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손님과 술마시다 조르면 그냥 넘겼지요

등록 2005-08-11 18:49수정 2006-02-06 20:45

헌책방 순례/문화서점

문화서점(02-374-3383). 서대문구 남가좌동 197-13. 주인 양원석(1951년생).

헌책방은 정거장이라 생각해요. 책은 임자한테 가야한다는 게 지론이죠. 보다시피 시나 소설 같은 단행본이 대부분이고, 학술 관련 서적도 대부분 개론서들이죠. 좋은 책은 바로바로 나가고 그렇지 않은 것들만 남았기 때문이지요. 30년 되풀이된 들고남이 좁은 공간에 고였으니 세월의 기울기가 더 뚜렷하지요.

좋은 책을 집에 가져다 두었느냐고요? 아녜요. 그럴 만한 책이 나오지도 않고요, 그런 욕심도 없어요. 물론 젊었을 때는 달랐죠. 집으로 찾아온 손님들과 술을 마시다가 손님이 조르면 그냥 넘기곤 했어요. 한번은 신석정 시인 사촌 집에서 엽서 100여장이 나왔는데, 문인들끼리 교류한 것들이더라구요. 두루마리 편지도 있고 원고들도 있었어요. 황순구 교수라고 알죠? 그 양반이 그걸 알고는 사흘 내리 찾아와서 달라고 조르더군요. 그래서 넘기고 말았지요. 이효석의 엽서 한장은 기념으로 두고보려 했는데 그것마저 다 쓸어가버려 지금도 섭섭해요.

하동호 선생 있죠? 그 분은 성산동 살 때 자주 왔는데 눈이 안 보이면서도 책을 샀어요. 나더러 서문과 뒷장 서지사항을 읽어달라고 해서 살지말지를 결정했어요. 책값을 한번도 깎지 않았지요. 그리고 같은 책은 아무리 귀한 것이어도 두 권을 사지 않았어요. 그러면 장사꾼이 된다는 거죠. 물론 상태가 좋은 것과 바꾸는 경우는 있었지만….

총각 때 연세대 앞에서 ‘구루마’ 장사를 했어요. 밤 10시에 도서관에서 나오는 학생들을 상대로 책 외상을 놨지요. 다음 날 대부분 책값을 가져왔어요. 장부는 따로 없었구요. 그러다 74년에 여기에 자리잡았어요. 76년에 결혼해서 77년, 79년 아들 둘을 낳았어요. 큰 애가 문창과를 나와 출판사에 취직했고 둘째는 1학기를 남겨두었으니 헌책방해서 아이들을 키운 셈이죠. 전에는 아내와 아들이 도와줘 연희동 연남동 수색까지 책을 거뒀는데 요즘은 혼자서 하기 때문에 오전에 오토바이로 근처 고물상을 돌 뿐이에요. 12시께 문을 열어 밤 10시까지 해요.

근래에는 인터넷 책거래가 늘고 나오는 양도 줄어 그전만은 못해요. 특히 아이엠에프가 큰 원인이에요. 그때 책을 덜 사기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헌책방이 책가뭄이죠. 그런데다 황학동 사람들이 고물상에서 싹 쓸어가요. 책, 옷, 신발 할 것 없이 조금 이상하다 싶은 것은 다 쓸어가요. 심지어 고물행상들한테까지 명함을 돌려요. 그러니 변두리 헌책방이 다 죽죠.


헌책방 한 것 후회 안 해요. 헌책방 안 했으면 좋은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어요. 다만 앞으로가 문제죠 뭐. 더위가 끝나면 살기 위한 몸부림을 한번 쳐볼랍니다. 그러다 안되면 접어야죠. 옛날 공씨책방 하던 공진석씨가 체계적으로 참 잘 했어요. 그만치는 못해도 좀 잘했으면 좋겠는데…. 그 양반 술 참 좋아했어요. 4홉들이 소주에 라면땅 안주 놓고 함께 술먹은 기억이 나요. 혹시 기자 양반도 술 좋아하슈?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