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춘 인천시장이 지난 10월15일 시청 애뜰광장에서 ‘2025년 수도권매립지 매립 종료’를 선언하고 있다. 인천시 제공
“2025년으로 설정해 놓은 수도권매립지 종료 시계는 한 치의 망설임과 물러섬 없이 달려갈 것입니다.”
지난 10월15일. 박남춘 인천시장은 시청 인천애뜰에서 야심차게 ‘수도권매립지 2025년 매립 종료’를 선언했다. 정책 결정에 신중하다 못해 ‘고구마 같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지역 최대 골칫거리 중 하나인 수도권매립지 문제에 이례적으로 단호한 태도를 천명한 것이다. 재선을 위한 ‘정치적 승부수’로도 읽혔다.
그리고 한달 뒤. 박 시장은 사면초가에 놓인 형국이다. 지난달 12일 인천시만의 자체매립지와 소각장 증설 계획을 발표한 그는 우군을 찾기 힘들다.
환경부·서울시·경기도·인천시로 구성된 수도권매립지 4자 협의체는 인천시를 빼고 대체 매립지 선정에 들어갔다. 야당은 물론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천시 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도 사전조율 없이 결정했다며 반발했다. 일부 기초단체장은 단식농성까지 벌였다. 내·외부 갈등에 직면한 박 시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매립 연장 빌미 된 2015년 4자협의체 합의문
수도권매립지를 2025년으로 종료하겠다는 것은 박 시장의 공약 중 하나였다. 인천 서구에 있는 수도권매립지(전체면적 1685만㎡)는 1987년 난지도 매립장이 포화함에 따라 당시 서울시 요청으로 환경청이 주도해 조성됐다. 애초 매립 종료 시점은 2016년이었다.
하지만 매립 종료 1년을 앞둔 2015년, 유정복 당시 시장이 4자 협의체에서 2025년까지 매립 연장에 합의했다. 당시 합의문에는 ‘2016년 말 사용을 끝내기로 한 수도권매립지를 2025년까지 더 사용하되, 사용 종료 때까지 대체 매립지가 조성되지 않을 경우 현 매립지 잔여 부지(3-2공구)의 최대 15%(106만㎡) 범위에서 추가 사용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포함됐다. 대신, 인천시는 환경부와 서울시가 갖고 있던 매립면허권(토지소유권 포함) 1558만㎡ 중 1차분으로 665만㎡를 넘겨받았다.
수도권매립지 현황도. 한겨레 그래픽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매립 영구화’의 구실을 줬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었다. 실제 2015년 4자 합의 뒤 수도권매립지를 대신할 대체 매립지 선정 등 후속 조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박 시장은 서울·경기도가 4자 협의체 합의문에 따라 조건부인 ‘추가 연장’을 빌미로 협의에 소극적이라고 판단하고 독자적인 행보에 들어갔다. 대체 매립지 선정부터 조성까지 행정 절차상 최소 5년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수도권매립지 매립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발생지 원칙’에 따라 인천시만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자체 매립지와 소각장 건설 계획을 지난달 12일 발표했다. 인천에코랜드(가칭)로 이름 붙인 자체매립지 예비후보지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는 옹진군 영흥면 외리 248-1 일대 14만8500㎡ 터로 선정했다. 아울러 2~3개 기초지자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권역별 신규 소각장 4곳 중 부평·계양지역을 제외한 3곳을 공개했다. 후보지로 선정한 소각장은 △중구 신흥동 남항환경사업소(하루 처리용량 250톤 규모) △남동구 고잔동 음식물류폐기물 사료화시설 용지(350톤) △강화군 용정리 생활폐기물 적환장(45톤) 등이다.
