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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이 급식 180명분 만들어…폐암은 시작일 뿐이었다”

등록 2023-03-31 07:00수정 2023-03-31 17:51

파업 나선 급식노동자들
총파업을 하루 앞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제1차 교원역량혁신 추진위원회 회의장에서 손팻말을 들고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총파업을 하루 앞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제1차 교원역량혁신 추진위원회 회의장에서 손팻말을 들고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천 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교급식 노동자로 일해온 박아무개(50)씨의 일상은 지난해 8월 이후 송두리째 바뀌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차원에서 진행한 건강 검진에서 폐암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매주 산을 타는 등 운동을 해왔던 터라 검사를 받을 때도 ‘특별한 것은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폐암은 시작이었다. 박씨의 신장과 뇌에서도 암세포가 발견됐다. 지난해 9월 폐와 신장에 있는 암 제거 수술을 받았다.

“1∼2달 전까지는 전화 통화도 어려웠어요.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공원 세 바퀴만 돌아도 힘이 듭니다.” 2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박씨는 말했다. 박씨는 이날 전화 인터뷰 중에도 여러차례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골랐다.

박씨가 학교 급식실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이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자녀를 위해 봉사활동 개념으로 시작한 것이 13년째 이어졌다. 박씨는 “그때는 돈도 안 받고 학부모 봉사활동으로 운영됐다”며 “아무래도 학교에서 하는 일이라 아이들과 생활 패턴이 비슷하고, 육아와 병행할 수 있어 아예 직업으로 삼아 계속 해왔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은 어느덧 성인이 됐지만 박씨는 여전히 학교 급식 노동자로 남았다.

노동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은 일부 작업이 자동화됐지만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수백명을 먹일 반찬에 들어갈 야채를 직접 손질해야 했다. 점심시간 2시간30분 전부터 조리원 한명당 150∼180명의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음식을 다 만들어도 휴식시간은 없었다. 바로 배식에 투입돼야 했기 때문이다. 배식이 끝나면 설거지와 청소가 기다렸다. 박씨는 “매일매일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고 음식을 만드는 일이다 보니 미리 일을 끝내고 쉴 수도 없었다. 사람을 늘려줘야 하는데, 고되다는 게 알려져서 그런지 일하려고 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고강도 노동을 10년 넘게 버텨왔지만 결국 박씨는 지난해 8월 폐암 판정을 받고 일을 쉬어야 했다. 산업재해 신청을 한 박씨는 지난 27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인정 통보를 받았다. 정확한 산재 인정 공문을 받아보지 못했지만 박씨는 음식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생각한다.

조리흄은 주로 기름을 사용해 튀김 등을 만들 때 발생하는 발암물질이다. 국제암연구소는 조리흄을 폐암을 유발하는 원인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조리흄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환기장치가 중요하다.

하지만 인천시교육청이 지난해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 494곳의 학교 급식실 작업환경을 조사한 결과 304곳(61.5%)이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환기설비 가이드라인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인천시교육청 쪽은 “고용노동부의 학교 급식실 가이드라인은 2021년 12월 처음 나왔다. 지역 내 학교는 대부분 가이드라인 발표 전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기준을 충족한 학교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최근 내놓은 학교 급실실 환경 개선 계획을 두고도 박씨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환기설비 개선 못잖게 1인당 배식 인원을 줄이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박씨는 “관공서나 병원에도 식당이 있는데 거기는 조리사 1명이 50명에서 70명을 배식한다. 하지만 학교는 1명당 150∼180명이다”라며 “다른 곳에서는 일을 쉬어가면서 할 수 있지만 학교는 인원이 없으니 계속 튀김기 옆에 있어야 한다. 노동 강도를 줄이는 것이 학교급식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여성노조가 참여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31일 노동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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