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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브로콜리 너마저?…가락시장 울려퍼진 ‘갈등의 노래’

등록 2021-08-17 04:59수정 2021-08-19 17:05

경매품목 확대 유통법안 마찰
양상추 등 거래량 적은 ‘예외품목’
경매 없이 도매상 직접거래 가능

다이어트 등 수요로 거래 급증하자
경매회사 “예외품목서 빼자” 주장

도매상 “경매수수료 4%만큼 값
오를수 있어 소비자 불이익” 반대

“모든 농수산물 거래 경매제 강화로
전체 생산자 보호” 농안법 개정안엔
농민쪽도 “경매회사 독점 강화” 반발
지난 12일 오전 서울 가락시장에서 ‘김승남 의원 및 유통개혁 적폐세력 수장식’을 열고 물풍선 던지기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 참석자들은 지난달 27일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이 “생산자·소비자 이익은 없이 경매회사의 독점적인 이익만 보장할 뿐”이라며 반대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지난 12일 오전 서울 가락시장에서 ‘김승남 의원 및 유통개혁 적폐세력 수장식’을 열고 물풍선 던지기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 참석자들은 지난달 27일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이 “생산자·소비자 이익은 없이 경매회사의 독점적인 이익만 보장할 뿐”이라며 반대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지난 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수산동 앞 하차장. ‘김승남 의원 및 유통개혁 적폐세력 수장식’이 열렸다.

‘김승남’과 ‘유통개혁 적폐세력’이라는 이름이 적힌 사람 크기 나무 모형 두개가 세워졌고, 참석자들이 나무 모형에 물풍선을 던졌다.

마이크를 잡은 정선미 수산특중도매인연합 전무는 “‘시장도매인제’ 도입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경매회사 편만 드는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에 지금도 과도한 권한을 더 키워주는 김 의원 농안법 개정안은 생산자·소비자 이익은 없이 경매회사의 독점적인 이익만 보장할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안법 개악 반대’ ‘김승남 각성하라’라고 쓰인 머리띠를 묶은 참석자들은 박수로 호응했다.

가락시장에서 여당 의원을 물속에서 장사 지내는 퍼포먼스가 열린 이유는 뭘까.

12배 늘어난 브로콜리 물량이 갈등 원인?

이날 수장식이 열린 맥락을 알려면 복잡한 가락시장 운영체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한해 4조5천억원 규모 농수산물이 거래되는 국내 최대 공영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에서 농산물 중 고구마·양상추·브로콜리 등과 수산물 중 수입 수산물 등은 특별 취급을 받는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 따라 공영도매시장 농수산물은 ‘출하자(농어민)→경매회사(도매시장법인)→도매상(중도매인)’ 과정을 거쳐 유통돼야 하지만, 거래량이 적은 일부 예외 품목들(지난해 기준 8.4%)은 경매를 거치지 않고 도매상(중도매인)의 직접거래가 가능하다. 그런데 20년 전 예외품목으로 지정됐던 고구마(다이어트 식단)와 양상추·브로콜리(샐러드) 등이 밥상문화의 변화 속에 거래량이 크게 늘었다.

시장관리운영위원회가 올해 말 열릴 예정인 가운데, 지난달 27일 김승남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은 예외품목을 선정하는 시장관리운영위 위원 3분의 1을 농식품부·해수부 장관이 추천하도록 하는 농안법 개정안을 내놨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중간도매상들은 집단반발하는 분위기다. 나용원 한국농산물중도매인조합연합회 사무국장은 “현재 20명인 위원들 가운데 6~7명이 장관 추천으로 들어오면 기존 경매회사 쪽 위원 2~5명에 더해져 반수 이상이 경매회사 쪽 바람대로 예외품목을 크게 줄일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경매회사들은 수수료(4%) 수익이 늘지만, 소비자는 그만큼 더 비싸게 농수산물을 사야 하고 중간도매상도 비용 지출이 더 늘어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7곳과 한국농산물중도매인조합연합회 등 중간도매상 연합회 15곳 등도 “경매회사 독점을 강화하는 법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성명서를 잇달아 발표했다.

재지정 앞두고 경매회사 구명용 개정안?

위법·탈법이 확인돼 경매회사 지정을 취소할 때는 농식품부·해수부 장관과 협의하도록 한 개정안 내용도 ‘경매회사 구명용’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가짜 경매’로 수수료만 챙겨온 수산 쪽 경매회사들을 적발해 업무정지 15일 행정제재를 내리고 검찰에 고발한 서울시가 올해 말 재지정 심사 때 이들을 재지정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 중이었기 때문이다.

경매회사들이 농식품부의 암묵적인 묵인·비호 아래 독과점적 이익을 누려왔다고 보는 서울시와 중도매인들로서는 이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농안법 개정안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유통개혁 적폐세력’과 손을 잡았다며 수장식이 열린 이유다.

당사자들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한다. 주원철 농식품부 유통정책과장은 “어떻게 농식품부가 경매회사를 위할 수 있겠느냐”며 김 의원 법안에 대해선 “상정 전이기 때문에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수산물 경매회사인 강동수산㈜의 최병한 전무는 “의원 발의안에 대한 별도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독과점적 경매시스템 둔 채 경매제 강화?

김승남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소농이나 품질이 조금 떨어지는 농수산물도 공영도매시장에서 예외 없이 거래돼야 한다는 것이 농안법 취지다. 예외 없이 모든 농수산물을 거래할 수 있는 경매제를 강화해야 전체 생산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보고 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모든 상품의 가격은 경매장에서 투명하게 형성된다’는 경매회사들의 논리를 답습한 것일 뿐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100t 초과’ 출하자와 ‘1t 미만’ 출하자의 경매 낙찰가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감 1㎏의 경우 ‘100t 초과’ 출하자는 2822원을 받았지만, ‘1t 미만’ 출하자는 73%인 2065원밖에 못 받았다. 또 양파는 70.8%, 배추는 68.6%, 당근(국산)은 68%밖에 받지 못했고, 수박·사과·복숭아·참외·배·감자·애호박·청양고추 등도 마찬가지였다. 소농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게 현재 경매시스템인 셈인데, 농수산식품공사는 경매사와 대형 출하자 사이 유착 등이 이런 과도한 가격 차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농식품부가 경매회사 비호 의심을 받아가면서까지 가락시장의 구조적 개혁을 외면해온 게 현재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18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 체제로 운영되는 가락시장 경매회사들의 경매수수료 등 짬짜미 사건을 조사해 과징금 116억원을 부과하면서, 농식품부에 독과점 해소와 경쟁 촉진을 위한 △경매회사 공모제 도입 △시장도매인제 도입 △경매 예외품목 확대 △장관 승인 사항 축소 △경매회사 평가권 서울시 이관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경매회사를 3~5년마다 공모하면 단기 수익 극대화에 주력할 수 있다’ ‘평가권을 서울시에 이관하면 피평가자(경매회사) 부담이 과다해진다’ 등을 이유로 5개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김양진 이승욱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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