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원인을 구조적 모순에서 찾았던 사회과학의 시대는 가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심리학의 시대가 왔다. 사람풍경 에서
여자의…’ ‘설득의 …’ ‘나르시시즘의…’
제목에 심리학 들어간 책만 900여종
기댈 곳 없는 세상서 자기자신 돌아보는 등불로
제목에 심리학 들어간 책만 900여종
기댈 곳 없는 세상서 자기자신 돌아보는 등불로
커버스토리 “무엇에 기대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제는 삶의 근거를 저마다 자기 내부에서 찾아야 합니다. 자기의 삶, 자기의 사랑의 서사를 스스로 써야 하는 때가 된 거죠. 자기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데 심리학만큼 좋은 길잡이가 있을까요?” 심리치료에 관심이 많은 작가 ㄱ씨는 심리학에 보통사람들의 흥미가 커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인관계, 부부 관계, 부모-자식 관계를 비롯한 수많은 인간관계의 숲 속에 외로운 나그네처럼 떨어져 있는 상황인데, 날은 어두워지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각자 나그네가 된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이럴 때 심리학이 등불 구실을 해준다는 것이다. 심리학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 검색창에서 ‘심리학’으로 검색하면 무려 900종 가까운 책이 뜬다. 행복·공감·욕망·만족·성격 따위 수많은 주제어 뒤에 ‘심리학’이 따라붙은 책들이 사흘이 멀다 하고 출간된다. 가히 심리학의 시대다. 심리학 책들이 출판 시장의 흐름을 형성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0년대에 한 차례 출간됐고 2002년 개정판이 나온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21세기북스 펴냄)은 지금까지 수십만 부가 팔렸다. 그러나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영업 기술을 알려주는 책에 가깝다. 타인 혹은 고객의 심리를 정확히 읽어냄으로써 판매 목표를 달성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용서인 셈이다. 심리학 책의 최근 흐름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관심의 방향이 ‘나’로 돌아섰다는 데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엿보는 눈치의 심리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보는 자기 분석 심리학이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나’를 주목한 전환점 <사람 풍경> <나르시시즘의 심리학>을 펴낸 교양인 출판사의 이승희 편집집은 “책을 읽은 사람들이 자기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읽어보니 대다수가 ‘나를 알고 싶어 이 책을 샀다’고 쓴 게 의외였다”고 말했다. 타인의 심리가 아니라 자기의 심리가 1차적 관심사인 셈이다. <미친 뇌가 나를 움직인다>를 낸 사이 출판사 권선희 대표도 같은 말을 한다. “책을 내기 전에 시장조사를 했는데, 대형서점 심리학 코너를 찾는 독자들이 하나같이 책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봍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호기심 차원을 넘어 나를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진지한 태도가 잡히더라고요. ‘이거 내 얘긴데’ 느낄 때 책을 사는 거죠. 그래서 일부러 ‘나’를 넣어 책 제목을 지었습니다.” <미친 뇌가 나를 움직인다>는 지난 7월에 나와 지금까지 7천부 정도가 팔렸다. 가볍지 않은 내용인 걸 감안하면 만만찮은 부수다. 심리학 책 흐름을 ‘자기’로 돌린 상징적 계기가 된 책으로 소설가 김형경씨의 <사람 풍경>(예담 펴냄)을 꼽는 이들이 많다. ‘심리 여행 에세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지은이가 자기 자신의 심리를 알아가는 과정을 홀로 떠난 세계 여행과 겹쳐놓음으로써 설득력 있게 읽힌다. 여행중에 만난 사람들의 풍경이 곧 자기 안에 펼쳐진 내면의 풍경임을 이 책은 알려준다. 2004년 12월에 초판 발간 후 5만부 남짓 나간 이 책은 지난달 출판사를 바꾸고 책표지도 재단장해 새로 나온 뒤 1만4천부 정도가 더 나갔다. 최근에 나온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씨가 쓴 <관계의 재구성>(궁리 펴냄)도 ‘관계의 가시에 찔려 휘청거리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사람 풍경>과 비슷한 노선에 서 있다. 다만 <사람 풍경>이 여행을 소재로 했다면, 이 책은 영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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