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소설
김보영 단편
김보영 단편
지난 5월20일 여성혐오 범죄 피해자 추모식이 열린 서울 강남역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꽃다발과 메시지가 담긴 포스트잇이 쌓여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거리를 걸을 수 있겠지 아가씨가 쪼그리고 앉아 마요네즈를 고르는 동안 아가씨 주위로 시선이 줄줄이 따라붙었다. 매대 뒤에서 누가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는 걸 옆에서 눈치를 주며 내리게 한다. 나이깨나 들어 보이는 남자 둘이 헛기침을 하며 쭈뼛쭈뼛 다가섰다. “아가씨, 어디 살아요?” 아가씨는 마요네즈의 상표에만 시선을 꽂았다. 꼼꼼하게 성분을 살피는 척을 하지만 읽는 기색은 없다. 화장을 짙게 바른 볼은 핏기 없이 창백해 보였다. “저, 우리 이상한 사람 아녜요. 에, 요 앞에서 가게 하는데, 신선상회라고요, 유기농 과일 파는데.” 앞에 선 남자가 공인인증서라도 되는 양 주섬주섬 주민등록증을 내밀자 뒤에 있던 사람도 같이 어색하게 꺼내며 해죽 웃었다. “장 보고 집에 바로 가요? 잠깐 우리 가게 들러서 유자차라도 어때요? 내가 서비스해줄 수도…….” “아저씨들, 그분 내버려 둬요.” 남자들 뒤에서 소년들의 합창이 들려왔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 셋이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분은 그냥 장을 보러 온 거예요. 장만 보고 집에 가게 해요.” “유자차를 마시러 나온 게 아녜요.” “맞아요. 유자차를 마시러 나온 게 아녜요.” 학생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외우게 시키지 않았을까 싶은 말을 합창했다. 신선상회 주인이 “애들이 어디 어른 말씀하시는데……” 하며 벌컥 화를 내며 일어서자 직원이 모자를 눌러쓰고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이분과 아는 사이신가요?” “모르는 사이지만 사람이 대화하다 보면 아는 사이가 될 수도 있고…….” “됐습니다. 모르는 손님에게 말 걸지 마세요. 손님, 계속 장 보세요. 혹시 일 있으면 부르세요.” “이봐요, 사람을 무슨 추행범으로 보네. 난 그냥 좋은 마음으로…….” 아가씨가 계산대에 줄을 서는 동안 손님들은 숨소리 하나 없이 침묵했다. 그러면서도 왠지 옆 계산대는 텅텅 비고 아가씨가 선 줄에만 길게 늘어서 있다. 아가씨가 바구니에서 내려놓는 콩나물 봉지에 바코드를 찍던 직원은 더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하지만, 저 여기서 일하는 동안 여자 손님은 처음 봤어요.” 아가씨는 말없이 양파를 꺼내고 계산대를 종종걸음으로 지나 계산이 끝난 물건을 천 가방에 넣었다. “아니지, 한 번인가 봤나. 까만 밴을 타고 와서 담배만 사고 바로 나갔죠. 덩치 좋은 남자가 넷은 붙어 있었고요. 여자 혼자 장 보러 나오는 일은 드물잖아요. 아니, 보통은 거리를 다니지 않죠.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여자들이 있어야 거리가 화사해질 것 같은데.” “얼른 찍어주세요.” 아가씨가 말하자 점원은 환하게 웃었다. “목소리가 예쁘시네요.” “그런 말 하는 거 아녜요.” “오해하지 마세요. 진심이에요. 평상시에 목소리 예쁘단 말 못 들어 보셨나 봐요.” “점원 양반.” 뒤에서 기다리던 할아버지가 핀잔을 주었다. “아가씨 말이 맞아. 그런 말 하는 거 아닐세. 아가씨는 물건만 사고 갈 거야. 어서 보내드려.” 점원은 침울한 얼굴로 양파를 천 가방에 담으며 덧붙였다. “정말로 칭찬이었어요. 악의가 없었다고요.” 아가씨는 천 가방을 양손에 꼭 쥐고 마트를 나섰다. 