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역사> 장 이브 보리오 지음, 박명숙 옮김.궁리 펴냄, 2만5천원
잠깐독서 /
이탈리아 영화감독 펠리니는 <로마> 촬영을 마친 뒤, “로마는 여인과 같다. 당신이 한 여자를 소유하고 난 뒤, (…)일주일이 지난 다음 그녀를 다시 만나면 그녀는 전혀 모르는 여인과 같이 느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로마는 우리를 안심시켜 준다”고도 했다. “왜냐하면 로마는 수직적인 의미의 모든 종류의 사색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펠리니의 이런 감흥과 찬사를 이끌어낸 매개물은 도시로서의 로마다. 역사만 있고 폐허로만 남은 벌판에서 이성을 흥분시키는 여인을 떠올리기는 힘들 것이다. 서양문명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가서 보아야 할 도시 목록의 첫손에 꼽는 곳이 로마다. 그 고색창연함은 파리의 화려함이나 런던의 소박함 심지어 피렌체의 예술적 조화로움 마저 낮춰 보게 만든다.
장 이브 보리오가 쓴 <로마의 역사>는 다른 로마서들과 달리, 로마라는 도시의 역사를 다룬다. 로물루스의 신화적 건국(기원전 753년)에서 시작해 서로마 제국 멸망(476년), 동로마 제국 멸망(1453년)을 아우른 뒤, 1871년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가 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시 로마’가 겪어온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고 있다. 때문에 카이사르와 네로 등 이 도시의 변모에 직접 영향을 준 위정자들과, 이 도시에 아름다움의 일부를 제공하면서 또 그 아름다움에 빠지기도 한, 미켈란젤로와 스탕달과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밟는 여정이기도 하다.
기원전 45년 카이사르는 로마를 보행의 안락함이 보장되는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시키기 위해 거리의 유지와 차량의 운행조건을 규정하는 율리아 시조례를 공포했다. 유흥을 위한 장소를 만든다는 생각에 부정적이었던 로마에 제대로 된 대형 극장이 등장한 때는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 시대였다. 바로크 시대의 로마는 고대의 유물들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파시스트 무솔리니는 ‘제3의 로마’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서민구역을 파괴하며 과거의 흔적을 지웠다.
스탕달의 이런 지적은 줄기차게 부정을 통해 변신을 이뤄낸 로마의 역사를 잘 응축해 보여준다.
“성직자들의 로마가 고대 로마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좀 더 많은 로마 유물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성 베드로나 온 세상의 수많은 멋진 교회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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