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한 마리가 2021년 8월16일(현지시각) 러시아의 제믈랴프란차이오시파(프란츠요제프제도) 내 바다를 떠다니는 빙하 위에 고립된 듯 엎드려 있다. 제믈랴프란차이오시파/AFP 연합뉴스
빙하여 안녕
기후 위기 최전선에 선 여성학자의 경이로운 지구 탐험기
제마 워덤 지음, 박아람 옮김 l 문학수첩(2022)
사라져 가는 것을 연구하는 과학자. 빙하학자 제마 워덤은 30년 넘게 전 지구의 빙하를 탐험하고 연구했다. 갓 스무살의 지리학과 학생으로 처음 마주한 알프스 산맥의 상아롤라 빙하에서 그의 여정은 시작되었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워덤은 빙하에서 흘러나온 물의 화학적 조성을 연구해 빙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동하는지 밝혔고, 빙하에 서식하는 생물에 대한 연구와 빙하가 지구 탄소 순환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선도했다. 과학자로서 경력의 정점에 있을 때, 일 중독자의 두통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뇌종양임을 알게 되었다. <빙하여 안녕>은 위기를 맞은 과학자가 쓴,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자연에 대한 책이다.
제마 워덤은 그가 탐험했던 전 세계의 빙하를 소개하며 그의 과학적 여정과 과학자로서의 삶을 엮어낸다. 저자가 “우리 행성에서 가장 민감하고 동적인 자연”이라고 표현하는 빙하는 얼음과 물, 퇴적물이 만들어낸 복잡한 배수 시스템을 갖고 있다. 움직이고, 흐르고, 때로는 그 화학적 조성이 바뀌거나 생물이 살기도 하는 빙하를 연구하기 위해 빙하학자는 지구의 가장 황량한 곳에 텐트를 치고, 융빙수가 내는 우렁찬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
워덤은 위트있게 필드 사이언스의 기쁨과 슬픔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밧줄을 몸에 묶고 거대한 얼음 구멍으로 들어가거나, 갑자기 불어난 융빙수에 연구장비가 휩쓸려 내려가기도 했다. 스발바르 제도에서는 북극곰의 밥이 되지 않기 위해 소총을 지니고 다녀야 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하루하루가 길었고 대개는 모종의 재난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언제나 빙하의 부름을 반겼지만, 어머니의 투병 같은 삶의 굴곡진 지점에서 빙하로 떠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음을 고백한다. 갑작스러운 질병을 경험하고 나서는 죽음을 맞이하는 빙하가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과학자와 빙하의 감정적 연결은 저자가 ‘러브스토리’라고 부른 이 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알프스 산맥, 스발바르 제도, 그린란드와 남극대륙, 파타고니아와 히말라야 그리고 페루의 코르디예라 블랑카의 ‘열대 빙하’까지. 저자가 연구한 얼음들은 모두 위기를 맞고 있다. “롱이어뷔엔과 가까우며 두꺼운 얼음 덮개 때문에 그 이름을 얻은 이스피오르는 10년째 완전히 언 적이 없다.” 파타고니아의 호르헤 몬트 빙하의 경우 1980년대 이후 10㎞ 이상 후퇴했고, 그린란드의 여름 융빙량은 1980년대 이후 급증해 2010년대에는 세 차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19년에는 아이슬란드에서 빙하 ‘오크예퀴들’의 장례식이 열렸다. 이러한 빙하의 변화는 각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위태롭게 한다.
과학책을 읽을 때 어렵고 복잡한 지식은 잠시 잊어도 좋다는 입장이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독자들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빙하와 해류, 대기가 매우 예민하게 상호작용하고 있고, 기후변화를 아주 빠르게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빙하와 해류가 지구의 열에너지를 어떻게 순환시키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나라를 비롯한 바다와 인접한 도시들의 날씨를 결정하는지 설명한다. 우리는 대개 홍수나 폭염같이 육지에서 경험되는 현상으로 기후변화를 상상하곤 하지만, 그것은 절반에 불과하다. <빙하여 안녕>은 빙하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바다로 확장시킨다.
강연실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