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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의 마지막 길…“한라산에 내린 눈 밟고 하늘로 가거라”

등록 2017-12-06 14:34수정 2017-12-06 22:07

숨진 지 18일 만에 장례식
“피와 눈물이 없는 쇳덩어리에 눌렸을 때
어른들의 구원이 절실했을 것…미안하다”
이군 부모, 추도사에 참았던 눈물 쏟으며 오열
한라산 돌아 모교 들렀다, 영원한 안식처로
3년동안 같은 반 김정률군 “잘가라 친구야”
현장실습 중 숨진 이민호군의 늦은 장례식이 6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산업과학고에서 제주도교육청장으로 거행됐다. 허호준 기자
현장실습 중 숨진 이민호군의 늦은 장례식이 6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산업과학고에서 제주도교육청장으로 거행됐다. 허호준 기자
참고 참았던 울음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그렇게 의연하게 대처해왔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민호의 관이 화장로로 들어가자 어머니 박정숙(49)씨가 “아들, 아들”하고 외치는 소리가 조그마한 관망실 안에 가득 찼다. 박씨를 부둥켜 안은 이군 아버지 이상영(54)씨는 ‘꺼어이, 꺼어이’하는 물기 젖은 목소리를 토해냈다. 이씨는 그동안 울음을 참고 참았다. 장례식을 치르기 전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다고 했다. 장례식 내내 말수가 없던 민호군의 형(19)도 옆에서 부모가 흐느끼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제주에서 현장실습 중 숨진 이민호군의 늦은 장례식이 6일 오전 이군이 다니던 서귀포산업과학고에서 ‘제주도교육청장’으로 거행됐다. 사고가 일어난 지 28일, 숨진 지 18일 만이다.

올 겨울 들어 전날 처음 내린 대설주의보로 한라산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추위가 닥쳤던 전날과 달리, 이날은 파란 하늘이 보이고 한결 날씨가 풀렸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추도사를 통해 “어른들의 욕망, 이기심이 꽃다운 삶을 저물게 했다. 피와 눈물이 없는 쇳덩어리에 눌렸을 때 어른들의 따뜻한 구원이 절실했을 것이다. 전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 미안하다”고 추모했다.

학생대표로 나선 3학년 강진우(18)군은 “민호를 이 자리에서 보내려니 가슴이 먹먹하다. 민호와 함께 게임을 하면서 판타지에 빠졌던 즐거운 날이 어제 같다”며 “자격증을 먼저 따겠다던 내 친구 민호야. 취업해 부모님을 돕겠다고 다짐하던 내 친구 민호야. 너를 더 따뜻하고 포근한 곳으로 보내려 한다. 더 이상 차갑지 않은 곳으로 가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앞서 이날 아침 7시20분께, 제주시 부민장례식장에 들어온 지 18일 만에 냉장실에서 나온 민호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자 어머니 박씨는 “아이고, 아이고”하는 소리와 함께 흐느끼기 시작했다. 자식 앞에 부모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는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전날 많은 눈이 내린 5·16도로를 피해 민호를 실은 운구차와 유족이 탄 차는 제1산록도로~평화로~제2산록도로를 거쳐 학교로 갔고, 대책위 관계자 등을 태운 차는 남조로와 서성로를 거쳐 학교로 향했다.

한라산 중턱이 가까워지자 제설작업이 이뤄진 도로를 달리는 차 창 밖 눈 덮인 초원에서 풀을 뜨는 말들의 모습은 푸른 하늘과 함께 한폭의 그림 같았다.

오전 9시 서귀포산과고에 이군 운구차가 들어서자 교문에서 체육관까지 교직원과 학생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고개를 숙였다. 1학년 윤한철(16)군은 “일하다가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민호형이 친한 선배여서 장례식장에서 울음을 애써 참았다. 2학기 들어 보이지 않아 현장실습을 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런 모습으로 보게 돼 너무 슬프다”고 안타까워했다. 2학년 강승진(17)군은 “3학년이 되면 현장실습을 하려고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민호형이 안타깝다”고 했다.

현장실습을 갔다가 이번 사고로 복교한 3학년 양우석(18·마산업 전공)군은 “승마장과 목장에서 말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나름 괜찮았다”며 “우리는 일을 배우러 간 거여서 회사 쪽이 정직하게 시간을 준수하고 직원이 같이 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민호와 같은 반 친구 김정률(18)군은 “가깝게 지냈는데 많이 슬펐다. 3년 동안 같은 반이어서 같이 지냈던 일이 떠올랐다. 1학년 수학여행 가서 같이 재미있게 놀았던 일, 에버랜드 가서 게임장에서 같이 놀았던 게 생각난다. 아무런 원망 없이 좋은데 잘 가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 주광혁(18)군도 “민호가 현장실습 간 뒤 연락을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민호는 친구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농구도 잘했다. 착한 친구여서 원예실습 때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힘들어서 말을 잇지 못하겠다”며 말을 끊었다.

이날 학교에서 장례식이 끝나고 유족은 민호가 사용했던 기숙사와 3학년 1반 교실을 둘러봤다. 아버지 이씨는 민호가 썼던 책상에 손을 얹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화장장인 제주시 양지공원까지 간 2학년 조기석(17·조경 전공)군은 “민호형이 기계 사고로 크게 다쳤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기숙사 옆 체육관에서 같이 농구하고 매우 활발했던 형이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교 본관 앞에는 ‘사람을 품는 학교, 꿈을 가꾸는 교실’이라는 글귀가 붙어있었다. 민호 꿈은 어디에서 피울 수 있을까. 파란 하늘이 하얗게 눈 덮인 한라산과 맞닿아 더 선명했다. 이날 민호군 주검은 화장돼 양지공원 봉안실에 안치됐다.

지난달 9일 제주시 구좌읍 ㅈ사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크게 다쳐 열흘 동안 병원치료를 받아오던 이군은 같은 달 19일 숨졌다. 이군 장례식은 애초 같은 달 21일 치를 예정이었으나 유족과 회사 쪽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미뤄오다 이날 장례식을 치렀다.

허호준 고한솔 이지혜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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