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독자에게
또 남북이산가족들이 만난다는데, 사람들은 별 감흥이 없는 듯하다. 예전 텔레비전에서 남쪽과 해외 이산가족들 찾아주기 캠페인을 벌였을 땐 며칠이고 화면만 보면 눈물이 샘솟고 목에 메었는데. 기막힌 사연들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었는데. 하기사 한두번도 아니고, 익숙해진 탓일까. 세월 탓인가. 생이별당한 지 어언 60년! 무려 천만 이산가족이라는데. 팔레스타인 난민이나 옛 소련 시베리아 굴라그 수인들 처지가 그들보다 더할까.
이런 것도 강준만의 얘기에 대입해 볼 수 있을지. 그는 <한국현대사 산책-1990년대편>에서 통신혁명을 동반한 탈이념 물질주의 소비시대에 ‘우리’는 ‘나’로 해체되고, ‘통합’이 아니라 ‘분열’이 우리의 운명이 됐다고 했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라는 걸 인식하는 건, 이제 우리의 목표가 ‘통합’이 아니라 ‘연대’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자꾸 되지도 않을 통합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갈등과 증오도 일어나는 것이다. ‘분열’은 우리의 운명이지만, ‘연대’는 나의 운명이다.”
연대가 과연 ‘나의 운명’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월드컵 축구대회 응원전을 보면 그런 읽기에도 솔깃해진다. 애국주의, 민족주의에 국수주의, 심지어 파시즘의 냄새까지 펑펑 풍긴다는 비아냥을 들었던 그 놀라운 ‘붉은 악마’들의 밤샘전쟁도 따지고 보면 지나친 ‘분열’, ‘우리’의 해체가 부른 반동 또는 너무도 급속하게 사라져버린 과거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향수의 발로가 아니겠느냐는 것인데. 비록 일시적인 충동, 휙 지나가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6.25가 한국전쟁으로 자연스럽게 통칭될만큼 세월이 흐른 탓인지 아직 제대로 된 평가조차 어려운 시절인데 그 전쟁에 대한 기억도 가물거리고 있다. 여전히 우리의 현재를 강력하게 옭아매고 있는 그 전쟁에 사람들은 이제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6월 마지막호 ‘커버스토리’와 ‘안과 밖’에서 좀 다른 눈으로 그 기억을 더듬어봤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