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딱새가 누룩뱀에 잡혀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어린 새는 누룩뱀의 주식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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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짙어지는 5월부터 여름 끝 무렵까지 검은등뻐꾸기 소리로 산속은 소란스럽다. 독특한 ‘카 카 카 코’ 4음절에, 소리가 높고 끊이지 않아 한 번 들으면 바로 기억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소리지만 좀처럼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 얼굴 보기는 힘들다. 듣는 사람에 따라 소리에 대한 해석도 각양각색이지만 한 창 더울 때라 옷을 벗는다는 의미인 ‘홀딱 벗고’가 제일 그럴듯하다.
되솔새 둥지에 탁란한 검은등뻐꾸기 새끼가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고 있다.
노래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온종일 울려 퍼지는 이즈음은 새들의 먹이인 애벌레가 지천이고, 새가 많으니 뱀들도 왕성하게 사냥하며 번식하는 시기이다. 산속 연구소의 숲은 교과서 속 먹이사슬이 현실이 되는 곳! 애벌레는 식물을 먹고, 새는 애벌레를 먹고 또 뱀은 새를 잡아먹는 생태계의 순환을 자연스럽게 관찰할 수 있다.
참나무 잎을 먹는 갈무늬재주나방 애벌레.
산왕물결나방 애벌레를 먹는 뻐꾸기.
꼭 10년 전인 2011년, 한국응용곤충학회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대만, 말레이시아,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등 세계 각국의 곤충학회장들이 연구소를 방문해서 실험실을 돌아보던 중 누룩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실제 상황을 목격하고 뱉은 말. “생태가 살아있는 연구소, 맞네! (It’s real!)”
심포지엄에 참석한 세계 각국 곤충학회장들이 연구소를 방문했다.
엄청나게 길고 큰 누룩뱀이 머리를 곤두세우고 먹이 냄새를 맡았다. 혀를 날름거리며 먹이 냄새를 쫓아 스르륵 기어가더니 어린 딱새를 삼키기 시작했다. 간간이 누룩뱀 입속에서 몸을 떨며 반항하는 어린 딱새를 사정없이 꾸역꾸역 삼키는 모습이 너무 잔인하다. 산 채로 잡혀먹히는 어린 새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면서도, 뱀의 뱃속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먹이가 들어갈까? 새끼지만 작은 크기가 아닌데 떡 벌어지는 턱과 꾸역꾸역 삼키는 턱의 힘도 대단한 것 같고. 소화되지 않는 깃털까지 입속에 왜 넣지? 또 다른 생각도 해 본다.
건강한 생태계 내에서만 볼 수 있는 생생한 먹이사슬 현장이라지만 커다란 뱀이 어린 새를 잡아먹는 끔찍한 광경이라, 아무래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누룩뱀은 술 담글 때 쓰는 누룩과 색깔이 비슷하다 하여 이런 이름을 얻었지만 색 변화가 심해 검은색 누룩뱀도 자주 볼 수 있다. 꽃뱀과 더불어 쉽게 볼 수 있으며, 차갑다 느껴질 만큼 비늘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독이 없는 대신에 다른 뱀보다 굵은 몸으로 조여 먹이를 질식하게 한다. 한반도 뱀 중에서는 무자치와 함께 가장 흔하다. 양서류와 설치류를 즐겨 먹지만 새도 주식이다.
꽃뱀으로 불리는 유혈목이.
물뱀으로도 불리는 무자치의 짝짓기 모습.
직박구리 둥지를 습격해 통째로 먹어치우거나 둥지 근처 나무줄기를 스르륵 타고 올라가 어린 딱새를 꿀꺽 삼켜버리기도 한다. 흰눈썹황금새도 한 입 거리다. 길이가 130㎝나 되는 거대한 누룩뱀이 조여오니 어린 새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날개를 퍼덕여 보고, 다리도 버둥거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흰눈썹황금새를 잡아먹는 누룩뱀.
새파란 나뭇잎으로 숲이 우거지고 나비, 나방 애벌레가 가득해 새들이 번식하기에는 딱 좋은 계절이지만, 새들 또한 뻐꾸기 소리로 요란할 때는 뱀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할 때이다. ‘너를 먹어야 내가 산다’는 숨 막히는 먹이사슬 게임은 계속된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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