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세월은 거꾸로 흐르네
헌책방 순례/경안서림 “서울을 首爾라고 표기하는데 말이죠. 중국사람이 읽으면 ‘서울’일지 모르지만 일본사람은 그게 아니거든요. 서울 한자표기는 徐鬱이에요.” 경안서림(02-2235-1343, 동대문구 청량리동 224-3) 주인 김시한씨는 <증보 문헌비고>를 펴보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지금껏 찾아낸 문헌증거는 25가지. 옛부터 써온 표기가 있는데 왜 굳이 중국인 전용의 발음기호를 쓰느냐는 것. 몇차례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언론에 알렸지만 요지부동이다. 김씨는 한국고서연구회 회장을 지낼 만큼 옛 자료에 관심이 많다. 그의 관심사는 주로 교육관련. “일제 말기에 창씨개명만 한 줄 알죠? 그게 아녜요. 멀쩡한 학교이름까지 바꿨어요.” 지금까지 찾아낸 것은 연희전문학교(경성공업경영전문학교), 세브란스의전(아사히전문학교), 보성전문학교(경성척식전문학교), 중앙불교전문학교(혜화전문학교), 이화여전(경성여전), 개성 호수돈여고(명덕여고), 부산 일신여고(동래여고), 기독청년회학교(영창학교) 등 8가지. 그는 1913년 도산의 흥사단에 앞서 유길준이 1907년 설립한 흥사단의 창립발기문을 발굴해 공개한 바 있다(<고서연구> 23호). 주인이 그런 만큼 책방은 자료수집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 18일 오후 잠시 머무는 동안에 노 유학자, 동국대 한문학 강사, 기독교 자료 수집자가 다녀갔다. 여섯 시간 동안 <고문진보>를 외운 바 있는 한문학자는 이날도 최호의 ‘황학루’와 이태백의 ‘등금릉봉황대’를 읊었고 강사와 자료 수집자는 최근 일본에서 간행된 <일본 현존 조선본 연구>에 나오는 <이장길집(李長吉集)>이 한국에는 없는 점필재 김종직의 저술이라는 의견을 나누었다. 주인 맞은 편 의자 2개는 부지런히 손님을 갈았다. 김씨는 손님이 바뀔 때마다 새로 사들인 자료를 꺼내놓았다. 대정 연간에 나온 <성경잡지>, 철도 개설 초기의 자료, 1890년 무렵 파리에서 간행된 천주교 휘장집 등등. 그런 까닭에 단골들은 하루가 멀다고 들르지 않겠는가. 60~70년대 ‘빨간책’에 관심있다는 손님은 “여기에는 쓸만한 책이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35년 넘게 이곳을 지켜온 김씨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별 희한한 자료가 그의 손을 거쳤다. 새 자료임에는 틀림없지만 결코 공개할 수 없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손기정의 올림픽 마라톤 제패를 기념해 1936년에 만든 양정교지. 거기에는 손씨의 일문 여행기, 교장(안종원)의 일문 찬시, 명사 33인의 와카(和歌) 한수씩이 실렸다. 창씨개명 관련 서류, 어느 문중에서 발행한 창씨개명 족보 등도 쉬쉬할 뿐이다.
여든일곱의 유학자는 주인 김씨를 일러 망년우라고 했다. 이곳이 청계천에서 유일하게 한문책을 살 수 있는 곳이고 값도 적당하다면서…. 사실 그랬다. 이날은 60대 주인이 매개 되어 노학자와 마흔의 대학강사가 옛 한시를 화제 삼았다. 신문지로 포장한 책뭉치가 들어오자 “와, 보물 들어온다”며 고개들이 모였다. <한국시잡지집성> 1~3권. <대명률직해>(조선총독부 중추원 1936). 밖에는 언뜻 청계천 투어 이층버스가 지나가고 손잡은 젊은 연인의 눈길이 잠시 머물렀다. 바닥에 쌓이고 벽에 꽂힌 조선왕조실록, 조선명신록, 영조순정후가례도감의궤(영인본), 고전국역총서, 최남선 전집 등. 단장한 청계천에는 새물이 흘러도 서점 안에는 모르쇠 세월이 거꾸로 흘렀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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