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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개 유행하는 나라, 부끄러움은 우리 몫

등록 2018-08-12 09:00수정 2018-08-13 15:32

[애니멀피플] 나의 사랑 프리드리히 니체
믹스견·대형견·장애견은 왜 입양되지 않을까
‘순종 선호’에 가로막힌 동물의 궁극적 복지
지난 4월, 전주에 사는 노인이 쓰러졌다. 그 집에는 개들이 있었다. 우리가 입양을 맡았다. 비슷한 시기에 불법 개농장을 폐쇄하면서 개들을 구조했고, 불법 번식장에서 100여마리의 개들을 구조했다. 전국의 동물보호단체에서 구조작업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동물을위한행동 임시 보호소에도 10마리의 개들이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그 개들을 ‘믹스견, ‘잡종’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동물판에는 누구나 아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잡종일수록, 대형견일수록 아무도 입양하지 않는다는 것. 최근, 개 식용 농장 폐쇄가 해외에 알려지면서 해외 입양이 부쩍 늘었다. 우리도 ‘save Korean dogs’(한국 개 구하기)라는 단체의 도움으로 조금씩 입양을 진행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970~80년대에는 고아를 해외로 보내더니 이제는 개냐”라는 불편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동물판에는 공공연한 불편한 진실이 많다. 식용견이니 애완견이니 민족주의니 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탁상공론’이다. 개들의 세계에서는 번식견으로 쓰이다 ‘쓸모없어진’ 개들, 입양 못 간 유기견들… 이런 개들이 보신탕 거리로 넘겨졌던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쓸모없어진 개들을 안락사할 필요도, 버릴 필요도, 귀찮게 자기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 개 식용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는 100가지도 넘게 열거할 수 있다. 내가 잃어버린 소중한 반려견이 보신탕으로 둔갑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주 편하게 생각하려고 애를 쓴다. ‘내 개는 아닐 거야. 나는 아니야. 설마 그렇겠어…’ 과연 그럴까?

전주에서 구조돼 미국 뉴욕으로 입양간 ‘믹스견’ 용감이. 한국에서는 작고, 어린 순종견이 아니면 입양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전주에서 구조돼 미국 뉴욕으로 입양간 ‘믹스견’ 용감이. 한국에서는 작고, 어린 순종견이 아니면 입양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강아지 공장이 사회적 문제로 뜨자 번식업자들의 사이트에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우리는 공장에서 강아지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사랑으로 키웁니다.” 솔직히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공장이라는 단어를 가정이라는 단어로 치환했을 뿐이다. 공장이 어디 있고 가정이 어디 있나. 우리가 강아지 공장의 복지 문제를 제기한 것은, 있지도 않은 ‘공장’이라는 이미지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번식업의 본질이 실질적인 복지와 거리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 공장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된 공장 건물이든 가정집이든 여러 종의 모견을 좁은 케이지에 가둬놓고 새끼를 반복적으로 낳게 하는 번식업에서는 강아지가 시장 가격에 따라 거래되는 이상 궁극적으로 복지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사람들이 되도록 싸고 작은 순종 강아지를 사고 싶어하는 이상 생산업자들은 싸고 작은 강아지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개들이 유행을 타는 곳도 드물 것이다. 20년 전 유행했던 퍼그는 더는 보이지 않는다. 한때 많았던 슈나우저와 코카스패니얼도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TV를 통해 장모 치와와가 소개되자 유행했고, 지금 거리에 나가면 비숑 프리제가 넘쳐난다. 유행에 따라 순종 강아지를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 해마다 10만 마리의 개들이 버려지고 그 중 30%는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해 안락사 된다. ‘내가 산 순종 강아지는 다를 거야. 난 예외야.’ 과연 우리 개개인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불법 번식 농장에서 구조된 개들. 100여 마리를 각 동물단체가 임시보호하고 있다.
불법 번식 농장에서 구조된 개들. 100여 마리를 각 동물단체가 임시보호하고 있다.
올림픽에 출전했던 미국인 운동선수가 우리나라 개 식용 농장을 찾아 개를 입양했다. 인터넷을 달구면서 떠오른 주장들은 이랬다. “개 식용은 우리 문화야. 왜 미국인이 우리 문화에 간섭해?” “우리 개를 외국에 보내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왜 우리가 책임 못 지나.”

우리가 책임 못 지고 외국에 입양 보내는 것이 창피한가. 왜 남 탓을 하나. 당신이 애견 숍에서 개를 사지 않고 보호소에서 입양하는 일을 직접 실천해야 한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하나. 대통령이 하나, 국회의원이 하나. 우리 모두, 시민들 스스로 해야 한다. 미국인이 한국의 치부가 될 수 있는 곳에 들어와 창피한가. 정말로 창피한 것은,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든 감추고 남 탓만 하려는 사람들의 태도다.

대형견·잡종이면 입양도 못 가고 보호소에 처박혀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는 나라. 독일이나 영국의 경우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있는 개들부터 입양 간다’고 하는데, 그런 문화는 배워야 한다. 그들이 왜 그러냐고?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많은 개와 고양이를 보호소에서 죽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시민들의 생각이다. 부끄럽다.

새 캣타워가 좋지만 아닌 척 하는 니체. 나는 한국의 ‘흔한’ 고양이 니체와 함께 살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새 캣타워가 좋지만 아닌 척 하는 니체. 나는 한국의 ‘흔한’ 고양이 니체와 함께 살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니체는 전형적인 ‘코리안 쇼트 헤어’ 고양이다. 사실 이름을 그냥 붙였을 뿐이지 우리나라 곳곳에 사는 평범한 고양이다. 니체는 비싼 고양이가 아니지만, 나는 그의 집사로 간택 당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수백만원짜리 순종 고양이를 자랑하는 당신. 그 고양이의 재롱을 자랑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그런 비싼 고양이를 살 수 있는 당신의 재력을 자랑하고 싶은 것인가. 돈 자랑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자동차 자랑을 해라. 자동차 생산 회사와 노동자들이 먹고살게. 당신이 사는 순종 고양이는 100% 번식 공장에서 나온다. 당신이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글·그림·사진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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