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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낡고 관리책임 회피…재난 부실대응 종합판이었다

등록 2023-07-18 05:00수정 2023-07-18 12:43

집중호우 참사…반복된 ‘인재’
16일 오전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시신을 수습해 물 밖으로 인양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16일 오전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시신을 수습해 물 밖으로 인양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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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은 낡고, 현장 관리는 비체계적이며, 신속히 판단하고 움직여야 할 행정 주체들은 무책임했다. ‘인재’라는 말로 부족했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참사’였다.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한국 재난대응 시스템이 안고 있는 부실의 종합판이다. 2020년 7월 부산 초량1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3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당국은 매뉴얼 보완과 대응체계 정비, 시설 확충을 약속했다. 하지만 3년이 흐른 지난 15일 충북 청주에서 유사한 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5배에 가까운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오류와 실패가 반복되는 건 ‘후진국형 재난’의 특징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19년 침수 위험이 있는 전국의 지하차도 145곳을 3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호우특보가 발령되면 출입을 통제하게 했다. 하지만 홍수경보가 발령된 미호강변의 궁평2지하차도는 아무런 조처가 취해지지 않았다. 충청북도 도로관리사업소가 별도의 매뉴얼을 만들어 운영했기 때문이다. 충청북도는 “자체 매뉴얼에는 지하차도 중앙이 50㎝ 잠겨야 도로가 통제되도록 돼 있어 사전 통제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침수 속도가 느린 빗물 고임에 대해서만 대비가 있었지, 하천 범람에 따른 침수는 예상 시나리오에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안일한 상황인식은 지하차도 인근 미호강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2018년 2월부터 진행한 교량(미호천교) 확장 및 임시제방 가설 공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공사 편의를 위해 행복청은 원래 있던 둑을 허물고 임시제방을 쌓았는데, 높이가 원래 제방(12.9m)보다 3m가량 낮은 10m였다. 행복청은 계획홍수위(9.3m)보다 높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지만, 기후위기에 따른 강우 패턴의 변화를 간과한 것이었다. 실제 나흘간 300㎜가 넘게 쏟아진 비로 불어난 물은 제방을 쉽게 넘었고, 물길이 트이자 약한 임시제방도 삽시간에 쓸려나갔다.

침수 위험이 높은 시설물이었음에도 관리·통제의 책임이 분산돼 있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지하차도를 통과하는 지방도 508호선의 관리 책임은 충청북도에 있었지만, 침수 사고의 원인이 된 다리 공사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소관이었다. 범람한 하천의 관리 책임은 금강유역환경청(금강청)과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청주시에 있었다. 사고가 일어나자 기관들은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했다.

재앙으로 가는 마지막 단계에는 실무자들의 무책임이 있었다. 금강홍수통제소는 침수 4시간 전부터 두 차례에 걸쳐 관할 지자체에 미호천의 위험 상황을 알리고 교통통제·주민대피 조처의 필요성을 통보했지만, 흥덕구청은 참사 당일 내내 그 사실을 부인하다가 하루 뒤인 16일에야 통보받은 것을 시인했다. 지하차도와 도로를 관리하는 충청북도 역시 “순식간에 물이 한꺼번에 쏠려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기상예측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에 맞춘 대책이 준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대원 엘아이지(LIG)시스템 재난안전연구소장은 “기후변화는 이제 일상”이라며 “과거처럼 ‘톱다운’ 방식의 관 중심 대응은 한계에 다다랐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아이디어를 받아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참여형 재난안전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산사태 현장.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산사태 현장.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기후변화로 달라진 재난 양상에 대비할 필요는 있지만, 현장 대응을 개선하는 등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지금 같은 강우 패턴에선 재산 피해는 막기는 어려운 만큼 인명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매뉴얼과 현장 대응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후변화 요인 못잖게 인간의 개입으로 달라진 물리적 환경도 살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경북 예천 산사태 상황을 분석한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산사태가 일어난 상부를 보면 어김없이 계곡 급경사지에 벌목을 한 곳이 있다”고 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도 “산사태 연구와 관리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경사도와 토질, 식재된 수종이 아니라, 사람이 건드려 환경이 변한 곳을 집중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이날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가 41명(세종 1명, 충북 17명, 충남 4명, 경북 19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저녁 8시 기준). 실종자는 9명(부산 1명, 경북 8명), 부상자는 34명(경기 1명, 충북 13명, 충남 2명, 전남 1명, 경북 17명)이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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