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왜 새를 촬영하냐고 물으면 새가 나는 모습이 자유롭고 그냥 좋다고 답한다. ‘그냥’이란 말이 내 마음인 것 같다. 30여 년이 넘도록 새를 관찰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만나기 힘든 희귀한 새들을 새롭게 만난다.
지난 17일 경기도 김포시 홍도평야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흰이마기러기 가족을 만났다. 우리나라를 찾는 흰이마기러기는 100마리 미만으로 가족 단위로 관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린 흰이마기러기는 부리부터 머리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넓은 흰 깃털이 없고, 가슴에 검은 줄무늬가 없다.
흰이마기러기도 그렇다. 흰이마기러기는 2022년 3월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에서 한 개체를 처음 만났었다. 좀처럼 관찰하기 힘든 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난 10월17일 경기 김포시 홍도평야에서 7개체를 관찰하게 됐다. 흰이마기러기 어미가 새끼 5형제를 데리고 홍도평야를 찾아온 것이다.
쇠기러기는 흰이마기러기보다 몸집이 다소 크며 부리가 길다. 부리에서 머리꼭대기까지의 흰 깃털이 없으며 노란 눈 테도 없다.
흰이마기러기는 눈 테가 노란색이며 쇠기러기보다 부리가 현저히 짧다.
흰이마기러기는 큰기러기와 맨눈으로 구별될 만큼 크기가 작고, 쇠기러기와 매우 닮았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흰이마기러기의 수는 100마리 이하로 추정된다. 10만 마리 이상 찾아오는 쇠기러기와 비교하면 흰이마기러기를 만나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처럼 어렵다.
머리를 숙인 기러기들 무리 속에서는 흰이마기러기를 구별하기가 힘들다.
머리를 들고 있을 때 흰이마기러기 관찰이 가능하다.
큰기러기는 몸길이 85cm, 쇠기러기 72cm, 흰이마기러기는 58cm이다. 흰이마기러기는 왼쪽에 큰기러기들이 신경이 쓰인다.
큰기러기무리 속에 드문드문 쇠기러기가 보인다. 혹시 흰이마기러기가 있지 않을까 하고 쌍안경으로 살펴보았다. 얼마나 살펴보았을까. 부리부터 눈 사이로 이어져 머리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넓은 흰 깃털이 눈에 띄었다. 노랗고 선명한 눈 테와 짧은 분홍색 부리도 눈에 들어왔다. 흰이마기러기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다른 기러기들과 섞여 있으면 분별이 안 된다.
어미(맨 오른쪽) 곁에 있는 어린 흰이마기러기.
어린 흰이마기러기는 머리에 흰 깃털과 가슴과 배에 검은 줄무늬가 없다. 눈 테는 노란색을 띤다.
설레는 마음으로 더 자세히 관찰했다. 먹이를 먹다가 고개를 들 때마다 흰이마기러기의 노란 눈 테가 확연히 보였다. 한 마리도 보기 매우 어려운 흰이마기러기를 가족 단위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
수많은 기러기 무리 속에서도 흰이마기러기는 가족이 뭉쳐서 움직인다. 행동도 다소 조용하며 번잡하지 않다. 새끼들은 어미 곁에서 먼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흰이마기러기는 번식기를 제외하고 매우 사교적인 종이다.
아파트를 울타리 삼아 날고 있는 흰이마기러기 가족.
몸집이 작지만,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무리 속에서 당당하게 활동을 한다. 어미는 쉴 새 없이 주변을 경계하며 새끼를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큰기러기가 심기를 불편하게 하자 어미가 과감하게 달려든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은 목숨도 바칠 기세다.
큰기러기(왼쪽)가 흰이마기러기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흰이마기러기 가족이 일제히 큰기러기에 덤벼든다. 화들짝 놀란 큰기러기가 자리를 피한다.
큰기러기는 체면을 구겼다. 그러나 논두렁에 올라서 살짝 대거리해본다.
흰이마기러기를 얕잡아보다 큰기러기가 다시 호되게 당한다.
쇠기러기와 몸집은 비슷하지만, 흰이마기러기의 부리는 분홍색이며 쇠기러기보다 현저히 짧다. 다른 기러기류와 달리 앉아 있을 때 꼬리 끝보다 날개 끝이 길다. 이마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넓은 흰 무늬가 있다. 노란색 눈 테가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어미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어린 흰이마기러기는 안전하게 먹이를 먹는다.
혼자 떨어져 있는 어린 흰이마기러기는 어미의 행동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어린 새는 성조보다 전체적으로 색이 어두우며 가슴에 검은 줄무늬가 없다. 성조와 달리 눈 테가 연한 노란색이다. 이마에 흰 무늬도 거의 없다. 흰이마기러기는 주로 다양한 식물과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곡식의 알맹이를 먹으며 부드러운 풀잎을 먹는다. 몸길이는 약 55~58cm이고 몸무게는 약 1.8kg 정도다. 알을 1회에 3~8개를 낳고, 품는 기간은 25~28일이다.
4000㎞를 날아온 어린 흰이마기러기가 날갯짓으로 피곤을 달랜다.
어미 흰이마기러기가 잠시 쉬고 있다. 새끼를 돌보느라 지친듯하다.
흰이마기러기 부부가 짬을 내어 어린 새끼를 돌보며 피곤했던 몸을 기지개로 달랜다.
유라시아 대륙의 북극권에서 번식하고 한국, 유럽 남부, 중동, 중국의 양쯔강 중류에서 월동한다. 북극에 가까운 시베리아 최북단의 번식지에서 우리나라까지 수천㎞를 날아온 ‘겨울의 진객’이다. 지구 위에 2만5000~3만 마리가 생존하는 것으로 추정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멸종위기 취약종으로 분류된다. 한국에서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애니멀피플’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