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섬나리의 동물해방선언
2019년 4월의 쾌청한 봄날, 도살장 앞에서 만난 한 돼지. 사진 서울애니멀세이브 제공
4월, 도살장에 갔다 ‘가만히 있으라.’ 침몰하는 세월호 내에 울려 퍼진 안내 방송이라고 한다. 안내라고 하지만, 어쩌면 숱하게 들어와 익숙한 ‘명령’이었다. 이를 믿은 학생들은 허무하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배신당했다. 안내 방송을 한 선장과 직원들은 학생들을 버려둔 채 곧바로 탈출했고, 그 뒤 배가 완전히 침몰할 동안 국가는 나서지 않았다. 이 일련의 사실들은 내가 살아가는 불의한 사회를 극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2019년 4월의 쾌청한 봄날, 서울애니멀세이브에서 진행하는 ‘비질, 진실의 증인되기’라는 활동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사진 서울애니멀세이브 제공
처음 찾은 도살장은 평범한 공장 지대였다. 사진 서울애니멀세이브 제공
당신에게도 이 소리가 들릴텐데… 우린 비명에 놀랐다지만, 도살장 경비 노동자는 어디선가 무더기로 몰려온 우리를 보고 놀란 것 같았다. 곧 연락을 받고 나온 사무실 직원들은 우리에게 고압적으로 협박했다. “당장 지워! 남의 회사 벽 찍는 것도 불법이야!” 그것이 불법이 아님에도 몇몇은 당황하여 영상을 지웠다. 명령에 대한 복종, 그렇게 배워온 탓이었다. 여기서 당장 사라지라고 고함치는 그들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 트럭 몇 대가 우리 앞을 지나 도살장으로 들어갔다.
도살장 앞에는 수십 명(命)의 동물들을 빽빽하게 가둔 이층 트럭도 있었고, 엄마 돼지인지 덩치가 아주 큰 동물이 홀로 외롭게 갇혀있는 작은 트럭도 있었다. 사진 서울애니멀세이브 제공
트럭 안에서 몸부림 치며 상처 입은 돼지들의 모습. 사진 서울애니멀세이브 제공
우리는 도살장 앞에 노란빛 애도를 옮겨 심었다. 포스트잇 쪽지를 도살장의 담에 써 붙였고, 새하얀 국화꽃을 앞에 놓아두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도살장 앞 노란 리본 그리고 일주일 뒤, 그곳에 피어있던 노란빛 애도를 옮겨 심었다. 바쁜 사회에서 누구도 찾지 않는 고요한 도살장 앞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포스트잇 쪽지를 도살장의 담에 써 붙였고, 새하얀 국화꽃을 앞에 놓아두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날 도살장 앞에서 나는 죽음을 어떻게 애도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그날부로 매주 비질에 참여하여 도살장 앞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세월호가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말하는 이들과 축산업이 ‘자연의 섭리’라고 말하는 이들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도살장 앞 트럭 철창에 머리를 박는 돼지들의 몸부림, 줄줄이 들어갔다 금세 텅 비어 나오는 트럭들, 이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였다. ‘가만히 있으라.’ 온 사회가 비명을 감추는 도살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2019년 직접행동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경기도 화성시 한 종돈장에서 ‘새벽이’를 공개 구조했다. 사진 직접행동 디엑스이 제공
현재 보호소에서 살면서 어른 돼지로 자란 새벽이. 진흙목욕을 좋아한다. 사진 새벽이 생추어리 제공
다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우린 다시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명복만 빌고 있지 않을 것이다. 먼저 간 이들을 짓밟고 있는 이가 다름 아닌 우리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새벽이는 남탓만 하던 나에게 이 쓰라린 답을 알려주었다. 구조할 수 없는 구조, 나는 다름 아닌 가해자의 대오에 서 있던 것이었다. 세월호와 도살장, 이 연결은 내가 동물해방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명복을 빌지 말라’ 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이 일본에서 5·18 광주항쟁을 목도하며 쓴 시다.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다.
우린 다시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명복만 빌고 있지 않을 것이다. 사진 서울애니멀세이브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child/2024/0116/53_17053980971276_2024011650343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800/32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76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80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