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헌책방순례│북마트] 새 서울역 밀려 4년 전 ‘인터넷’으로

등록 2006-04-06 16:26수정 2006-04-07 14:03

유일한 생존의 비결은 거칠어진 ‘손’

헌책방 순례/북마트

서울역은 종착역이자 시발역. 많은 사람과 물건이 분주히 드나든다. 엉기고 맴도는, 그러한 흐름에 기대어 둥글게 상권이 형성된다. 술집과 다방과 식당은 잠시 머묾을 위한 것이고 과자나 신문잡지, 선물을 파는 가게들은 흐름을 대비하는 곳이다.

열차 승강장에 발을 세운 거대한 새 역사가 들어서면서 기존 역사는 서울역의 기표 또는 출입구 구실로 밀려났다. 밀려나기는 옛 역사뿐이 아니다. 쪽 빨려들어 텅빈 역 주변은 황량하기조차 하다. 역 건물 안에 편의시설과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일단 역사로 들어선 사람들은 도대체 나올 줄을 모르고 주변 가게들은 주머니 털린 사람처럼 허랑하다.

서울역을 지나 용산 쪽으로 틀면 갑작스런 낙폭이 당황스럽다. 때되면 소매를 끌던 여인숙·음식점도, 느른한 귀와 눈을 끄잡던 500냥 집도 없다. 헌책방 자리에 들어섰던 게임방도 이젠 파리를 날리고 여럿으로 늘어난 의수족 가게가 한산하다.

북마트(02-701-8327, 017-365-3432) 문은 굳게 닫혔다. ‘인터넷 전문서점입니다’란 쪽지. 유리문 너머 불이 켜져 있다. 휴대전화는 요술키. 전화를 걸자 닫힌 문이 열리고 주인 윤병수(44)씨가 나왔다. 그는 다시 문을 잠그고 이웃한 동자다방으로 안내했다. 북마트의 응접실 턱이다.

“인터넷 서점이 깎아팔고 거저 배송해주면서 헌책방 타격이 엄청 큽니다.” 1997년에 ‘별빛서점’을 인수해 헌책방을 시작한 윤씨는 2002년 매장판매를 접고 인터넷 책방으로 전환했다.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의욕적으로 목록을 올려 3개월만에 매장판매 때의 매출을 넘어섰고 점차 가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어느 수준에 이른 뒤에는 점차 매출이 꺾였다. 새책방에서 깎아팔면서 헌책방의 싼값이란 장점이 빛바랜 탓이 크다. “인터넷 새책방이야 한번 목록을 올려 책을 계속 팔 수 있는데 비해 헌책방의 목록은 한두 권을 위한 것이고 책이 팔리고 나면 지워야 하죠. 그만큼 생산성이 낮아요.” 역 주변 5~6곳 책방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북마트 주인은 어려움을 토로하며 연신 담배를 피웠다.

인터넷 서점이니 창고로 변한 옛 매장을 들여다 볼 차례. 출입문의 전깃줄을 들어올리고 들어서자 숨이 턱 막혔다. 몸을 옆으로 틀고 다닐 수 있는 ‘토끼길’ 외에는 온통 담배연기처럼 책이 가득했다. 14평 공간을 스무평처럼 써 2만5천권이 쟁여 있다. 그가 앉아 일하던 자리는 변함 없건만 켜켜이 책이 쌓이고 포장지가 뒤덮어 여우굴처럼 어둡고 비좁은 가운데 모니터 화면이 유독 퍼랬다. 그곳에서 낮에는 책 구입·포장·배송하느라 바쁘고 밤에는 입력하여 40권 정도 올린다. 안주인은 늦둥이를 돌보느라 모든 게 윤씨 혼자 몫이다.


인터넷으로 미리 확인해둔 (Paul S. Crane, 국제출판사, 1974)를 찾아달라자 윤씨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한번 찾아보겠다며 책 틈으로 사라졌다. 1분 만에 하늘색 바탕에 검은 문양의 책을 여축없이 들고 나타났다. 불가피하게 비좁아진 창고. 책찾기의 불편함을 그만의 뛰어난 기억력과 노하우로 버티고 있다. 자신을 거쳐간 책이 가치있게 쓰이면 자신의 형편이야 어떻든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일까. 시작 때 고왔던 손은 10여년 지난 지금 무척 거칠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