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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덩치 3배 황소개구리도 잡아먹는 곤충, ‘물장군’의 겨우살이

등록 2021-12-15 14:40수정 2021-12-21 14:51

[애니멀피플] 이강운의 홀로세 곤충기
안동대 학생들과 함께한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수업
멸종위기종 실험실서 물장군의 월동준비 지원
물장군은 곤충이지만 물고기와 올챙이, 개구리 등 자기보다 큰 척추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다.
물장군은 곤충이지만 물고기와 올챙이, 개구리 등 자기보다 큰 척추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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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에 있는 강원도 연구소 겨울은 유난히 길다. 물도 얼고, 땅도 얼고. 모든 게 꽁꽁 얼어붙을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막 시작되었다. 산속 생활 25년이면 익숙해질 만도 한 데,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추위를 타니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은 아닌 것 같다.

북반구의 생물 대부분에게도 눈보라와 서릿발이 응축된 몇 개월의 추운 겨울은 생사의 갈림길이다. 오랜 기간 외부의 추위를 막아 줄 지속적인 보호막을 갖고 있거나 스스로 알아서 외부환경에 적응하여 생리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 철새처럼 이주를 해버리던가.

먹이를 꼼짝 못 하게 움켜쥐는 물장군의 크고 날카로운 발톱.
먹이를 꼼짝 못 하게 움켜쥐는 물장군의 크고 날카로운 발톱.

물장군은 크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잡고, 뾰족한 주둥이로 자신보다 3배 이상 큰 황소개구리도 잡아먹는 물속 최강자의 위용을 자랑한다(▶뱀과 거북까지 사냥하는 ‘포식자 곤충’, 물장군). 그렇지만 동장군 앞에서는 꼼짝 못 한다. 한겨울에는 숨을 골라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휴면 모드에 들어가는 것이 슬기로운 겨울 생활이다. 이제껏 쭉 살아오던 방죽이나 늘 얕게 고여있는 논의 물이 가장 좋은 월동지인데 다 없어졌으니 겨우살이 할 곳도 마땅치 않다.

지난달 26일 위드 코로나로 출입이 반짝 풀렸을 때 국립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수업을 했다. 종의 절멸을 막는 연구와 실질적 보전 방법을 발전시키고 있는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멸종위기종 실험실에서 물장군의 월동 과정을 직접 수행하면서 학생들이 보전생물학에 대한 감각을 익히도록 가르쳤다.

국립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학생들이 연구소로 현장 수업차 방문했다.
국립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학생들이 연구소로 현장 수업차 방문했다.

숨구멍을 밖으로 낼 수 있는 얕은 물과 몸을 의지할 수 있는 발걸이를 갖춘 연못 형태의 안전가옥(월동 케이지)을 만들어주는 일이 첫 번째 할 일이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에 들어가 물장군 월동 케이지에 넣을 모래와 물을 채취하면서도 “시원하다” “손이 약간 빨개지긴 했는데 보들보들해졌다”는 학생들의 무한 긍정 에너지가 피부에 와 닿으니 같이 즐겁다.

꼬리의 숨구멍을 물 밖으로 내밀고 있는 물장군.
꼬리의 숨구멍을 물 밖으로 내밀고 있는 물장군.

한 학생이 계곡에서 물장군 사육장에 깔 모래와 물을 채취하고 있다.
한 학생이 계곡에서 물장군 사육장에 깔 모래와 물을 채취하고 있다.

약 7개월간 사육하던 사육 케이지는 모래와 산소 발생기로 끊임없이 정화했지만 물장군이 먹었던 물고기 사체와 물장군의 배설물로 깨끗하다 할 수 없다. 케이지의 물을 뺀 다음 물장군을 건져야 날카로운 발톱에 찔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호스에 입을 대고 물을 빨아야 물을 뺄 수 있는데 한 학생이 힘껏 빨아들이다 오염된 물을 그만 꿀꺽 삼켜버렸다. 모두 재미있다고 난리지만 더러운 물을 삼켰으니 본인은 얼마나 괴로울까 위로했더니 “장군님이 계시던 물이라 그런지 맛이 괜찮다” 한다. 귀여운 놈, 분위기만으로도 흡족하다.

물장군 사육 케이지.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물장군을 보존하고 증식할 수 있는 서식지 외 보존기관이다.
물장군 사육 케이지.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물장군을 보존하고 증식할 수 있는 서식지 외 보존기관이다.

멸종위기종을 증식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오랜 기간 적은 수의 개체 사이에서 짝짓기가 이뤄져 발생하는 이른바 ‘근교약세(近交弱勢)’ 현상이다. 근친교배로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지면 건강한 개체를 번식시킬 수 없으므로 사육 중에라도 교차 짝짓기를 시키려고 늘 준비한다. 암·수를 구별하고 일련번호를 매기는 방법을 배운 학생들이 능수능란하게 분류하면서 개체 정보를 담은 이력 번호를 물장군 등에 적는다. 짧은 시간에 과정을 완벽히 잘 익힌 학생들이 대견하다.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근친교배를 피하기 위해 물장군 등에 개체 정보를 담은 일련번호를 적는다.
근친교배를 피하기 위해 물장군 등에 개체 정보를 담은 일련번호를 적는다.

분류작업이 끝나 개체번호를 새긴 물장군이 사육조에 담겨 있다.
분류작업이 끝나 개체번호를 새긴 물장군이 사육조에 담겨 있다.

족보를 정리한 물장군들을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 인큐베이터 월동지로 옮겨주니 이제야 안심이 된다. 생존율이 가장 낮은 월동 시기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도록 열심히 즐겁게 진행한 학생들의 공으로 올해는 수월하게 잘 마쳤다. 덕분에 내년 봄 건강한 물장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인큐베이터 내 월동 케이지의 물장군.
인큐베이터 내 월동 케이지의 물장군.

오염된 물을 삼키고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멸종위기종 보전과 복원’에 대한 알싸한 경험과 새로운 시각이 생겼을 것이다. 같이 호흡하며 멸종위기종 보전의 어려움과 부가 가치를 몸소 경험하는 공부도 좋았지만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과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한 수업이었다.

숨쉬기도 겁나는 지구 환경을 내팽개치고 자기들 잇속 챙기는 일에만 집착하는 한심한 정치인들이 이렇게 깨끗한 2030 젊은이들의 신선한 에너지를 받아 지구를, 환경을 생각하면 좀 나은 미래가 오지 않을까?

물장군 물맛 끝내줍니다!-홀로세 곤충방송국 힙(HIB)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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