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사회주의에 대한 노스탤지어

등록 2016-07-15 19:08수정 2016-07-15 20:10

[토요판] 김현경의 시, 도취의 피안
도취의 피안  김수영

내가 사는 지붕 우를 흘러가는 날짐승들이
울고 가는 울음소리에도
나는 취하지 않으련다

사람이야 말할 수 없이 애처로운 것이지만
내가 부끄러운 것은 사람보다도
저 날짐승들이라 할까
내가 있는 방 우에 와서 앉거나
또는 그의 그림자가 혹시나 떨어질까 보아 두려워하는 것도
나는 아무것에도 취하여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번씩 찾아오는
수치와 고민의 순간을 너에게 보이거나
들키거나 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얇은 지붕 우에서 솔개미 같은
사나운 놈이 약한 날짐승들이 오기를 노리면서 기다리고
더운 날과 추운 날을 가리지 않고
늙은 버섯처럼 숨어 있기 때문에도 아니다

날짐승의 가는 발가락 사이에라도 잠겨 있을 운명 -
그것이 사람의 발자욱 소리보다도
나에게 시간을 가르쳐주는 것이 나는 싫다

나야 늙어가는 몸 우에 하잘것없이 앉아 있으면 그만이고
너는 날아가면 그만이지만
잠시라도 나는 취하는 것이 싫다는 말이다

나의 초라한 검은 지붕에
너의 날개 소리를 남기지 말고
네가 던지는 조그만 그림자가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나의 귀에다 너의 엷은 울음소리를 남기지 말아라
차라리 앉아 있는 기계와 같이
취하지 않고 늙어가는
나와 나의 겨울을 한층 더 무거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나의 눈이랑 한층 더 맑게 하여다우
짐승이여 짐승이여 날짐승이여
도취의 피안에서 날아온 무수한 날짐승들이여

나는 김수영의 시 중에 ‘도취의 피안’을 제일로 꼽는다. 서정의 가락이 유창하게 늘어서 있는 문장들이 특히 좋다. 명확한 시의 뜻이 언뜻 다가오지 않아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하고 쓴 시냐고 물어봤다. 김 시인은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노스탤지어라고 대답했다. 그 시대 우리 젊은이들, 특히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막스 레닌 사상을 곧 이상주의요 인도적인 최고의 정치 목표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모두 1954년 겨울은 춥고 어둡고 마음도 추운 암흑의 시대였다. 김수영 시인은 포로 석방 후, 부산에서 어떤 호구지책도 안착도 안 된 채 서울로 올라왔다. 기거할 곳도 생활 대책도 서 있지 못했다. 다행히도 이모부가 운영하시던, 정부 유인물을 인쇄하던 신당동의 인쇄소 직원 숙소에 방 2칸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한 칸은 어머니와 동생들 5명이 살고 나머지 한 칸은 김 시인만을 위한 공간으로 했다. 아무리 셋방살이를 해도 그는 그만의 독립된 공간을 가져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시 ‘도취의 피안’이 거기에서 탄생된 시이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그의 시작생활은 맹렬했다. 한시도 책을 놓지 않고 읽고 쓰고 했다. 그러나 전쟁과 함께 시작된 그의 불운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편의 시도 쓰지 못하게 했다. 의용군 대열에서 낙오되어 죽음을 몇 번이나 겪으면서 결국 자기 스스로 생이빨을 뽑아야 했을 정도로 암울하고 암담했던 포로생활을 끝내고 환도 후 태평양 신문기자로 있었으나 나하고는 별거 중이었음으로 나에 대한 배신감과 수치와 가난에 시달렸던 그 시기에 ‘달나라의 작난’ ‘너를 잃고’ ‘아버지의 사진’ 등 어둡고 비애에 찬 시들이 탄생한 시기다.

‘낙타의 과음’이란 수필에 잘 나타나 있듯이 매일매일의 폭주로 몸과 마음이 황폐할 대로 지치고 황폐해진 시기였다. 심신의 방황을 하던 그 어렵던 시기에도 그는 문학과 시에서만 구원의 힘을 얻었다. 술에서 깨어나면 몽롱한 상태로도 문학에 탐닉했다. 하이데거를 읽고 그에게 다가갔다. 온몸으로 시를 쓰고 소설도 공부하려 애썼다. 거리에서도 시를 생각하고 다방이 그의 서재였다. 이때 쓴 일기에 모든 것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때 쓴 시가 ‘도취의 피안’이다.

이 시가 신문지상에 발표되었을 때 나는 이 시를 신문에서 읽었다. 그 당시 나는 김 시인과 별거 중이었지만 이 시에 너무 감동하여 김 시인에 대한 그리움이 더 열렬하였다. 이 시가 그와 나의 인연의 끈을 다시 이어준 것이라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는 시를 쉽게 쓰지 못했다. 한 달에 한 편꼴의 과작이었다. 한편을 완성할 때마다 온몸으로 몸부림치며 작품을 완성했다. 난산이다, 하고 소리치며 나를 불러 책상머리에 앉히고는 정서하게 했다. “내가 시를 혼자 쓰는 게 아니다”라며 지난밤 주사를 사과하듯 말하곤 했다.

그의 시는 지금도 살아 있다. 영원히 신선한, 진실한, 지고한, 아름다움으로 모든 인류에게 소리치고 있다. 자유와 사랑을 그리고 자연을….

작가·김수영 시인의 아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202:1 경쟁률 뚫고 ‘60초 독백’ 열연…한국영화 이끌 얼굴들 모였다 1.

202:1 경쟁률 뚫고 ‘60초 독백’ 열연…한국영화 이끌 얼굴들 모였다

뉴진스 ‘디토’ 뮤비, 세계 3대 광고제서 대상 후보로 2.

뉴진스 ‘디토’ 뮤비, 세계 3대 광고제서 대상 후보로

민희진, 디스패치 기자 고소… “지속적으로 거짓 사실을 기사화” 3.

민희진, 디스패치 기자 고소… “지속적으로 거짓 사실을 기사화”

갈수록 느는 왜말·꼬부랑말 말살이 이대로 괜찮은가 [.txt] 4.

갈수록 느는 왜말·꼬부랑말 말살이 이대로 괜찮은가 [.txt]

데뷔 25주년 백지영 “댄스도 다시 해야죠, 50대 되기 전에” 5.

데뷔 25주년 백지영 “댄스도 다시 해야죠, 50대 되기 전에”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