포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1080’이란 독약은 호주에서 나는 천연 독성분인데 여우에 치명적이지만 토종 동물에게는 큰 해가 없다. 그러나 여우를 없앤 빈자리를 또 다른 외래종인 야생화한 고양이가 채워 토종 동물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에서 여우를 죽여 걸어놓은 모습. 독약 미끼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일반적으로 여우의 주식은 쥐다. 최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농촌 지역에는 외래종인 집쥐가 대번성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여우가 집쥐를 조절해 주지 않을까. 플레밍 교수는 “쥐가 창궐하는 호주 동부와 그렇지 않은 지역 사이에 여우 식단 차이는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여우 먹이에서 쥐의 비중은 일반 지역에서 10%인데 견줘 쥐 창궐지역에서 23%로 크지만 쥐의 빠른 번식력을 억제할 수준은 아니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플레밍 교수는 “여우와 야생화한 고양이, 토끼(아직 2억 마리가 남은)의 개체수 조절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어느 한 종만 따로 제거하면 그 여파가 야생동물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용 논문:
Mammal Review, DOI: 10.1111/mam.12251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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