마트 앞에는 벌써 한 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남자들이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사람과 이를 제지하는 사람이 여기저기서 실랑이를 한다. “찍으면 안 돼.” “하지만 기념인데.” “학교에서 뭘 배웠어? 실례라고.” 그 와중에 찰칵거리는 소리는 연신 터진다. 눈앞에 선 높은 건물의 홀로그램 광고판에는 반쯤 벗은 육감적인 여자 모델이 엉덩이를 반쯤 드러낸 채 서 있다. 옆 휴대폰 매장 입구에는 여자 마네킹이 “어서 오십시오”라는 기계음을 반복하며 허리를 숙였다 일어났다 한다. 간판, 입간판, 광고판에 여자 모델이 박혀 있지만 가게에 있는 사람들, 거리를 서성이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다. 남자를 가득 채운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눈앞을 지나갔다. 차체에 “여자 의체 무료 제공!”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다. 버스 정류장에는 “태어난 그대로의 성으로 삽시다”라는 문구가 달린 공익 광고가 눈에 띈다. 아가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발을 떼었다. 노란 택시 한 대가 아가씨 옆에 차를 세우며 경적을 울렸다. 택시 기사가 창밖으로 고개를 비죽 내밀며 고함을 질렀다. “아가씨, 여기 타요. 내가 태워줄 테니까!” 뒤에 오던 승용차가 속도를 늦추며 택시 옆에 붙었다. 승용차 운전수는 창을 내리고 전화기를 귀에 대며 아가씨에게 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신고하려는 눈치다. “난 좋은 사람이에요! 여기 신분증도 있어요. 회사에 전화해서 확인해도 돼요! 여기 블랙박스 보이죠? 내가 뭐 하는지 다 블랙박스에 저장돼요! 걱정하지 말고 타요! 돈 내라고 안 할게! 그렇게 혼자 다니면 안 돼요!” 기사가 소리를 지르자 다른 차가 뒤에서 빵빵거리며 소리쳤다. “이봐, 그 아가씨 그냥 가게 해! 수작 부리지 말고!” “정말 위험해 보여서 그런다니까! 어서 타요!” 아가씨는 걸음을 멈췄다. 아가씨가 두리번거리며 선 지하철 입구에는 꽃과 촛불이 놓여 있고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다. 포스트잇마다 성토가 가득하다. “요새 여자가 얼마나 귀한데.” “가뜩이나 여자가 적은데 죽이기까지 하다니.” 식당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도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도 모두 창가에 붙어 있거나 문밖에 나와 있다. 골목에 숨어 뒤를 따라붙는 사람도 있다. 아가씨는 결심하고 차에 뛰어들었다. “위험할 뻔했어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차림으로 혼자 돌아다녀요?” 기사는 백미러를 조정해 손님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가씨는 손이 파리하도록 천 가방을 꼭 붙든 채 문에 몸을 딱 붙였다. “여기 신분증 보이죠? 회사에 전화해서 확인해요. 자요.” 기사가 옆에 붙여둔 기사 자격증을 톡톡 치며 전화기를 건넸지만 아가씨는 받지 않았다. “집까지 데려다줄게요. 주소 대 보세요……. 아니다, 가까운 동네 이름만 대요. 거기서부터 걸어서 들어가요. 집을 알아내려는 게 아녜요.” 아까 뒤에서 빵빵거리던 차가 옆에 바싹 붙으며 고함을 질렀다. 기사는 창문을 내리고 맞붙어 소리를 질렀다. “손님이야, 손님이라고! 집에 모셔다드리려는 거야! 너야말로 쫓아오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 기사는 창문을 내리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히죽 웃었다. “그런데 정말 여자 맞죠? 여장남자라든가 그런 것 아니고. ……아니 뭐, 그냥.” 