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진구갑의 게시판에 붙은 4·15 총선 후보자들의 홍보물. 서병수 후보 캠프 제공
’부산진구의 자부심’(김영춘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재인 심판’(서병수 미래통합당 후보)
6일 부산 부산진구갑 홍보게시판에 선거관리위원회가 부착한 홍보물에 적힌 여·야 후보의 구호는 확연히 달랐다. 김영춘(58)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부산진구 토박이라는 것을 부각하려는 듯 지역 발전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서병수(68) 미래통합당 후보는 ’대한민국의 심장 부산의 심장’인 부산진구에서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고 심판하자고 호소했다.
부산진구갑은 부산 18개 지역구 가운데 경쟁이 가장 뜨겁다. 화려한 타이틀을 단 여·야 부산 선거대책위원장끼리 대결이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서 후보는 부산시장을 지냈다.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 부산진구갑 후보가 유세차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영춘 후보 제공
부산진구갑은 1992년 14대부터 2012년 19대까지 미래한국당의 뿌리정당인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후보가 6차례 연속 이긴 텃밭이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 후보인 김 후보가 당선됐다. 미래통합당은 당연히 수복을 노린다. 지난달 5일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4선 관록의 서 후보 공천과 관련해 “가장 경쟁력이 있고 반드시 탈환해야 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 후보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재기의 의미도 있어 승리가 더욱 절실하다. 2000년 해운대구청장에 당선되며 지역 정가에 얼굴을 알린 그는 2년 뒤 해운대구기장군갑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내리 4선에 성공했다. 2014년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서 당선됐다. 하지만 2년 전 지방선거에선 오거돈 부산시장한테 고배를 마시고 재선에 실패했다. 그가 치른 일곱차례 공직선거에서 처음 패배한 선거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가 컸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는 6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당이 전국 과반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3선에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강력한 후보와 맞붙게 됐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차기 대선 주자로도 꼽힌다. 그는 2000년(16대)과 2004년(17대) 서울 광진구갑에서 두차례 당선됐다. 미래통합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재선에 성공한다면 대선 후보로 부상할 수 있다. 그는 6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4년 전엔 고향을 위해 일해보라며 지역주민들이 기회를 주셨다. 이번에 지역주민들이 다시 밀어주신다면 더 큰 정치를 위해 뛰어들 것이다. 주민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며 대권 도전에 나설 뜻을 밝혔다.
서병수 미래통합당 부산 부산진구갑 후보가 유세차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서병수 후보 제공
양쪽 캠프 관계자들은 두 사람 가운데 살아남는 사람은 앞으로 선택지가 넓어질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김 후보 쪽 관계자는 “김 후보가 4선에 성공한다면 대권과 부산시장 둘 다 기회가 열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 후보 쪽 관계자는 “서 후보가 5선에 성공한다면 부산시장 도전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 부산진구갑 후보가 유세차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영춘 후보 제공
두 사람은 전·현 대통령을 상징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김 후보는 이른바 ‘원조 친노’는 아니지만 지역구도를 타파하겠다며 2000년 당선이 유력했던 서울 종로구를 버리고 험지인 부산 북구강서구을에 출마했다가 눈물을 흘렸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잇겠다며 2011년 가족을 데리고 부산에 정착했다. 이듬해 부산진구갑 국회의원선거에서 낙선해 서울로 다시 가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돌았지만 그는 부산진구를 지켰다. 2014년 지방선거 때는 오거돈 후보를 지지하며 부산시장 출마를 포기했다. 결국 2016년 부산진구갑 국회의원선거에서 당선됐고, 2년 전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다 오 후보에게 다시 양보했다. 오 후보는 서 후보를 꺾고 부산시장에 당선돼 23년 만에 지방권력 교체에 성공했다. ‘험지’에 내려오고 ‘자리’를 희생한 그를 눈여겨본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현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했다.
서병수 미래통합당 부산 부산진구갑 후보가 유세차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서병수 후보 제공
서 후보는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사무총장과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으며 박근혜 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2017년 ‘최순실 게이트’로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당하자 부산시 간부회의에서 ‘국가적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2017년 11월 홍준표 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이 수감 중이던 박 전 대통령을 제명하자 페이스북에 ‘구속도 모자라, 구속영장도 모자라, 이제는 출당이라는 그 잔인한 징벌 앞에 도저히 마음잡기 힘든 고통의 밤’이라고 썼다. 평소에도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박 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두 사람은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맡겨 지난달 31일~1일 벌인 여론조사에선 김 후보가 38.9%, 서 후보가 35.9%로 나왔다. 정근(59) 무소속 후보는 11.2%였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근 부산 부산진구갑 무소속 후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는 정근 무소속 후보의 득표율이다. 19·20대 총선에서 부산진구갑의 1·2위 득표 차가 3%포인트대에 그쳤다. 부산대 의대를 졸업한 뒤 봉사단체 ‘그린닥터스’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 후보는 8년 전 19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 낙하산 공천에 반발하며 무소속 출마했는데, 24.7%라는 무시 못할 득표를 했다. 정 후보의 완주는 지지층이 겹치는 서 후보에게 불리하다는 평가가 많다. 서 후보는 정 후보를 두차례나 만나 설득했고, 막판까지 후보 단일화 내지 정 후보 사퇴를 기대하고 있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