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 나아져 지상으로 올라갔으면
헌책방 순례/수원 오복서점 “무협지 <천애기>를 파실 분 연락주세요.” 수원 오복서점(031-243-5375) 주인 안정철(50)씨는 6권으로 된 이 책을 꼭 구하고 싶다. 백혈병의 단골손님이 그 책을 다시 읽고 싶다면서 자신에게 부탁했다는 것. “병원에서 진통제도 안 놔준대요. 정신력으로 버티시지만….” 원제목 <천애협려>의 이 책은 1960년대 대만의 중앙일보에 연재됐던 와룡생의 작품. 그가 “내 문학의 최고 결정판”이라고 외쳤던 정통 무협 역사소설로 얽히고 설킨 인연, 무림계의 주도권 쟁탈, 미남청년을 중심으로 한 연정 등 지은이의 특장이 집대성되었다. ‘늙은 무협지 팬’에게 향수어린 작품이다. 부축을 받고서 계단을 어렵사리 내려온 반신마비의 한 손님은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았다. 사는 곳이 멀지 않다는 그는 운동삼아 책방을 찾아와 책을 고르고 주인과 어눌한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주인은 물을 끓여 둥글레차를 대접했다. 물론 누구라해서 특별대접은 아니다. “자주 오던 단골이 발길을 끊으면 돌아가시지 않았나 걱정돼요.” 아무래도 나이든 분들이 책을 좋아한다. 읽고는 싶은데 눈이 안보인다고 하소연하는 분들도 많다. 그리고 화성과 행궁이 가까워서인지 역사책이 잘 나간다. 유서깊은 도시라서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이 많고 직접 관련된 사람이 많아서일거라고 말했다. 남문서점 건너편 오복서점에 발을 들여놓으면 언뜻 새책방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깔끔하다. 인테리어도 현대식이고 갖춘 책들도 거의 새책 수준. 흩어진 책이나 쿱쿱한 냄새가 전혀 없다. 주인 안씨가 워낙 깔끔해서일 터. 군살없는 주인처럼 책들도 허투루 꽂힌 게 없다. “책방주인은 물건으로 얘기해야 한다”는 그는 한권이라고 손님들이 사갈 만한 내용과 깊이있는 책을 갖췄다고 말했다. 1975년 대학촌 문명서점에서 8년정도 책방 일을 배운 그는 여러 서점을 전전하다고 청량리에서 친구가 하던 책방을 끝으로 서울살이를 접었다. 1990년 지금 자리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8평으로 오복서점을 냈다. 행궁을 복원하면서 그 자리가 헐려 작년 3월 이곳에 33평 둥지를 틀었다. 인터넷사이트(www.obookstore.co.kr)도 3년전 열어 두고 주로 고서나 희귀본 위주로 엄선해 올리고 있지만 판매는 미진한 편이다. “온라인 손님은 책의 내용보다는 초판이나 절판본 등 책의 물성에 더 관심이 많다고 봅니다.” 그는 비싼 듯 보이는 가격을 그렇게 설명했다. 10만원을 매긴 <동인전집>(홍자출판사)은 연구자들이나 수집가들한테 필요한 것이어서 그 값이 결코 비싸지 않다고 말했다. 일반 손님들한테도 내용을 보려면 비싸지 않는 다른 판본을 보라고 권한다. 수원에서는 아무리 책이 좋아도 같은 책 5권을 팔기 힘들다. 그런데 왜 수원일까. “서울서 책방을 차릴 만큼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는 조금 벌어 조금 쓰면 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대부분의 책은 서울을 통해 구한다. 소비층은 다양해 소설, 어린이, 교과서, 참고서, 사전, 전문서적, 영인본 등을 다양하게 갖췄다. 그는 책방을 열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제일 행복하다. 하지만 형편은 어려워지는 게 사실. 시작할 때 10여곳이던 헌책방이 오복을 포함해 네곳만 남았다. “책방 없어지지 않게 책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여유가 되면 지상으로 올라가고도 싶고요.”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연재헌책방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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