기사는 볼을 긁적였다. “요새는 아무도 여자가 되려 하지 않잖아요.” “여자 맞아요.” “가만, 혹시 여자 몸을 입은 것도 아니라 진짜 여자예요? 날 때부터 여자였어요?” “네.” “평생 쓸 행운을 오늘 다 썼나 보네.” 기사는 즐거워졌는지 휘파람을 부르며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어느 대학에서 여대생이 교정에서 여자화장실을 없애지 말라는 항의를 하고 있다. ―이미 교정에 화장실이 하나뿐이에요. 전 종일 물을 마시지 않고 참다가 집에 가요. 생리일에는 등교도 못 해요. 인권 문제라고요. ―그러면 남자가 되면 되잖아요. 누군가가 반론한다. ―나도 원래 여자였어요. 누군 남자로 살고 싶은 줄 알아요? 왜 자기만 생각해요? 학교에서 왜 한 명을 위해 희생해야 해요? “삼성에서 합성신체를 만들어 팔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 몰랐겠죠.” 기사가 턴을 틀며 말했다. “회사에서는 여자 몸이 잘 팔릴 줄 알았대요. 쭉쭉 빵빵한 여자 몸 광고도 잔뜩 했잖아요. 하지만 다들 어째 남자 몸만 샀죠. 고급 제품이든 싸구려든 남자기만 하면 동이 났잖아요.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을 땐 이미 때가 늦었죠.” 아가씨는 길에 시선을 두었다. “여성 여러분, 태어난 성으로 삽시다”라는 현수막이 눈앞을 지나갔다. “나라에는 여자가 필요해요”라는 현수막이 연이어 지나간다. 나무판을 목에 건 한 남자가 십자가를 든 채 서성인다. 나무판에는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은 신의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다”라는 문구가 요란한 글씨체로 붙어 있다. 하얀 마스크를 쓴 한 무리의 남자들이 인도를 행진했다. 팻말마다 “합성신체 판매를 금하라”, “우리는 여자가 필요하다” 같은 문구가 흘러간다. “하긴, 워낙 경기가 안 좋았잖아요. 취업 준비하는 여자들이 줄줄이 남자 몸으로 갈아입었죠. 나 참, 남자로 사는 것도 쉬운 게 아닌데. 이렇게 되기 전에 위에서 조치를 취해야 했는데, 높으신 분들 중에 합성신체가 뭔지, 인격 데이터를 서버에 저장했다가 새 몸에 옮겨 넣는다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데에 내 손모가지를 걸 수도 있어요. 어영부영 막기 시작했을 땐 성비가 완전히 무너지고 난 뒤였으니까.” ―산부인과가 좀 더 필요해요. 산후조리원도요. 어린이집도 턱없이 부족하고요. 산부인과 하나 없는 지역이 늘고 있어요. 그나마 없는 여자들이 아이를 낳다 죽어가요. ―하지만 여자가 없는 지역도 마찬가지로 많아요. 산부인과 의사가 되면 먹고살 수가 없다고요. “결혼은 했어요? 할 거죠?” “모르겠어요.” “결혼하지 않을 거면 왜 여자가 됐는데요?” 기사는 어리둥절해서 물었고 아가씨는 한참 만에야 답했다. “난 여자니까요.” “그런 게 확신이 돼요? 몸이야 갈아입으면 그만인데. 나도 여자였을 수 있죠. 아빠가 취업 잘돼라고 어렸을 때 갈아 끼웠을지도. 누가 알겠어요.” 옷가게에 전시된 옷은 모두 남자 옷이다. 신발도 속옷도 남자 것이다. 생리대를 사려면 대도시로 나가야 한다. 여성용품 회사는 자취를 감추었다. 여자아이를 위한 인형이나 장난감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예능이나 쇼프로에서도 이제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한구석에 인형처럼 예쁜 여자가 웃으며 앉아 있을 뿐이다. 스크린에도 남자들뿐이다. 감독과 창작자들도, 작곡가와 화가와 작가들도 오래전에 남자로 개명하고 남자 몸으로 갈아입었다. “여자를 위한 시설이나 정책이 더 필요하다는 말은 많죠. 학교에도 육아실이나 수유실이나 생리대 자판기 같은 게 있어야 한다든가요. 하지만 그게 되겠어요? 정치하는 사람도 다 남자고 투표권을 가진 절대다수가 남자인데요. 그야, 여자가 더 생겨야 남자도 좋겠지만, 원래 사람은 그리 멀리 보지 못하잖아요. 