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소설
곽재식 단편
곽재식 단편
뇌의 신경 연결 지도와 기능 분석이 완료된 후로
사람의 뇌활동을 정확히 측정하는 장비는 점점 발전했고
요즘은 꽤 널리 쓰이고 있었다
대학입시에 학생들의 뇌활동 측정 결과를 내라고 하는 것이
공정한지 아닌지를 두고
날마다 논쟁에 정치싸움이 날 만도 했다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됩니다.’ 그런 말이 적혀 있는 광고판 앞에서 나는 그녀의 연락을 받았다. 광고에서 요즘 괜히 자주 보던 말이었다. 보통 7만7천원에 뭐가 뭔지 알 수도 없는 부가서비스 11개를 집어넣은 휴대전화 계약을 하라거나, 유료 텔레비전 상품에 가입하면 남들보다 다섯 시간 빨리 연속극 다시 보기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쓰는 말이었다. 가끔 유난히 납작하게 생긴 자동차를 사라고 하거나 지옥에서 가격표를 붙인 것인 양 비싼 아파트를 사라고 하면서 쓰는 말이기도 했다.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됩니다.’ 그런 데에 쓰기는 아까운 말이었다. 그날 나에게는 첫사랑으로부터 오래간만에 연락이 왔다. 특별히 바라지도 않았는데도 벌어진 일이었다. 돈을 많이 쓴 일도 아니었고, 그런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며 사악한 약정에 서명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는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 지하철 공조기에서 찬바람이 질질 흘러내리거나 말거나 덥기만한 저녁에 술 취한 인간들의 냄새만 가득한 후덥지근한 퇴근길이었는데, 그러다 말고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실제로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는 꿈을 꾼 적도 여러 번 있지 않았나. 지하철이 한강을 건너며 강변의 집들이 나타나자 그 불빛이 불꽃놀이처럼 보였다.
“단시간 내에
멍청해질 수 있을까?” 뇌신경 지도가 완성된 세상 “최대한 단시간 내에 멍청해질 수 없을까?” 적당히 안부 묻는 말이 끝나고 나서, 그녀가 나에게 물어본 본론은 그것이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뇌활동 측정을 받는데 점수를 최대한 낮게 받아야 돼.” “낮게? 높게 받아야 되는 게 아니고?” “응. 낮게.” 하기야, 그녀라면 뇌활동 측정 점수를 높게 받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과거의 기억이 그대로 소리로 변한 것같이 생생했다.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웃는 모습을 보면 천사처럼 친절해 보였지만 동시에 말을 걸려고 하면 어디서 생기는지 모르는 어마어마한 위엄으로 얼굴을 똑바로 보기도 어려운 사람이 그녀였다. 대학 시절 이런저런 일로 그녀와 어울리는 시간도 많았고, 졸업 후에도 아주 가끔씩 그럭저럭 소식은 닿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좋아한다고 말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고 말했다. 그녀가 목요일 저녁이라고 말하자, 나는 무슨 얼토당토않은 20세기 연애 수법을 기억해낸 것인지 갑자기 “음, 목요일이라고, 수요일이나 금요일은 안 될까” 하고 괜히 목요일 저녁에 뭔가 약속이 있는 척을 했다. 내가 말하고 있으면서도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만나자고 한다면 다음날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만날 것이다. 다음날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면 특히나 그녀를 만날 것이다. 그래 봐야 결국 대화가 조금 더 이어지자 우리는 그녀의 뜻대로 목요일 저녁에 만나게 되었고, 나는 목요일이 되기까지 내내 그녀를 만나기를 준비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 목요일 저녁과 그 밖의 시간, 둘로 나뉘어 있는 느낌이었다. 목요일 저녁이 올 때까지 그 모든 시간이 목요일 저녁을 위한 준비인 셈이었다. 입고 갈 옷을 고르거나 저녁 먹을 식당을 택하기 위해 궁리할 때가 아니라고 해도, 이 인간이 동작하고 있는 이유는 항상 50% 이상은 목요일 저녁이 올 때까지 순조롭게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나는 뇌활동 측정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뇌활동 측정에 관해 궁금한 일이 있다면 나에게 연락을 해 오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비슷한 질문을 나에게 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뇌활동 측정 프로그램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면, 거의 인사처럼 뇌활동 측정 점수를 잘 받는 비결 같은 것이 있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뇌의 신경 연결 지도와 기능 분석이 완료된 후로, 사람의 뇌활동을 정확히 측정하는 장비는 점점 발전했고, 요즘은 꽤 널리 쓰이고 있었다. 