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긴수염동물기
해질 무렵 하얀 리틀코렐라가 마을 주인이 된다 가로등 뜯어내 그네를 타고, 깃발 끌어올리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 ‘나우라’(호주에 원래 살던 사람들이 쓰던 언어로 블랙코카투를 의미)라는 마을의 풍경이다. 해 질 무렵이 되면 수십수백의 리틀코렐라(유황앵무속의 한 종)들이 다운타운 근처에 몰려들어 꽥꽥 소리를 지르며 단체로 놀이활동을 한다. 쇼핑센터 간판에서 미끄럼틀을 타기도 하고, 건물 창문에 앉아 서로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갸우뚱거린다. 나부끼는 깃발에 올라타려고 하거나 게양대 줄에 매달려 빙빙 돌며 균형 잡기도 한다.
그중 나의 시선을 가장 오래 사로잡았던 것은 가로등 덮개를 뜯어내어 그네를 타는 녀석들이었다. 여러 마리가 가로등 위에 줄을 서 있고 한 마리씩 덮개에 들어가 그네를 타는데, 가끔 계속 놀고자 하는 녀석을 쫓아내려고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다 덮개가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광경. 하지만 주민들은 신경 쓰지 않고 그 아래로 잘도 지나다니더라. 마치 일상이 된 것처럼. 리틀코렐라를 구경하는 나를 사람들이 구경했다.
리틀코렐라가 가로등 덮개를 뜯어내고 그네를 타고 있다. 긴수염 제공
깃발의 줄을 잡아당기며 놀고 있는 리틀코렐라. 해 질 무렵이 되자, 나우라 마을은 리틀코렐라의 것이 되었다. 긴수염 제공
동행한 현지 야생동물 연구원인 마이크가 말했다. 리틀코렐라의 서식지에 인간이 들어오면서 그들도 야생이 아닌 인간의 주변에 함께 살게 되었는데, 먹이를 구하는 게 쉬워져 남는 시간에 저런 놀이를 하는 거 같다고. 그런데 가로등 덮개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떨어질 수도 있어서 다소 위험하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이크에게 말했다.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현대문명 사회의 인간도 야생생활할 때보다는 먹이를 구하는 게 쉬워져서, 남는 시간에 할 일이 없으니 온갖 것을 즐기겠다며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러다 보니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와 놀이터를 빼앗게 되었고, 결국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생각해.”
그러자 그가 “오! 그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네 말이 완전 맞네?” 라며 끄덕였다.
건물 외벽 창문을 두드리는 리틀코렐라. 긴수염 제공
가로등 덮개를 흔들며 자유롭게 놀고 있는 녀석들을 보다가 문득, 이곳에서는 흔한 새들이 페트병에 산 채로 구겨져 다른 나라에 밀수입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들은 장난감이 아니라 생명체인데. 세상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인간은 어째서 동물을 가만두지 못하는 것일까. 이곳의 가로등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까. 정답을 알고 있지만 인간 중심 자본주의 세상에서 실현은 쉽지 않기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착잡한 마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들의 노는 모습을 한 시간 넘게 기록하는데 길 건너편에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야생동물 사진가인 마이크의 친구였다. 보통 사람들은 리틀코렐라들이 시끄럽고 성가시다고 하지만 자기 눈에는 대단하고 노는 모습이 아름답다며 연신 감탄했다. 우리는 장난꾸러기들이 마음껏 노는 모습을 한참 구경하다가 어두워질 무렵 헤어졌다.
긴수염 지구별 여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