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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어르신들 거기 계세요” 마을 찾아가는 주치의

등록 2017-05-15 09:23수정 2017-05-15 10:01

[창간 기획]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배워라

경남도 ‘찾아가는 산부인과'
“대도시까지 안가도 돼 다행이죠”

서울 성북구 ‘아동전문보건소’
맞벌이 부부 아이들 건강 돌보미

충북 영동군 ‘경로당 주치의’
“시집간 딸보다 더 반갑고 고맙지”

문재인 대통령은 고용보험에 미가입한 취업준비생(18~34살)에게 매달 30만원씩 최대 9개월 동안 지급하는 청년구직촉진수당 도입을 약속했다. 이 수당은 다음달 본격 시행을 앞둔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과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에서 비롯됐다.

박근혜 정부는 성남·서울시의 청년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고 제동을 걸었지만, 경기·광주·부산·대전 등의 청년복지정책으로 확산되고 있다. 청년배당(수당) 정책은 무상급식에 이어 꼬리(지역)가 몸통(대한민국)을 흔든 사례다. 2010년 경기도교육청이 시작한 무상급식은 보편적 교육복지로 자리잡았다. <한겨레> 창간 29돌을 맞아 경기 오산 일반고 고교생 진로탐색프로그램, 충북 영동 경로당 주치의 등 지역 특성을 반영한 지방정부의 맞춤형 행정이 복지 전달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방자치 의미를 살리는 현장을 살펴봤다.

강남훈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이사장(한신대 교수)은 “지방분권 개헌 논의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조세권과 복지 지출 자율성을 확대하고, 지방정부와 협의 없이 정책을 집행해온 관행을 없애야 한다”며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지방자치를 거론한 헌법 조항(제117·118조)에는 지방자치단체라고 적혀 있다. 이를 근거로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지방자치단체라고 부른다.

지방정부들은 지방자치단체란 말에는 지방을 중앙에 종속시키고 깔보는 발상이 깔려있다고 반발한다. 지방정부를 ‘정부’로 부르지 않는 데는 지방정부의 정책 기획·집행, 예산 입안·집행 능력 등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깔려있다. 판단은 머리인 중앙정부가 할테니 손발인 ‘지방자치단체’는 시키는 일이나 열심히 하면 된다는 인식이다.

지방자치 역사 22년을 살펴보면, 예산 낭비, 부정부패 뿐만 아니라 성공 사례들도 많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방정부가 주민의 요구를 살펴 맞춤형 행정을 펴고 있다. 복지 전달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방자치의 의미도 살리고 있다. ‘탁상공론 행정’이란 비판을 자주 받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배워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쌍둥이를 임신하고 21주 됐는데, 며칠 전 이사를 하며 무리를 했어요.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이에요.”

지난 2일 경남 의령군보건소 앞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방문한 임산부 정아무개(33)씨가 초음파검사용 침대에 누우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산부인과 전문의인 김양균 박사가 화면에 나타난 태아의 상태를 살펴보며 “이쪽이 첫째 애고, 다른 쪽이 둘째 애예요. 둘 다 튼튼하게 잘 크고 있네요. 걱정하지 말고 정상적으로 활동하세요”라고 정씨를 안심시켰다.

정씨가 사는 경남 의령군엔 산부인과 병·의원이 전혀 없다. 동네 상가에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 의원 1곳을 운영하려면, 산부인과를 이용하는 임산부가 최소 250명가량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의령군 통틀어 임산부가 150여명에 불과해, 산부인과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씨는 40㎞가량 떨어진 진주시에 가서 아이를 낳을 계획이지만, 그때까지 2주마다 받는 정기검사는 ‘찾아가는 산부인과’에서 할 생각이다.

