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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농장동물

값싼 고기에는 코로나의 희생자들이 숨어있다

등록 2020-06-23 15:11수정 2020-06-23 15:54

[애니멀피플] 코로나19가 미국 도축장을 덮친 이유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장식 축산의 구조는 그대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은 저임금 이주노동자뿐
노동자들이 돼지고기를 도축해 가공 처리하고 있다. 클립아트이미지 코리아 제공
노동자들이 돼지고기를 도축해 가공 처리하고 있다. 클립아트이미지 코리아 제공

공장식 축산의 원조라고 불리는 미국 시카고의 도축장 ‘유니언 스톡 야드’. 약 100년 전, 저널리스트 업턴 싱클레어는 세계 최대의 도축장인 이곳에서 두 달을 머물며 취재했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착안한 게 이곳이었다. 동물의 피가 연못처럼 고이는 열악한 공장에서, 망치를 맞은 소, 돼지를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운반됐고, 노동자들은 기계가 설정한 속도에 따라 작업을 했다. 동물은 물건처럼 다뤄졌고, 대부분 이민자인 노동자들은 빈곤에 허덕였다.

싱클레어가 1906년 출간한 소설 <정글>의 주인공도 리투아니아에서 와서 온 유르기스 루드쿠스였다. “그도 고향의 숲에서 돼지를 잡아 본 적이 있었으나, 이렇게 돼지 한 마리를 수백 명이 손질하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도축장을 정육공장(meat plants)라고 부른다. (▶▶관련기사 ‘혁신이 지워버린 생명의 눈망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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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값의 고기 → 저임금 밀집 노동 → 코로나19 감염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세계는 정육공장의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정육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코로나19 안 걸렸는데, 왜 돼지들이 살처분됩니까?’)

23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러한 사태가 “싼값으로 시장에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밑바닥에서 벌이는 재앙의 경주” 때문이라는 노조 관계자의 말을 소개하며, 공장식 축산 체제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100년 전 업턴 싱클레어가 고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정육공장에서도 저임금 이주노동자가 좁고 열악한 공장에서 서로 부대끼며 고기를 해체한다. 고기의 대량 소비 그리고 열악한 노동 환경은 현대 사회의 육식 체제에서 ‘동전의 양면’이라는 얘기이다.

세계 최대의 도축장이자, 세계 최초로 정육 가공 공정에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시카고 유니언 스톡 야드’의 노동자들이 가죽을 벗긴 동물들 앞에 서 있다. 1900년대 초반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즈 제공
세계 최대의 도축장이자, 세계 최초로 정육 가공 공정에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시카고 유니언 스톡 야드’의 노동자들이 가죽을 벗긴 동물들 앞에 서 있다. 1900년대 초반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즈 제공

미국의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인 <식품환경뉴스네트워크>가 22일 집계한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만 정육공장 관련 시설에서 3만2099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노동자 109명이 숨졌다. 노동자는 대개 이민자나 난민이었다.

영국의 시장정보 제공업체인 아이에이치에스 마킷(IHS Markit)의 애널리스트인 아담 스펙은 “코로나19는 대부분 자동차나 집을 공유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육가공업체들이 안전 조처를 하면서 미국의 상황이 안정될 거라고 봤지만, 이런 시각에 회의적인 전문가도 있다. 농업무역정책연구소(IATP)의 벨 릴리스턴은 “지금도 노동자들이 죽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도살 공정에서 속도를 강조하는) 정육공장의 구조 그 자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시기 들어 노동감독관이 줄어들었고, 작업 속도는 더 빨라졌다고 그는 지적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정육공장에서 칠면조 고기를 해체 가공하고 있다. 밀접 접촉해 일하는 특성상 노동자들 사이에서 바이러스가 확산하자, 문을 닫는 정육공장이 많아졌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정육공장에서 칠면조 고기를 해체 가공하고 있다. 밀접 접촉해 일하는 특성상 노동자들 사이에서 바이러스가 확산하자, 문을 닫는 정육공장이 많아졌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유럽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피터 슈미트 독일식품노조 위원장은 <가디언>에 “값싼 고기를 원하는 시장의 높은 수요 때문에 정육 산업의 전 부문이 파멸적인 밑바닥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정육 산업도 동유럽의 저임금 노동자를 기반으로 굴러가기는 마찬가지라며, 그는 공장의 현실이 “노예 시대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정육공장의 노동 환경은 최악입니다. 작업장은 춥고, 노동자들은 다닥다닥 붙어 빠른 속도로 일해야 합니다. 12시간 맞교대 뒤 들어가 쉬는 숙소에서는 동료와 침대를 나눠 쓰는 형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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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물류센터와 정육공장의 진짜 문제점

국내에서도 5월 말 이커머스 업체인 쿠팡의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한 적이 있었다. 그 원인으로 노동자가 일하는 냉동 창고가 지목됐다. 섭씨 1도만 낮아져도 상품 질이 떨어져 경제적 손실이 생기는 만큼, 업체는 이중 삼중으로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등 실내 온도 관리에 만전을 기한다. 하지만 환기되지 않은 환경은 바이러스 농도를 높이기 마련이다.

미국의 정육가공업체들은 비슷한 논리를 들어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려 한다. 코로나19에 따른 노동자 피해가 냉장·냉동실의 구조와 차가운 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케임브리지대 수의학과장인 제임스 우드 교수는 <가디언>에 이를 “흥미로운 가설”이라면서도 “노동자 간의 밀접 접촉, 내외부로 공기 순환 등의 변수를 제거해야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 사회에서 말도 안 되게 싸진 고깃값은 좁은 공간에서 속도에 밀리는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을 지불한 대가다. 업턴 싱클레어가 도축장을 ‘정글’로 묘사한 지 100년이 지났고, 그 구조만을 볼 때 정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것을 확인시켜주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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