기껏 어렵게 남자 몸 갈아탔는데 여자한테 돈 퍼붓는 거 좋아할 사람도 없고. 이러다 몇 년 안에 이 나라 없어진다고 말은 많이 하는데.” 학교에도 여자는 없다. 교수도 학생도 남자들이다. 수험생은 입시철에 남자로 갈아타고 교수가 되려는 사람들도 남자로 갈아탄다. 회사에도 여자는 없다. 꿋꿋하게 버티던 직장인들도 연봉협상이나 정리해고 시즌이 오면 줄줄이 남자가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막노동이라도 하려 빚을 내 남자가 되고 부잣집 아이들은 땅이나 회사를 물려받으려 남자로 몸을 바꾼다. “하긴 여자인 게 좋죠? 사랑받잖아요. 주목도 받고. 이 거리 남자들이 다 아가씨만 보고 있을걸요.” “내리겠어요.” 아가씨가 경직된 얼굴로 말했다. 기사는 당황해서 길가에 차를 멈췄다. “이봐요. 아가씨. 나 살짝 기분 나쁠라 하는데, 난 정말 호의로 태워준 거예요.” 아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독신주의 그런 거 아니죠? 결혼은 할 거잖아요. 그렇죠? 애를 낳아야 해요. 국가를 위한 일이죠. 아니, 국가는 상관없지. 아무튼 애는 낳아야 해요. 그렇게 생각은 하죠?” 아가씨는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대체 뭐가 문제예요?” “나에 대해 말하는 거요.” 아가씨의 말에 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떠들고 싶으면 차라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나에 대해 말하고 싶으면 차라리 물어봐요. 그리고 내가 말하는 걸 들어요.” “사람한테 말도 못 붙여요? 내가 뭐 해코지한 것도 아니고. 그럼 왜 거리를 나다녀요? 왜 그런 옷을 입고요?” 아가씨는 두건을 눌러쓰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인적 없는 골목에 들어서자 비로소 평온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내 다른 종류의 불안이 찾아온다. 아가씨는 두건을 꼭 여미고 저녁 찬거리를 품에 안았다. 한결 추워진 날씨에 손을 호호 분다. 아가씨는 주목을 원하지 않는다. 무시받거나 지워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움을 원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디서 뭘 하든 자연스럽기를. 어느 풍경에 끼어 있든 별스러워 보이지 않기를. 거리를 무심히 걷는 모든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기를. 그게 가능할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아가씨는 시위를 하고 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시위. 걷고, 쇼핑을 하고, 나다니고, 차를 타고, 찬거리를 사고. 일상을 사는 시위. 이렇게 한 명이 거리를 걷는 것을 보면 한 명이 더 용기를 낼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 다음날은 두 명일지도 몰라. 모레는 열 명일 수도 있겠지. 집 안에 숨어 있던 여자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면 서로를 보며 위안을 받을 수 있겠지. 그렇게 거리가 여자로 넘쳐나면 나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때가 오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뭘 묻거나 뭘 하라고 말하는 걸 듣는 일 없이 거리를 걸을 수 있겠지. 아가씨는 내일도 거리로 나올 생각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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