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 주의 시인 - 이병률
여름 감기 이병률
미안하다고 구름을 올려다보지 않으리라
좋아, 라고 말하지도 않으리라 그대를 데려다주는 일
그대의 미래를 나누는 일
그 일에만 나를 사용하리라 한 사람이 와서 나는 어렵지만
두 평이라도 어디 땅을 사서
당신의 뿌리를 담가야겠지만
그것으로도 어려우리라 꽃집을 지나면서도 어떻게 살지
좁은 골목에 앉아서도 어떻게 살지
요 며칠 혼자 하는 말은 이 말뿐이지만
모두 당신으로 살아가리라 힘주지 않으리라
무엇이 해변으로 걸어가게 하는지도
무엇으로 저 햇빛을 받아야 하는지도
무엇으로 이토록 삶에게
안내되고 있는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세상에는
공기만으로도 살아가는
공기란(空氣蘭)이라는 식물이 있음을 알았으니
당신으로 살지는 않으리라 물 없이 흙 없이
햇빛도 없이
사람도 없이
나는 참 공기만으로 살아가리라 -<눈사람 여관> 수록-
좋아, 라고 말하지도 않으리라 그대를 데려다주는 일
그대의 미래를 나누는 일
그 일에만 나를 사용하리라 한 사람이 와서 나는 어렵지만
두 평이라도 어디 땅을 사서
당신의 뿌리를 담가야겠지만
그것으로도 어려우리라 꽃집을 지나면서도 어떻게 살지
좁은 골목에 앉아서도 어떻게 살지
요 며칠 혼자 하는 말은 이 말뿐이지만
모두 당신으로 살아가리라 힘주지 않으리라
무엇이 해변으로 걸어가게 하는지도
무엇으로 저 햇빛을 받아야 하는지도
무엇으로 이토록 삶에게
안내되고 있는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세상에는
공기만으로도 살아가는
공기란(空氣蘭)이라는 식물이 있음을 알았으니
당신으로 살지는 않으리라 물 없이 흙 없이
햇빛도 없이
사람도 없이
나는 참 공기만으로 살아가리라 -<눈사람 여관> 수록-
이병률 시인
뼈아프다는 것 이병률의 시는 인생이 전적으로 ‘나’에게, 그러니까 ‘한 인간’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뼈아프게 아는 일로써 시작되었다. 그는 ‘살다’라는 뼈아픔의 공통 행위이자 감정을 통해 타인을 알아보고 위무한다. “나도 벼랑 끝에 살며 당신처럼 핏발의 냄새 풍긴 적 있기 때문이다”(‘벼랑을 달리네’). 알아보는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무위와 무언의 알은체는 먹먹한 감동을 안겨준다. 누가 비로소 나를 알아봐줄 때의 안도감과, 나도 이해하지 못한 나의 감정이 해명될 때의 기쁜 통증. 작품이 독자의 자의식과 해석을 잠시 몰수하는 ‘몰입’의 상태다. 인간이 문학과 예술에 기대하는 행복은 ‘나’를 찾는 것만이 아니라 ‘나’를 잊는 것, 즉 작품에 몰입하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고양(高揚)은 ‘나’를 지울 때, 상대에 녹아들어가 내가 잠시 사라질 때 생겨난다. 이해와는 별개의 일이다. 이병률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그의 시에 몰입하고, ‘나’를 잊고 ‘당신’에게 녹아든다. 그런 ‘나’를 떠나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하”지만. ‘인생’에 버금가는 거의 유일한 것은 ‘사랑’이다. 이병률에게 ‘사랑’은 인생의 가장 뼈아픈 부분이자, 인생의 번민과 상실이 압축되어 있는 전부다. 인생이 뼈아프다는 것. 사랑만큼이나 뼈아프다는 것. 둘은 자주 하나의 문제고,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긴밀한 관계라는 것. 이병률은 생애 최대의 난제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을 통해 다룬다. 감정은 현대시에서 지양해야 할 세련되지 못한 대상으로 취급되지만, 인간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표명하는 가장 솔직하고 투명한 기제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병률은 감정의 맥락과 심연을 응시하면서, 한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감정들을 어찌할 수 없는 채로 언어화한다. 살아가며 사랑하는 존재인 인간은 감정을 통해 다른 존재를 들여다보고 알아보며, 자신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 극적인 사건이 ‘사랑’이다. 그리고 ‘시’는 사랑의 유의어거나 대체어다. “햇빛은 찬란하고 나를 둘 데가 없다// 시를 생각하느라 여기까지 왔다”(‘대림동’). 얼마나 처절했는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당신’은 다 알지 못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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