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순례/뿌리서점
서울의 헌책방을 꼽으라면 뿌리서점(02-797-4459)이 첫손이다. 왜 그럴까. 뿌리서점은 남들 다 쉴 것 같은 날에 찾아가도 문이 열려 있다. 쉬는 날은 추석 하루, 설 이틀, 신정 하루만 쉰다. 남들 다 문 닫을 시간에 가도 불이 켜져 있다. 밤 12시까지 열려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헌책방 첫손이라면 섭섭하다.
주인 김재욱(60)씨는 헌책방 30년. 몇해 전 20여m를 옮긴 것을 무시하면 26년째 한자리다. 용산 전철에서 내려 용사의 집 옆골목을 지나 애오라지 책방밖에 볼 게 없는 골목에서 말이다. 역과 책방과의 실제 거리에 비해 크고 호화로움과 작고 허름함 차가 무척 크다. 저녁에 그곳을 들린다면 불빛의 차이가 더하여 그 낙차는 훨씬 명확하다. 형광간판과 백열등 빛이 시야에 들어오면 책방의 외로움이 와락 밀려온다. 그래서 첫손이라면 더 섭섭할 터이다.
책으로 좁아든 계단은 몸이 좀 부한 사람은 옆으로 틀어내려가야 한다. 입구에 고개를 들이밀면 짜잔~ 지하의 헌책 세계다. 사방 벽과 가운데 네 줄 책꽂이 앞뒤. 50평 공간이 온통 책이다. 애초 김씨가 ‘민족의 이름으로’ 책값을 계산하던 자리도 책이 들어차 그는 하루종일 서성거린다. 그래서 첫손이라면 그래도 섭섭하다.
그곳에서는 아는 얼굴 한둘쯤은 마주칠 수 있다. 같은 단골일 수도, 다른 책방 주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책을 물으면 누군가한테서 대답이 나온다. 심하게 구부러진 책 <미술과 시지각>을 어떻게 펴느냐를 두고 오간 대화도 그런 예다. 10~20년 단골은 부지기수다. 김씨는 입구에 자판기를 두고 수시로 커피를 뽑아 날라야 한다. 그래서 첫손이라면 주인장은 냉큼 그렇다 할 터이다.
“사람들한테 많이 알려져 부담스러워요. 와 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싶어요.”
뭐니뭐니 해도 고르는 재미가 크다. “주인이 책 욕심이 많아 점점 창고로 변해가고 있어요.” 7~8년 출입했다는 한 손님은 워낙 책이 많아 한번 들르면 시간을 잊는다고 말했다. “모자라면 깎아주고, 돈 없으면 외상 주고, 차비 없으면 빼주는” 재미도 크다. 돈 벌자고 들었으면 빌딩 몇채 지었을 거라는 게 입버릇처럼 하는 주인의 말이다. 그래서 첫손이라면 주인은 반대일 테지만 손님들은 이구동성일 것이다.
<한국희곡문학대계>1~4(한국연극협회, 한국연극사 1976), <아동최씨고>(최원식, 신명문화사, 1968), <여헌 장현광의 학문과 사상>(금오공대, 1994), <묄렌도르프>(월터 라이퍼, 정민사, 1983)가 설핏 눈에 스친다. “노점상이 사라지면서 재고부담을 완전히 책방주인이 져야 해요. 그래서 창고가 몇 군데 생겼어요.” 김씨는 요즘 화두는 공간 구조조정이다. 얼마 전 두 트럭 정도의 책을 파지로 버렸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어 인터넷을 이용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한국희곡문학대계>1~4(한국연극협회, 한국연극사 1976), <아동최씨고>(최원식, 신명문화사, 1968), <여헌 장현광의 학문과 사상>(금오공대, 1994), <묄렌도르프>(월터 라이퍼, 정민사, 1983)가 설핏 눈에 스친다. “노점상이 사라지면서 재고부담을 완전히 책방주인이 져야 해요. 그래서 창고가 몇 군데 생겼어요.” 김씨는 요즘 화두는 공간 구조조정이다. 얼마 전 두 트럭 정도의 책을 파지로 버렸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어 인터넷을 이용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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