인천시가 영흥도를 자체매립지 후보지로 발표하자 장정민 옹진군수가 이달 1일부터 시청 앞 보도에 천막을 설치하고 단식농성을 벌였다. 그는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이 긴급당정회의에서 중재에 나선 뒤 7일 단식을 풀었다. 이정하 기자
안팎 거센 반발에 직면…“1년 동안 뭐 했나”
발표 이후 그는 내·외부에서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인천시의 독자 행보에 환경부·서울시·경기도는 인천시를 빼고 대체 매립지 후보지 공모 절차를 밟겠다고 예고했다. 이들은 4자 협의체 합의사항 준수를 요구하며, 다시 논의하자고 주문했다. 이들과의 갈등은 이미 예견된 부분이었다. 박 시장은 쓰레기 독립 선언 당시 “벌써부터 인천의 독자 행보를 막으려는 3자의 압박과 공세가 거세다. 300만 시민 여러분이 함께 가지 않으면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여정이다”라고 호소한 바 있다.
그러나 내부에서도 반발이 터져 나왔다. 자체매립지 후보지로 선정된 영흥도와 소각장 후보지 인근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영흥도 주민들은 쓰레기매립지 건설 반대 투쟁위원회를 구성해 매일 시청 앞에서 철회 집회를 열고 있다. 소각장 백지화를 요구하는 민원도 폭주하고 있다.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해당 지역 기초자치단체와 국회의원마저도 등을 돌렸다. 인천 연수구·남동구·미추홀구(이하 남부권 단체장)는 지난달 26일 ‘중구와 남동구 소각장 건립 계획 백지화’를 요구하며 공동대응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들 구청장은 박남춘 인천시장과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7일 인천시청에서 장정민 옹진군수(가운데)가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의 긴급당정회의 결과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정하 기자
같은 당 소속 장정민 옹진군수는 자체매립지 후보지로 선정된 영흥도를 빼달라며 이달 1일부터 7일까지 시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민주당 소속인 인천 서구청장도 인천 6개 군·구 쓰레기를 처리하는 청라소각장을 폐쇄하고, 다른 곳에 자체 처리시설을 짓겠다는 입장이다. 지역 주민 반발이 거센 연수구·남동구를 지역구로 한 민주당 박찬대·맹성규 의원 등도 반대 의견을 시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당 소속 기초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이 반발하면서 ‘박 시장의 리더십’에도 적잖은 흠집이 났다. ‘집안 구성원 설득도 못 하면서 어떻게 외부 압력(환경부·서울시·경기도)을 뚫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가’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 시장은 지난해 10월14일 10개 군·구 단체장과 자체매립지 조성 등을 위한 공동 합의문도 발표했지만, 1년여 동안 이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집안싸움’ 일단 봉합…주민 설득 묘수 나올지는 미지수
내분 양상에 민주당 인천시당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시당은 지난 6일 저녁 8시 국회의원, 군수·구청장, 인천시장이 참석한 긴급당정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자체매립지의 경우 시·군·구 간 충분한 협의와 공론화를 거쳐 최적지를 선정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이번 당정 합의가 영흥도 후보지 선정을 백지화하는 것은 아니며, 옹진군수가 제시하는 안과 비교해 의견 수렴 절차를 다시 밟아보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인천시당 내 기초단체장과 시의원, 군·구의원, 전문가로 구성된 ‘매립지 특별위원회’를 두고, 위원회가 향후 인천시와 협의 주체를 맡기로 했다. 소각장은 시의 제안과 군·구 제안을 비교해 협의하자는 쪽으로 봉합했다.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 선언 1년 전인 지난해 10월14일 박남춘 인천시장이 군수·구청장과 자체 매립지 조성을 위한 공동 노력을 담은 합의문을 체결했다. 인천시 제공
그러나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긴급 당정 합의가 강제성이나 대표성을 띠기 어려운데다, 주민들의 반발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임승진 영흥도쓰레기매립지 반대투쟁위원회 위원장은 “민주당 당정 협의는 반대투쟁위와 전혀 논의된 바 없고, 우리가 합의안을 수용할 이유도 없다. ‘자체매립지 영흥도 입지 철회’라는 우리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철회 발표 때까지 강경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 쪽은 수도권매립지 문제는 반드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본다. 박 시장 쪽은 “전임 시장이 잘못 꿴 수도권매립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천의 미래도 없다. 시대적 과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이라며 “시가 정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하지만, 군·구가 더 좋은 제안을 하면 검토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엔 선을 그었다. 박 시장 쪽은 “정치 셈법을 고려했다면 수도권매립지 문제에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대응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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