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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야생동물

깔따구·대벌레·매미나방…‘돌발 해충’을 위한 변명

등록 2020-08-07 07:59수정 2020-08-07 10:12

[애니멀피플] 이강운의 홀로세 곤충기
인간이 부른 생태 재앙…입추 맞은 자연 속에서 곤충을 생각한다
7월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서 대발생해 화제가 됐던 대벌레. 따뜻한 겨울, 기후변화가 원인이라는 둥 추정과 넘겨짚기가 쏟아졌고 곤충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보도가 잇따랐다.
7월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서 대발생해 화제가 됐던 대벌레. 따뜻한 겨울, 기후변화가 원인이라는 둥 추정과 넘겨짚기가 쏟아졌고 곤충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보도가 잇따랐다.

매년 7월 중순쯤 와서 8월 초면 물러가는 장마가 올해는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숨 막히는 뜨거운 불볕더위와 시원한 소나기가 요즘에 딱 맞는 시절인데 오랜 비로 음침하고 꿉꿉합니다. 기록적인 폭우로 사람도 상하고 자연도 많이 부서졌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피로와 극단적인 자연재해가 만나니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길어진 장마로 땅이 식어서 덥지 않아 바로 가을이 올지도 모릅니다. 유난하다고 하나 이 또한 자연현상입니다. 7일은 가을에 들어서는 입추, 늦은 밤 매미가 날개를 달고 나오고 있습니다.

우화 중인 매미.
우화 중인 매미.

하늘 뚫린 듯 끝없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사람들은 안절부절못하는데 무심한 듯 비를 즐기는 생물도 있습니다. 물이 차오르는 대로 꽃을 들어 올리는 수련과 원색의 노란 꽃망울 터뜨린 노랑어리연꽃의 푸른 연못이 참 싱그럽습니다. 허브로 쓰이기도 하지만 약용이나 매운탕에 넣어 먹는 나물 미나리가 빗방울을 머금고 함박웃음을 피웁니다. 몸에 좋은 건 사람이나 곤충이나 다 압니다. 몸을 미나리 꽃 위에 턱 걸치고 누운 산호랑나비 애벌레가 맛있게 미나리를 먹고 있습니다.

노랑어리연꽃
노랑어리연꽃

미나리꽃을 맛나게 뜯어먹는 산호랑나비 애벌레.
미나리꽃을 맛나게 뜯어먹는 산호랑나비 애벌레.

이른 봄 제일 먼저 잎이 나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꽃대가 쑥 올라왔습니다. 온종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상사화 연한 분홍빛이 더욱 붉게 보입니다. 무리 지어 핀 왕원추리, 보랏빛 금꿩의다리도 비를 받아 더 청초합니다.

상사화
상사화

금꿩의다리
금꿩의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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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곤충은 무조건 혐오

도심이나 인간 생태계에선 낯선 곤충 이야기가 요즘 화제입니다. 매미나방, 깔따구에 대벌레까지. ‘돌발 해충’이라고 혹은 지구온난화를 거론하며 따뜻했던 지난겨울을 탓합니다. 외래종 붉은불개미 유입이나 매미나방 대 발생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벌레를 끔찍하다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곤충을 극단적으로 미워하는 분들이 많아질까 곤충학자로서 걱정도 됩니다. 반려동물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곤충의 가치 정도는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매미나방 애벌레
매미나방 애벌레

모기와 비슷하게 생겨 ‘모기붙이’라 불리기도 하는 '깔따구'는 모기와 같은 분류군(모기하목)에 들어가지만, 친척 관계일 뿐 다른 생물체입니다. 깔따구는 많은 병을 매개하는 흡혈 곤충 모기 때문에 억울하게 미움받는 곤충이 되었습니다. 분류학적으로 가장 진화한 곤충인 파리 종류입니다. 날개도 2쌍에서 1쌍으로 줄이고 생육 기간도 최대한 빨리 줄여서 세대 수를 늘렸습니다.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환경 변화에 대한 대비책이죠. 유전학 발전의 모태로 노벨상을 무려 6번이나 받은 초파리도 이 범주에 들어갑니다.

깔따구. 모기가 아니라 파리의 일종이다.
깔따구. 모기가 아니라 파리의 일종이다.

노랑초파리. 생물학 발전에 기여한 모델 동물이다.
노랑초파리. 생물학 발전에 기여한 모델 동물이다.

깔따구가 4급수에서 사는 생물이라는 말은 생존 한계치, 즉 4급수까지도 살 수 있다는 뜻으로 생존 범위가 넓어 생존력이 강하다는 방증일 뿐입니다. 4급수만 찾아다니는 지저분한 곤충이 아니라 물속 유기물을 분해하며 수질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분해자’로 생태적으로 중요한 곤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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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벌레, 외국에선 애완동물로 인기

배 마디가 대나무 마디 같아 대벌레라 부르지만 대벌레 목의 학명인 플라스미다(Phasmida)는 고대 그리스어로 판톰(phantom) 곧 유령이라는 뜻입니다. 새를 비롯한 육식성 포식자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식물의 일부처럼 위장하면서 비밀리에 행동하는 특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대부분 대벌레가 고온 다습한 열대나 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하므로 대벌레 돌발 대발생이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 탓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번식 방법을 생각해 보면 절대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분홍날개대벌레
분홍날개대벌레

날개가 발달하지 못하여 주로 막대기처럼 걸어 다녀 영어권에서는 ‘걸어 다니는 막대’라고 불리는 대벌레는 자손을 퍼뜨리기 위하여 천적에게 스스로 잡아먹히는 무시무시한 번식 방법을 택했습니다. 직박구리 같은 새에게 일부러 먹혀 새 뱃속의 강한 산으로 식물의 씨앗처럼 생긴 단단한 알껍데기가 벗겨지고 새가 배설할 때 그 알이 밖으로 배출되어 부화합니다.