누가 어떤 영역에서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뇌의 특정한 능력이 어떤 식으로 발달했는지 숫자로 깔끔한 결과를 주는 장치는 쓸 곳이 많았고,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우리 회사 제품은 값도 싼 편이었다. 입사시험에서 적성에 맞는 사람을 뽑는지 검사하기 위해 뇌활동 측정 결과를 이력서에 첨부해서 내라는 경우도 많았고, 결혼을 앞둔 남녀가 서로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비교하여 궁합이 맞는지 보기 위해 뇌활동 측정을 받는 일도 유행하고 있었다. 나노센서와 실시간 신호처리 기술을 사용하는 요즘 장비는 예전에 fMRI로 뇌를 찍으며 적당히 짐작이나 하던 시절보다는 비할 바 없이 정확했다. 그러니, 대학입시에 학생들의 뇌활동 측정 결과를 내라고 하는 것이 공정한지 아닌지를 두고 날마다 논쟁에 정치싸움이 날 만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뇌활동 측정 점수를 높게 받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낮게 받고 싶어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래간만이네. 하나도… 안 변하지는 않았고. 하나 정도는 변한 것 같기도 하고.”
목요일 저녁, 그녀를 만나자 그녀는 대학 시절에 자주 하던 농담 말투를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하며 나에게 인사했다. 만나지 못했던 긴 시간 동안 그녀는 조금 더 나이 든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늙고 닳고 약해진 느낌보다 뭔가 더 존경심을 표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얼굴로 변하는 방식으로 나이가 들어 있었다.
“하나? 어디 하나가 변한 것 같은데?”
나는 실없이 웃지 않고 여유 있는 사나이의 느긋한 웃음만 웃으려고 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갑자기 뭉클하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걸 수습하려고 하니, 상상 이상의 실없는 웃음이 저절로 지어졌다. 난처하고 어색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이런저런 말들을 물었고 거기에 대답하다 보니 나는 다 잊고 그녀의 이야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녀는 중국에 있는 소프트웨어 업체로 직장을 옮기려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다니고 있는 반도체 회사는 돈을 잘 벌기로 이름이 높은 곳이었지만 피곤한 곳이라고 소문난 회사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옮길 회사는 두 배의 연봉과 중국에서 정착할 수 있는 생활비를 대주면서, 일시금으로 3년치 연봉을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었다. 회장단부터가 기술자 출신으로 연구원들에게 기회가 많은 곳이라는 세계적인 평판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옮길 만한 기회 같아 보였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 입사원서에 뇌활동 측정 결과를 첨부하래?”
내가 묻자, 그녀는 아니라고 했다. 옮길 회사와는 이미 계약까지 한 상태였다. 문제는 지금 다니고 있는 반도체 회사였다.
반도체 회사에서는 그녀가 새 회사로 옮기면서 자기 회사의 기술과 기밀을 빼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평소 광고를 대던 언론사 기자들에게 떠들기를 그것은 대한민국의 소중한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월급 몇 푼 더 받겠다고 팔아넘기는 매국노 짓이라고 했다. 그녀가 팔아먹으려고 하는 기술은 800조원짜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를 새 직장으로 보내주지 말고 감옥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차근차근 자신을 변호했다. 자신은 어떠한 고유한 기술이나 기밀을 빼돌릴 의사가 없으며, 회사를 다니는 동안 회사에 전해준 양자장 설계 기술이 있을지언정 회사에서 새로 뭔가 배운 것이라고는 소리 잘 지르는 임원 비위 맞추는 법이나 술 취한 상사 달래는 법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철저한 관리로 회사의 서류나 도면은 허투루 쓴 메모 하나 회사 바깥으로 가져온 적이 없음을 정확히 증명했다.
