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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교회로부터 ‘거리두기’ / 오승훈

등록 2020-08-23 18:00수정 2020-08-24 02:39

세계 50개 초대형교회 중 23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가 세속도시의 한 ‘성소’가 아니라 ‘업소’가 된 현실을 씁쓸하게 증명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세계 50개 초대형교회 중 23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가 세속도시의 한 ‘성소’가 아니라 ‘업소’가 된 현실을 씁쓸하게 증명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노모에게 교회는 구원이었다.

남편을 잃고 딸 여섯에 아들 하나를 혼자 건사해야 했을 때, 교회가 있었다. 삶은 언제나 춥고 바람 불었지만, 교회에 가면 견딜 만했다. 거기엔 오늘의 위안이 있었고 내일의 믿음이 있었다. 어렵게 본 아들이 학교에서 잇따라 사고를 치자, 시누이의 권유로 개종한 기독교였다. 다니던 점집에서 철마다 굿을 하던 노모는,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들의 안녕과 무탈을 빌었듯 매일 새벽기도에 나갔다. 또 하나의 기복신앙이었지만, 그 열의는 바지런한 것이어서 훗날 권사가 됐을 정도였다. 교회에서 받았다고 여긴 만큼, 어렵게 모은 재산의 10분의 1을 교회에 십일조로 냈다가 자식들과 한때 소원해진 일도 있었다. 노모가 십일조를 낸 뒤 교회 목사는 에쿠스로 차를 바꿨다. “물질 있는 곳에 마음 있다”며 예배시간마다 헌금을 채근하던 목사를 비난하면, “교회 보고 다니지 사람 보고 다니는 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신천지부터 사랑제일교회까지 코로나19의 진앙지는 공교롭게도 교회였다. 두번의 코로나19 팬데믹이 문제적 두 교회를 중심으로 번져나갔다는 사실은, 대다수 교회엔 억울한 일이겠지만, 한국 교회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을 더 강화시켰다. 종교의 자유가 아닌 종교로부터의 자유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까닭이다.

“부동산 정책, 홍수 대책, 경제 파탄 등 범죄행위를 숨기고 마치 전광훈이 중국 우한 바이러스(코로나19)를 전파하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범죄적 행위를 하고 있다.” “문재인과 그 패거리들은 저희 신도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흑색선전 중이다. 격리 수용을 핑계로 국민을 체포, 연행하고 있다. 계엄령보다 더 무서운 방역공안 통치다.”

현재 코로나19 확진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전광훈 서울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21일 오전 유튜브 채널 ‘너알아티브이(TV)’와 변호인을 통해 밝힌 성명서의 한 대목들이다. 시민적 상식을 가졌다면, 아니 상식을 떠나 사리분별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내뱉지 못할 말들이다.

전광훈과 이만희로 대표되는 극우기독교세력이 벌인 일은 비단 코로나19의 대유행만이 아니다. 그들은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살림살이를 나락으로 빠뜨렸고 수많은 중증환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학생들의 학창시절을 시들게 했고 일하는 사람들의 여가와 휴식을 망쳤다. 의료비용의 낭비와 국가재정의 손실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도 아니고 사랑제일교회와 같은 사이비도 아닌, 노모가 다녔던 교회를 비롯한 대다수 교회는 종교의 순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고난받는 이들 곁에 머무르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교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물신주의와 배금주의를 운영 원리로 삼은 두 문제적 교회와 한국 교회 일반의 성장제일주의의 간극이 그리 멀지 않은 것도 엄연하다. 세계 50개 초대형교회 중 23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가 세속도시의 한 ‘성소’가 아니라 ‘업소’가 된 현실을 씁쓸하게 증명한다. 그곳에 예수는 없다.

물론 한국 교회가 이 꼴이 된 책임을 전광훈과 이만희 같은 자들에게만 물을 순 없다. 정치적 자유를 철저히 금압했던 독재정권은 종교적 자유만은 무한정 허용했고, 한국 교회는 독재자의 왼편에 앉아서 그를 축복한 대가로 세금 안 내고 세습되는 교회를 누렸다. 극우기독교에 ‘일용할 양식을 준 것은’ 어제의 공화당과 민정당이자 지금의 미래통합당이었고, 전광훈의 황당한 말을 받아 그를 태극기부대의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었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여전히 중세시대에 머물게 만든 건 기독교-통합당-수구언론의 ‘삼각동맹’이었다.

교회발 코로나 확산의 역설은 있다.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던 노모도 이젠 자식의 말을 듣고 집에서 예배를 본다. 장삼이사들의 소박한 바람 위에 거대한 바벨탑을 지은 한국 교회로부터 이제 본격적인 ‘거리두기’를 해야 할 때다. 예수는 교회 밖에도 있다.

오승훈 전국팀장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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