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창공이 더없이 푸르러 눈이 시린 오늘 쓸쓸히 봉분마저 무너져 평분이 돼버린 인적 드문 이곳 장흥 석대들 동학농민혁명군 묘역을 참배하려 합니다.”
12일 전남 장흥군 장흥읍 장흥공설공원묘지 4묘역에 전국 동학 관련 40개 단체 관계자 130여명이 모여 동학혁명 발발 130주년을 기념하는 장흥취회(집회)를 열었다. 장흥 동학농민혁명군 묘역으로 불리는 4묘역은 1894년 장흥 일대에서 숨진 동학농민군 묘지 1699기가 안장된 곳이다.
참배객들은 ‘남도장군 이방언’ ‘웅치대접주 구교철’ ‘고읍대접주 김학삼’ 등 동학지도자들의 이름이 적힌 만장을 들고 묘역 곳곳에 서 있었고 묘지마다 국화를 놔두며 동학군 영령을 위로했다. 그동안 개별적인 참배는 있었지만, 전국차원의 추모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허채봉 부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대표는 기도문에서 “이곳에 잠든 무명 동학농민군은 처음부터 이름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고향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정겨운 삶을 살았던 이들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억압에 짓이겨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맨손에 죽창 들고 분연히 일어섰다가 낯선 이곳 장흥 석대들에서 장렬히 전사했다”고 추모했다.
이후 1박2일 일정으로 ‘소년 뱃사공’ 윤성도(1878∼1965) 생가 탐방, 동학 판화가 박홍규씨 특강 등을 이어갔다.’ 윤성도의 손자 윤병추(92)씨는 “할아버지가 일본군에 쫓긴 동학군을 배에 태워 고금도, 청산도, 금일도 등으로 피신시켜 살렸다”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동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단체들은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를 창립하고 장흥 묘역 성역화, 전국적 기념행사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박용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상임대표는 성명서에서 “장흥동학농민혁명군 묘역은 관리가 전혀 되고 있지 않아 묘지라고 부르기도 부끄럽다”며 “정부는 동학과 같은 시기 일어난 1895년 을미의병 참여자 145명을 서훈했다. 똑같이 항일무장투쟁인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서훈에서 차별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전북에서도 기념사업이 잇따라 진행되고 있다. 고창군은 10일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고창 출신 전봉준 장군의 동상 ‘義(의)의 깃발 아래’ 제막식을 열었다. 고창군청 인근 공원에 세워진 동상은 국민 성금과 군비 등 6억원을 들여 국경오·강관욱 작가가 제작했다. 농민군이 관군과 싸워 처음으로 승리한 황토현 전적지가 있는 정읍시도 황토현 전적과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의 활용·보존 방안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