눈으로 보면 외울 수 있는 능력
조사해볼수록 사실이었다. 구체적인 기술 문건을 빼돌린 것이 없으면, 막연히 회사를 옮긴다는 것만으로 감옥에 집어넣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요즘 추세였다. 아무리 애국심에 호소를 하고 비열한 해외 다국적기업의 거대자본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떠들어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기술을 가진 인력이면 괴롭히지 말고 대우나 똑바로 해주지 그랬냐는 여론을 판사들도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그녀는 머리가 너무 좋기 때문에 예외적이라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즉, 그녀는 천재적인 기억력과 응용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설계도나 명세서 같은 내용을 빼돌리지 않아도 그냥 눈으로 보면 다 외울 수 있고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자료를 다른 곳에서 그대로 정확히 기억한 대로 다시 써내려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녀의 두뇌는 걸어다니는 USB 메모리이므로, 그녀는 실제로 설계도면을 빼돌리지 않아도 빼돌린 효과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말이야? 너 그렇게 할 수 있어?”
“판사 앞에서는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아니라고 하고 있지. 근데 그러니까 얘네들이 뭐 어떻게 하자고 했냐면, 뇌활동 측정을 해보자고 한 거야. 그래서 내가 정말로 그렇게 똑똑한지 아닌지 보자고 하는 거야.”
그게 그녀가 단시간 내에 멍청해지는 방법을 찾고 싶었던 이유였다. 뇌활동 측정은 결과가 정확하다. 시험 문제를 일부러 틀리는 방식처럼 일부러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을 잡아낼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저절로 딴생각이 주체할 수 없이 떠오르면 모를까, 일부러 딴생각을 하는 방식을 써서 점수를 낮추려고 해도 그렇게 제 실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타난다. 해결 방법은 정말로 멍청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술이나 약을 먹자니 약물 테스트에 걸릴 판이었고, 머리를 어디 들이받아 다치는 방식 역시 고의성이 드러날 게 뻔했다. 위험하기도 위험했다.
밤이 한참 깊도록 긴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 헤어질 때, 내가 그런데 왜 하필 나한테 그 방법을 물어봤냐고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농담했다.
“대학교 때 너 처음 봤을 때 되게 똘똘해 보인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진짜 공부 하나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계속 놀기만 하더니 아주 순식간에 멍청해지더라고.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었거든.”
마지막 재판의 뇌 검사
그리하여 그다음날부터 그녀와 나는 멍청해지기 위한 특별훈련에 돌입했다. 나는 내 대학 첫 학기를 생각하며 사람이 멍청해질 수 있을 만한 모든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우리는 8분에 한 번씩 소리 지르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빼면 아무 내용도 없는, 시어머니랑 며느리랑 싸우는데 재벌 2세 남자도 한몫 끼는 티브이 연속극을 연속으로 10회, 20회씩 시청했고, 재미도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여간 무가치하다는 느낌만은 밀려드는 만화책들만 골라서 500권, 600권씩 읽었다. 틈틈이 인터넷을 켜서는 신문사 웹페이지에 들어가서 기사를 계속 읽었는데 그 내용은 아무리 읽어도 무슨무슨녀가 뒤태를 보여준다는 내용으로 절반 이상이 요약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는 동안 괜히 쓸데없이 밤새 깨어 있었는가 하면 무서운 기세로 종일 낮잠을 자기도 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어디로 가야 할 때는 전화로 남 험담하는 이야기들을 읽었다. 나는 내가 대학 시절 발견한 “황금의 12대 사이트”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 열두 곳은 자기 주변 사람 욕을 올리는 것이 활동의 거의 전부인 곳이었는데 열두 웹사이트를 차례대로 다 돌고 나면 그 도는 사이에 이미 처음 웹사이트에 또 그만큼 읽을 새 글이 올라왔다. 그래서 이론상 영원히 계속 무의미한 글을 돌아다니며 읽을 수 있었다.