‘찾아가는 산부인과’는 경남도가 산부인과 병원이 전혀 없는 의령·고성·산청·함양 등 4개 군의 임산부를 위해 산부인과 의료진과 의료장비를 특수개조한 대형차량에 실어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서비스이다. 2008년부터 시작했는데, 지금은 경북 영양·봉화군, 강원 정선·고성군, 충북 단양군 등도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북도는 운영을 검토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방문한 임산부 김아무개(33)씨는 “지난해 의령군으로 귀농했는데, 이웃 언니들이 ‘찾아가는 산부인과’가 있다고 알려줬다. 보건소에 임산부 등록을 한 뒤로는 보건소에서 ‘찾아가는 산부인과’ 방문 일정을 문자로 알려준다. 울산 친정에 아이를 낳으러 가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검사를 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남도는 ‘찾아가는 산부인과’ 운영에 지난해 국비 2억원을 포함해 5억3100만원을 들였고, 올해도 국비 2억원 등 6억500만원을 들일 계획이다. 2015년 말 기준 4개 군 전체 등록임산부는 888명이었는데, 지난해 연인원 2182명이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이용했다. 올해는 지난 3월까지 연인원 511명이 이용해 지난해 실적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병원이 여럿이고 동네 상가 건물에 산부인과가 있는 서울 같은 대도시와는 달리, 전국에는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이 수두룩하다. 지난해말 기준 분만 취약지역(60분내 분만의료 이용률이 30% 미만이고, 60분내 분만 가능 의료기관 접근 불가능한 가임여성 비율이 30% 이상인 지역) 시군은 모두 34곳이다. 이 중 33곳이 군 단위이고 대부분 농어촌 지역이다.

중앙정부는 안 보이니 신경을 덜 쓰고 민간은 돈이 안 되니 의료 사각지대가 전국 곳곳에 생겼다. 이 빈틈을 메우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늙어가는 생애주기에 따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역 특성에 맞는 의료복지를 촘촘하게 실현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과 노력은 이웃 지방정부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동 보건소에선 3~4살 아이 11명이 땀에 흠뻑 젖도록 뛰어놀았다. 성북구는 지난 2월28일 전국 처음으로 아동전문보건소를 열었다. 이 지역에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가 많이 살기 때문이다.

아동전문보건소에서는 임산부와 영유아 건강관리, 성장단계별 맞춤형 건강·놀이 프로그램과 양육자 모임 운영을 한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건강한 생활습관과 먹거리를 익히고, 부모들은 아이들과 몸으로 놀고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4월 한달 보건소를 찾은 사람이 1400명을 넘었고, 인터넷 카페(cafe.daum.net/sbchildhealth) 회원도 1000명을 향해 가고 있다.

이미선 성북구 주무관은 “어른들은 생활습관을 고치기는 어려운데 아이들은 바로 나아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이 눈높이에 맞는 영양·운동 교육을 통해 병원은 진료를, 보건소는 건강하게 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곳으로 몫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성북구는 올해 석관동에 두번째 아동보건소를 열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오후 충북 영동군 양산면 원당리 경로당엔 마을노인 30여명이 모여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흰 가운을 입은 젊은이들이 두 손 가득 가방을 들고 들어서자 노인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날 노인들은 ‘경로당 주치의’로 불리는 공중보건의들을 기다렸다.

이소연(68) 할머니는 “연속극보다, 시집간 딸보다 더 반가운 게 이분들이다. 서너 가지 이상 병을 달고 사는 노인들한테 의사 선생님이 최고”라고 했다. 교통이 불편한 시골에 사는 나이 많고 아픈 주민들은 병·의원, 보건소에 가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서울 성북구와는 반대로 노령인구 비율이 높은 영동군은 2015년부터 ‘경로당 주치의’를 운영하고 있다. 공중보건의 20명(내과 11명, 한의과 9명)과 보건·간호공무원 11명 등 31명이 둘째·넷째 수요일마다 의료사각지역인 읍면 지역 경로당을 찾는다. 지난해 1만3734명을 진료했고, 이 가운데 197명은 위암 등 중병을 조기 발견했다. 올해 들어 3월까지 3277명이 진료받았다. 경로당 주치의가 인기를 끌자 2015년 44곳이던 대상 경로당은 지난해 55곳, 올해는 66곳으로 늘었다.

유지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응급실·산부인과와 만성질환을 관리할 의료시설을 전국에 촘촘히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는 돈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의료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책임을 구분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또 “먼저 정부는 1·2·3차로 나뉜 의료전달 체계를 제대로 정비해 서울 등 대도시로 의료수요가 쏠리는 현상을 교통정리 해야 한다. 이 바탕 위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지역거점 공공병원과 보건소를 제대로 갖추고, 지역민이 가고 싶은 의료시설이 되도록 투자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령 영동/최상원 오윤주 기자, 남은주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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