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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헌책방순례│공씨책방] ‘가족보다 책을 아꼈던’ 공씨는 갔어도

등록 2006-04-13 20:05수정 2006-04-14 14:11

아내·조카 16년 맥이어 단골 반기네

“신간서점 고객들은 책을 잠시 일독하고 제자리에 꽂아놓는 품이 마치 묘령의 처녀와 첫 데이트를 하고서 전송할 때처럼 정중한데, 내 책방 고객들은 내 옛책을 만만한 마누라 다루듯하는 이가 적지 않으니…”(옛책사랑 9호 23쪽)

가족보다 책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공진석씨는 1990년 7월 50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 광화문 교보문고 옆에 ‘헌책방 교보문고’를 꿈꿨던 그는 재개발로 헐리게 될 공씨책방이 옮겨갈 자리로 빵집자리를 찍어두고 건물주한테 편지를 쓰고 만나는 등 설득했다. 결과는 언감생심, 씨도 먹히지 않았다. 꿈과 현실의 간극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그는 서대문구 문화촌 대양서점에서 논문집 30여권을 사서 시내버스를 타고 책방으로 돌아오던 중 유진상가 언저리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도무지 헤어나지 못하는 광화문의 개미귀신굴을 아십니까. 책을 사랑하시는 분은 광화문을 지나치실 때 공씨책방을 조심하십시오.” 그곳은 44평 3만권의 책이 빼곡해 책벌레를 잡아끌어 시간을 잊게 만들었다. 또 신림동 289번 버스 종점 옆에 50평 분점을 내어 서울대학생들에게 책을 공급하고 그들과 고담준론을 나누기를 바랐다.

서대문구 신촌에서 동교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15평의 공씨책방(02-336-3058)에는 공진석씨의 빈자리를 아내 최성장(61)씨와 조카 장화민(50)씨가 지키고 있다. 조카 장씨는 애초 ‘책보다 가족을 더 중시하는’ 자신은 이모부와는 비교할 수 없다면서 인터뷰를 거절하다가 응했다.

7년동안 이모부의 책방 일을 도왔던 장씨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다가 불가피하게(?) 이모부의 뒤를 이었다.

이모부한테 말로만 들은 책방 주인들을 만나 이어진 끈을 하나씩 잇고 조각들을 모아 맞춰 완전한 이모부를 재구성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나름대로 눈이 틔어 팔기만 할 때 누려보지 못한 재미도 누리게 되었다. 책이 어디 있다 약속된 것은 아니어도 가면 생각지 않은 책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벌써 16년째, 이젠 이력이 붙어 조목조목 야무진 책을 갖췄다.

“저녁 7시면 이모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동묘 앞으로 갔어요. 거기에는 자전거로 책을 수집해 온 중간상들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분들은 이모부가 도착해야 책을 풀었다고 해요. 이모부는 책을 사서 묶고 마무리하고는 그분들과 소주 한잔을 하곤 했지요.” 장씨의 눈이 촉촉해졌다.

신촌로터리에서 떨어져 있어도 이모부 손님들은 그대로 이어지고 새로운 손님들도 생겼다. 하지만 책 한권만으로도 서로 고마워했던 예전만 같지 않다. 자신의 열기가 줄었고 책이 대우받는 시기도 지난 것 같다. 떨어진 악보, 연극대본, 시집 하나에 반가워하고 솔로호프 포켓북을 애타게 찾아다니곤 했는데….


책방은 최씨가 지키고 책은 주로 장씨가 구하러 다닌다. 요즘은 일본에서 수입한 헌옷도 걸어두었다.

“일본사람들이 옛날책 영인본, 한국족보를 수집해 가요. 우리가 버리거나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을요.” 4년전에는 고교도서관이나 군립도서관 등에서 오래된 책을 대대적으로 정리해 버렸다면서 도서관을 늘리지 않고 넘치는 책을 버리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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