대벌레의 알을 먹고 퍼뜨리는 직박구리.
대벌레의 알을 먹고 퍼뜨리는 직박구리.

대벌레의 알. 씨앗처럼 보인다.
대벌레의 알. 씨앗처럼 보인다.

다른 곤충의 알은 온도와 습도만 맞으면 부화하지만 대벌레 알은 새에게 먹힌 알이냐 아니냐, 즉 껍질을 벗었느냐가 부화의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러니 지난겨울이 따뜻해서 부화율이 높았다는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거꾸로여덟팔나비 알.
거꾸로여덟팔나비 알.

산림 생태계에서 대벌레가 하는 구실은 숲을 덮는 활엽수림의 잎을 먹음으로써 숲 지붕(캐노피)을 열어 숲 속 내부에 빛을 들어오게 하고 식물을 소비한 배설물로 토양을 기름지게 합니다. 식물을 통제하고 다른 생물들의 먹잇감이 되는 생태계의 엔지니어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냄새가 나는 것은 다른 곤충 종들처럼 고약한 방어물질 때문이 아니라 많이 먹어서 나는 냄새일 뿐입니다.

사실 외국에서 대벌레는 해충이 아니라 애완동물로 사랑받고 있는 곤충입니다. 흔들흔들 리듬을 타는 행동이 재미있어 보이고 큰 사이즈에 멋진 외양 때문이랍니다. 사랑받지는 못해도 미움 덩어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사람이나 대벌레나 서로 딱합니다.

날개대벌레
날개대벌레

긴수염대벌레
긴수염대벌레

■ 대벌레의 생태 동영상(홀로세 곤충방송국 힙(HIB) 제공)

사실 매년 계속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해충은 매미나방입니다. 알집이 더위나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두꺼운 이불로 싸여있는 것 같아 환경 변화에 크게 구애되지 않고 거의 모든 식물을 먹을 수 있는 대단한 식성을 갖고 있습니다. 천적은 많지 않아 브레이크 없이 늘어나면서 개체수가 점점 누적되다 보니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지난봄 이후 최근까지 대발생해 애벌레부터 어른벌레까지 도심의 등산로를 점령해 무던히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산림 속속들이 퍼져 식물을 못 살게 했습니다. 방랑자 나방(Gypsy moth)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기저기, 전 세계적으로 떠돌아다니며 피해를 끼치는 해충이며 우리나라에도 침입 외래종(Invasive Alien Species)으로 들어와 폭발적으로 발생하여 농작물은 물론 주변 야생생물에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매미나방 알집.
매미나방 알집.

매미나방
매미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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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기후변화 탓?

특이한 번식 방법으로 확산하는 대벌레의 돌발 발생이나 누적 된 개체수와 구조적 방한 시스템을 장착한 알집을 가진 매미나방 대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기후변화나 따뜻했던 작년 겨울 온도 때문만은 아닙니다. 심지어 관리 부실로 외부에서 정수장으로 서식지를 바꾼 깔따구까지 모두 기후변화라 하니 너무 어처구니없습니다.

전국적으로 또한 대략 5만 종에 이르는 모든 곤충 종들에 해당되어야 할 기후변화가 국지적으로, 몇몇 종에게만 적용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확실한 근거 없이 애매하게 ‘기후변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서는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방적 차원의 조치나 환경친화적인 구제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보기 싫다며 살충제를 뿌려대나 그 살충제가 어디 가겠습니까? 그대로 산에 남아 농축이 되어 등산객의 건강을 해치는 원흉이 될 겁니다. 약 뿌리고 쾌적한 산림 환경이라니 뭔가 찝찝하지요! 결국 해충은 살아남고 해충의 천적 곤충과 야생동물, 인간이 피해를 보는 ‘살충제의 역설’이 현실화할 것입니다. 정확하게 생태 정보를 알려주고 환경친화적인 방제 방법을 설명했으면 대부분 시민이 이해하지 않으셨을까요?

■ 매미나방의 천적 동영상(홀로세 곤충방송국 힙(HIB) 제공)

생태계 내에서 폭발적이거나 돌발적인 곤충 발생은 비교적 흔한 사건입니다. 천적이 생기거나 없어지고 먹이가 풍부해지거나 감소하는 결정적 요인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발생과 소멸로 생태적 변화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요즘의 곤충 발생 속내를 들춰보면 극심한 환경 변화로 벌레가 자연스럽게 대발생하는 경우입니다.

개발과 발전을 내걸고 자연과 환경은 뒤로 젖혀뒀던 인간들이 뒤늦게 자연을 훼손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즉 인재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깊은 산 속까지 길과 도로가 나고 가로등으로 늘 눈부셔 다른 생물들의 서식지가 부서지고 살 데는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천적이 사람인데 나오고 싶질 않지만 서식 공간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래서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사회적 거리 두기입니다. 해충 대 발생과 같은 생태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는 산과 강을 손대지 않는 생태적 거리 두기가 필요합니다. 그나마 유지되고 있던 사람과 자연의 경계를 허무는 잘못을 확대하면, 존재하고 있었으나 몰랐던 확연히 다른 생명체가 우연히 노출되거나 크게 발생하여 우리를 괴롭힐 수 있습니다.

‘그린’을 외치면서 생명과 생태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산 구석구석 태양광을 설치하고 겨우 지켜왔던 그린벨트를 과감히 훼손하려는 ‘그린 없는’ 개발 지상주의가 곤충 대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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