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생계를 위협받는 이들을 위해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지방정부가 늘고 있다. 전북 전주시와 강원도 등에 이어 서울시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긴급생활비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감염병 확산으로 전례 없는 불황이 닥치면서 지방정부들이 나서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재난기본소득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가 18일 내놓은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 대책’을 보면, 시는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워진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위소득 이하 가구에 30만~50만원씩을 지급할 계획이다. 중위소득이란 국내 총가구를 소득 순서로 줄 세웠을 때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하는 가구의 월평균 소득으로 △1인 가구 175만7천원 △2인 가구 299만1천원 △3인 가구 387만원 △4인 가구 474만9천원이다. 긴급생활비 지원금은 가구 구성원 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1~2인 가구는 30만원, 3~4인 가구는 40만원, 5인 이상 가구는 50만원이다. 모바일 지역사랑상품권이나 선불카드로 단 한 차례만 지급되며 지원금은 오는 6월까지 쓸 수 있다.
서울시가 예상하는 수혜 규모는 117만7천 가구다. 오는 30일부터 동주민센터나 ‘서울시 복지포털’ 누리집에서 신청할 수 있고, 소득 조회가 끝나면 신청 뒤 3~4일 안에 지급된다. 다만 중복 지원을 막기 위해 지난 17일 국회에서 통과된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따라 지원받는 가구와 실업급여·긴급복지·청년수당 수급자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애초 서울시는 중위소득 이하 모든 가구에 60만원의 상품권을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을 정부에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시 재난관리기금 등에서 관련 예산을 충당할 방침이다.
지방정부 가운데 재난기본소득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전주시다. 전주시는 지난 13일 취약계층 5만여명에게 1인당 52만7천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용직 노동자, 실직자, 생계형 아르바이트생, 택시 기사, 시간강사 등이 지원 대상이다. 경기도 화성시는 전년 대비 매출액이 10% 이상 줄어든 소상공인 3만3천여명에게 평균 200만원의 재난생계수당을 지급한다. 강원도 춘천시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 가운데 중위소득 120% 이내 범위에서 13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광역지방정부에선 강원도가 처음으로 지난 17일 재난기본소득 성격의 ‘긴급 생활안정 지원금’(1인당 40만원)을 도민 30만명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현재 논의되는 재난기본소득은 일회성에 그치는 일종의 ‘재난수당’ 개념으로,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이고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과는 차이가 있다. 시·도지사 가운데 재난기본소득을 발 빠르게 주장하고 나선 이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다. 이들은 국민 모두에게 1인당 10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이 지사는 보편적 복지 개념으로 일률적 지급을 주장한 반면, 김 지사는 고소득층의 경우 지급한 금액을 내년도 세금으로 다시 환수하는 선별적 복지 방식을 제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이철우 경북지사, 양승조 충남지사, 원희룡 제주지사는 생계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계층이나 직업군, 소득수준 등으로 제한해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국민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려면 51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복지 전문가들은 재난 극복을 위해 중앙정부 차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특정 지역만 재난기본소득을 운영할 경우, 지역별 지원 수준이 달라지는 등 전국적인 차원에서 공정성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재난기본소득은 지방정부가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집행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도 “코로나19 문제는 주변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과 연결되기 때문에 중앙과 지방의 예산이 함께 투입돼야 한다”며 “이번 위기를 통해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사회를 경험하고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하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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