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자료 지킴이’ 자부심에 앞날 낙관
헌책방 순례/동국서적 “한군데 모여있을 때는 책 사고팔기가 쉬웠는데 여기서는 통 손님이 없어요.” 서대문구 창천동 동국서적(02-324-0638) 주인 이지형(57)씨는 옛 청계천 시절이 그립다. 복개를 뜯어내면서 문화의 거리로 거듭난 그곳. 목이 좋으면 돈이 모자라고 돈에 맞추면 성에 차지 않아 다시 진입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신촌헌책방에서 6~7미터 안쪽. 맞은 편 건물 지하에 자리잡은 서점은 쌀쌀한 꽃샘추위에 전기난로를 피웠다. 35평 사방벽을 뒤덮은 정갈한 책꽂이에 검정커버, 한자 제목의 책이 기를 죽인다. 하지만 찬찬히 훑어보면 영인본, 문집, 국역집, 서울민속대관, 국어국문학 영인본, 시·도·군지, 족보, 연감류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방 가운데에 쌓인 족보 역시 값 나가는 것은 없다. <조선왕조실록> 전질, <고려대장경> 낱권이 그 가운데서 형형한 빛을 내고 근작으로는 <한국의 초분>(국립민속박물관 2003), <한국세시풍속사전 정월>(국립민속박물관 2004), <우리옷 이천년>(미술문화 2001)이 이채롭다. “예전에는 잘 나가던 책들입니다. 지식유통이 인터넷으로 옮겨가면서 웬만한 내용은 다 뜨니까 찾는 손님이 거의 없어요. 한자 세대가 늙어 구매력이 없어진 탓도 크고요.” ‘어려운 책들뿐이네요’라고 말을 트자 주인 이씨가 해명했다. 책들은 모두 비싸게 산 것들. 2만원 하던 것이 지금은 7천원에도 안 팔린다. 청계천 시절 리어카로 실어온 책더미에서 몇 권 사들이면 하루 일당이 나오던 기억이 새롭다. “워낙 오래 하다보니 시대가 변한 것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옛날 습관을 기억하는 손이 안 사도 되는 책을 자꾸 집어와 꽂는다. 그런 책들이 올무가 되어 그의 손을 꽁꽁 묶어놓은 모양새다. “6·25나 해방전 고서들은 현금과 같아서 언제라도 팔려요. 그런 책을 계속 구할 수 있다면야 무슨 걱정입니까?” 가지고 있던 괜찮은 것들은 야금야금 팔아 바닥 나고 가끔씩 새로 들어오는 것은 곧 바로 팔려나가니 어쩌다 오는 손님한테는 책방이 이제나 저제나 나른하게 비친다. 젊어서 진도에서 상경한 이씨는 서울역 부근에서 배회하다 이를 딱하게 여긴 분의 소개로 인사동 제일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고서와 헌책을 배웠다. 나중에 청계천으로 진출해 경북서점 한켠에서 헌책을 파는 등 줄곧 그곳에서 맴돌았다. 고가도로 철거공사로 애를 태우가 2004년 이곳 신촌으로 옮겼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하루 한두 명 손님이 고작이다. 그러면서 ‘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한 신문사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갈 참이다. 책 제목에 한자가 많아 품이 들지만 목록작업은 거의 마쳤다. 사이트를 열면 청계천 쪽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형편이 펴지지 않을까 싶다. “인사동도 예전같지 않다더라고요.” 옛자료를 보전하고 공급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힘겹게 버티는 이씨는 언젠가 좋은 때가 오지 않겠는가 믿는다. 공씨책방, 신촌헌책방, 숨어있는책, 정은서점, 아름다운가게 ‘뿌리와 새싹’에다가, 홍대앞 온고당까지 치면 신촌도 어느 덧 헌책방 모둠거리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대학교재, 인문·사회과학, 미술서적 전문에다가 동국서적의 고서가 화룡점정 하여 완전히 모양을 갖춘 셈이다. 책을 구하느라 자리를 비우는 때가 많아 미리 전화를 놓고 가는 게 좋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연재헌책방 순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