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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IMF때문에 붓 꺾은 미술학도가 운영…비싸도 수준있고 깔끔한 책만 다뤄

등록 2006-02-16 17:34수정 2006-02-17 16:51

헌책방 순례/가자헌책방

가자헌책방(02-456-6002, www.gajagajabook.co.kr)에는 그림이 있다. 60~80호짜리 유화 10여점. 벽에 걸리기 마련인 그것들이 구석에 겹쳐 세워져 있다.

주인 김씨는 올해 마흔 셋. 96년 청파동 화실이 문을 닫기 전까지는 창창한 미술학도였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원로화가 밑에서 12년간 사숙하면서 상형전, 목우회, 신기회 등에 여러 차례 입선도 했다. 스승을 닮아 원색계열의 정물과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아이엠에프는 모든 것을 바꿨다. 화실이 문을 닫으며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역시 결혼과 함께 그림 외에 돈 되는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책 모으던 취미를 살려 중곡역 앞에 헌책방을 차렸다. 3년 만에 접었다. 경험 부족을 실감했다. 그 무렵 둘째를 낳았고 간간이 잡았던 붓을 완전히 놓고 중간상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책방과 책의 이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만두는 우이동의 한 서점을 인수하면서 공간이 필요했고 마침 대원외고 앞에 빈데가 나서 얼결에 책방 간판을 달았다. 25평을 빼곡하게 책으로 채웠다. 지금은? 사방벽을 제외하고는 중간을 텅 비웠다. 화실을 겸할 것인가, 다시 책으로 채울 것인가. 구석에 겹쳐둔 그림들이 자꾸 소리를 친다.

물감처럼 굳은 손에 붓이 잡힌대고 전과 같은 붓질이 나올지 의문이다. 비워둔 공간은 책꽂이에 책을 꽂기 전 분류하고 손질하는 곳으로 쓴다. 그림붓 역시 먼지떨이 그대로다. 그나마 미술책은 보이는 대로 집에 가져다 두었다. 주인 김씨가 오기 전, 안주인 이옥랑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몇 차례 둘러보아도 미술책이 보이지 않은 것은 그 때문. <분교-들꽃 피는 학교>(강재훈, 학고재)를 뽑아들고 계산을 할 때 카운터의 김씨는 그 책을 기억했으며 그 옆에 꽂힌 <백제금동대향로-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학고재)도 복기해냈다. 미술책은 아니되 관련이 있기 때문.

“전시회 열려면 돈이 필요해요. 팜플렛, 대여료, 액자값, 음식값 등 1500만원쯤…. 열심히 벌고 있습니다.” 시간도 문제다. 낮동안 책을 찾아다니고 밤에는 목록 올리느라 짬이 없다. 세 아이들 때문에 4시에 아내와 교대해 밤 10시께 들어가니 부부가 얼굴 맞댈 시간조차 짧다. 여기저기 흔적처럼 남은 꿈들을 엮으면 언젠가는 다시 붓을 잡고 개인전도 열 것이라고 믿는다.

미술책을 제외하면 꼼꼼하게 모아들인 인문사회, 철학 책의 수준이 무척 높다. “적게 벌더라도 아무 책이나 팔 생각은 없어요. 밑줄이 있거나 도장찍힌 것도 될수록 취급 안해요. 값이 조금 비싸지만 여직 회원들 불만은 없습니다.”

시작 무렵 몇 되지 않던 인터넷 책방이 전국 60~70곳, 서울에만 40~50곳이다. 날로 경쟁이 치열해져 규모가 큰 곳을 빼고는 매출이 고만고만하다. 책 확보가 열쇠. 그동안의 깐깐한 이미지도 유지해야 하고 책을 팔려는 사람들도 높은 값을 요구하기 때문에 적정한 값으로 제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만 막상 그렇게 됐을 때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명함 대신 받은 스티커는 알록달록 촌스러움의 극치. 도저히 미술가 책방의 것이 아니다. “그것도 얼결에 만들었어요.” 야무진 꿈과 엉겁결의 결정이 뒤섞인 책방에서 외고학생 하나가 지갑을 톡톡 털어 두툼한 꿈 2개를 건져갔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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