“자기 주변 사람 욕하는 글 말고 다른 글 쓰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연예인 욕하는 글 쓰는 사람이지.”
그렇게 나는 한 시절을 그녀와 함께 멍청해지기 위해 노력하며 보냈다. 그녀는 재판을 앞두고 먼저 뇌활동 측정을 해보았다. 그렇지만 결과는 여전히 안 좋았다. 그러니까 좋았다는 뜻이다. 과연 그간의 노력으로 그녀의 뇌는 부상에 가까운 퇴화를 보이고 있었지만, 워낙에 원상태가 좋다 보니 그래봐야 아직 너무 성적이 좋았다. 이만하면 일반인들보다는 월등했다. 회사에서 억지를 부리려면 부릴 수 있어 보였다.
“아, 아깝네. 역시 시간이 너무 부족했나.”
그녀는 그런데도 그냥 장난인 것처럼 웃기만 했다. 그때 늦여름 저녁, 별이 뜨는 언덕길을 같이 지친 걸음으로 걷고 있었는데,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게 내 인생에서 아마 가장 행복한 순간일 거라고. 둘이 같이 진이 빠지도록 몇날 며칠 최선을 다해 멍청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이 우스운 한여름을 같이 보내고, 문득 시원해진 밤바람에 같이 피곤한 한숨을 쉬는 것.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다. 내가 대학 때 그렇게 멍청해 보였던 것은 너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너를 보고 있으면, 네 생각을 하면, 그때부터는 아무리 해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고. 꿈을 꿀 때도, 다시 새 꿈을 찾아야 할 때도, 나는 온통 너를 생각하기만 했다고. 그녀는 나를 쳐다보았고,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이번에도 웃어주었다.
며칠 후, 나는 그녀의 재판을 보러 갔다. 재판 중에 뇌활동 측정이 시작되었다. 뇌활동 측정을 받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녀는 누구인가를 떠올리려고 했다. 내 눈에는 그게 보였다. 누구인지는 결코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일반인과 다름없거나 더 낮은 성적을 보여주었고, 재판에서 이겼다. 가을이 지나기 전에 중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그곳에서 몇 달 몇 년을 지내는 동안 과연 연봉값을 해주는 직원이었고 한편으로는 그사이에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올여름 다시 아주 오래간만에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나는 목요일 저녁에 잠깐 그녀를 만나기로 했는데, 이번에는 뭐라도 하나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16년, 역삼동에서
곽재식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며 소설을 쓴다.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화학을 전공한 화학자다. 특히 과학소설(SF) 장르의 글을 활발히 써왔고, 트위터 140자 소설은 주목을 끌고 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2013)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2014)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2015) 등의 책을 냈다.
