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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엘피판, 영화포스터…책아닌 것들의 유혹

등록 2005-07-14 19:03수정 2006-02-06 20:38

헌책방 순례/대양서점

책방의 책은 소리치지 않는다. 책은 그냥 수많은 책들 가운데 시골색시처럼 잠자코 존재한다. 책은 다가가 손을 잡아줄 때 비로소 책이 된다.

대양서점(02-394-4853)에는 책 아닌 것들이 시끄럽다. 엘피판, 꿀단지, 영화 포스터(고교얄개)는 봐줄 만하다. 풍년초 담배, 족제비, 고라니 박제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군데군데 덫처럼 놓인 그것들은 눈 옆자위에 도사리고 있다가 조금 시선이 비껴나면 덥석 잡아끈다.

 “어릴 적 자전거 뒷자리에 거꾸로 앉아 멀어져가는 풍경을 바라보던 기억이 생생해요.”

주인은 ‘거꾸로 사는 재미’에 푹 빠진 젊은이 정태영(32)씨. 젊지 않는 그를 젊다고 함은 헌책방 주인은 으레 중늙은이 이상인 까닭이다. 5년 전 큰길 가에 매장을 가진 아버지의 권유로 한 블럭 뒤에서 책방을 시작한 정씨의 가게이름은 공식적으로 ‘대양서점 2매장’.

하지만 이제 ‘대양서점’ 하면 아들의 매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다. 아들 손님은 아들 손님, 아버지 손님도 이젠 아들 손님. 아들이 구한 책은 아들 것, 아버지가 구해들인 책도 대부분 아들 것. 손님도 책도 아들에게 넘긴 아버지는 취미, 시, 소설, 수필, 신학 관련 책들만 들여놓은 채 성경을 읽고 신학강좌 테이프를 듣는 게 일과다.

젊은 아들은 옛날 생각만 하면서 팔리지 않을 책들을 집어온다고 아버지를 타박하고, 아버지가 못 팔 책도 자기는 팔 수 있다고 한 자랑이다. 아버지도 그것을 인정하여 웬만한 것은 아들한테 넘긴다. 아들은 책뿐 아니라 각종 팸플릿, 옛 사진, 때로는 글씨와 그림까지 관심사가 넓어졌다. 그가 앉은 책상 뒤쪽에 〈한국문예사전〉〈한국영화발달사〉〈한국신문사연구〉〈잡지연구〉등 각종 ‘공구서’가 꽂혔다.


매장의 책들은 그 종류나 꽂힘새가 주인처럼 매초롬하다. 닦고 펴고 붙이고, 낡은 책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새책으로 거듭난다. 가끔은 새 책도 들어와 손님들 주머니를 톡톡 털게 만든다. 책의 드나듦은 빈번해서 책탐이 많은 어떤 이는 책만큼이나 자주 드나든다. 정씨는 주요한 것들은 홈페이지(daeyang_book.hihome.com)에 올려 선착순으로 돌아가게끔 배려한다. 그 많던 원서도 졸아들었다. 볼 만한 옛책은 아쉬워하는 손님을 위해 표지와 목차 정도를 자신의 블로그에 남겨두고 있다.

”5년 동안 사람들을 얻었고 저 개인 삶을 잃었어요.” 기자가 찾아간 일요일에도 모처럼 문을 닫고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을 가려다 약속이 취소된 탓에 책방을 열었다.

정씨는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 책을 쳐다보는 시선, 사간 책으로 손님을 기억한다. 지문처럼 분명하게 구별된단다. 특히 45도로 올려다보는 무용가 최승희의 프로필을 좋아한다니 총각 주인의 시선을 잡을 처자는 위쪽 책꽂이 책을 주로 쳐다볼 것.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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