사람의 뇌활동을 정확히 측정하는 장비는 점점 발전했고
요즘은 꽤 널리 쓰이고 있었다
대학입시에 학생들의 뇌활동 측정 결과를 내라고 하는 것이
공정한지 아닌지를 두고
날마다 논쟁에 정치싸움이 날 만도 했다
뇌파를 측정해 두뇌 활용의 패턴을 조사하고 사람의 감정을 읽거나 로봇 시스템과 연결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소재 뇌과학 스타트업 기업인 ‘오픈비시아이’가 뇌파 측정기 신제품 출시를 위해 크라우드펀딩 누리집인 ‘킥스타터'에 ‘울트라코텍스 마크 4’를 299달러에 내놓고 지난해 말부터 자금 모집에 들어갔다. 오픈비시아이는 이 기계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뇌파 측정 자료를 획득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픈비시아이 제공
멍청해질 수 있을까?” 뇌신경 지도가 완성된 세상 “최대한 단시간 내에 멍청해질 수 없을까?” 적당히 안부 묻는 말이 끝나고 나서, 그녀가 나에게 물어본 본론은 그것이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뇌활동 측정을 받는데 점수를 최대한 낮게 받아야 돼.” “낮게? 높게 받아야 되는 게 아니고?” “응. 낮게.” 하기야, 그녀라면 뇌활동 측정 점수를 높게 받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과거의 기억이 그대로 소리로 변한 것같이 생생했다.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웃는 모습을 보면 천사처럼 친절해 보였지만 동시에 말을 걸려고 하면 어디서 생기는지 모르는 어마어마한 위엄으로 얼굴을 똑바로 보기도 어려운 사람이 그녀였다. 대학 시절 이런저런 일로 그녀와 어울리는 시간도 많았고, 졸업 후에도 아주 가끔씩 그럭저럭 소식은 닿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좋아한다고 말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고 말했다. 그녀가 목요일 저녁이라고 말하자, 나는 무슨 얼토당토않은 20세기 연애 수법을 기억해낸 것인지 갑자기 “음, 목요일이라고, 수요일이나 금요일은 안 될까” 하고 괜히 목요일 저녁에 뭔가 약속이 있는 척을 했다. 내가 말하고 있으면서도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만나자고 한다면 다음날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만날 것이다. 다음날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면 특히나 그녀를 만날 것이다. 그래 봐야 결국 대화가 조금 더 이어지자 우리는 그녀의 뜻대로 목요일 저녁에 만나게 되었고, 나는 목요일이 되기까지 내내 그녀를 만나기를 준비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 목요일 저녁과 그 밖의 시간, 둘로 나뉘어 있는 느낌이었다. 목요일 저녁이 올 때까지 그 모든 시간이 목요일 저녁을 위한 준비인 셈이었다. 입고 갈 옷을 고르거나 저녁 먹을 식당을 택하기 위해 궁리할 때가 아니라고 해도, 이 인간이 동작하고 있는 이유는 항상 50% 이상은 목요일 저녁이 올 때까지 순조롭게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나는 뇌활동 측정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뇌활동 측정에 관해 궁금한 일이 있다면 나에게 연락을 해 오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비슷한 질문을 나에게 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뇌활동 측정 프로그램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면, 거의 인사처럼 뇌활동 측정 점수를 잘 받는 비결 같은 것이 있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뇌의 신경 연결 지도와 기능 분석이 완료된 후로, 사람의 뇌활동을 정확히 측정하는 장비는 점점 발전했고, 요즘은 꽤 널리 쓰이고 있었다. 누가 어떤 영역에서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뇌의 특정한 능력이 어떤 식으로 발달했는지 숫자로 깔끔한 결과를 주는 장치는 쓸 곳이 많았고,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우리 회사 제품은 값도 싼 편이었다. 입사시험에서 적성에 맞는 사람을 뽑는지 검사하기 위해 뇌활동 측정 결과를 이력서에 첨부해서 내라는 경우도 많았고, 결혼을 앞둔 남녀가 서로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비교하여 궁합이 맞는지 보기 위해 뇌활동 측정을 받는 일도 유행하고 있었다. 나노센서와 실시간 신호처리 기술을 사용하는 요즘 장비는 예전에 fMRI로 뇌를 찍으며 적당히 짐작이나 하던 시절보다는 비할 바 없이 정확했다. 그러니, 대학입시에 학생들의 뇌활동 측정 결과를 내라고 하는 것이 공정한지 아닌지를 두고 날마다 논쟁에 정치싸움이 날 만도 했다.
집중력이 필요한 과제를 수행할 때(위)와 그렇지 않을 때 활성화(붉은색)되는 현상을 연구한 이미지.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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