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소설
배명훈 단편
배명훈 단편
지난 5월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하버드대 마이크로로보틱스 연구소의 ‘로보비’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이 초소형 드론은 정전기를 이용해 물건 표면에 달라붙는데, 향후 착륙 중 태양광 충전을 하는 방법이 개발되면 잠재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대 마이크로로보틱스 연구소 제공
모기보다 작고 일체형이었어요” 2.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부 쪽에 연락을 했는데, 더 들어보라는군요. 그래서 그 초소형 비행체를 넘기실 생각인가요?” “필요하면. 그런데 그뿐이었으면 굳이 남의 나라 요원을 찾아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쪽이야 벌써 기술 축적이 꽤 돼 있을 거고, 남들은 어쩌고 있나 참고하는 정도 말고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을 거고. 다른 데 파는 게 낫죠.” “위에서도 아마 그럴 거라고 하더군요. 그럼 계속해 보세요. 포획한 이야기부터.” “네, 포획. 잡는 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고장이 난 모양인지 벽에 가만히 붙어 있더라고요. 일단 유리컵으로 덮어놓고 들여다봤는데, 크기는 실제 모기보다 약간 작고 몸체가 일체형이었어요. 쓸데없이 머리-가슴-배 구조는 아니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다리라기보다는 작은 갈고리가 달린 고정식 착륙장치 같은 걸로 벽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 착륙장치 모양을 보니 아마도 전체 무게가 그만한 크기의 곤충보다는 무거운 것 같았어요. 그걸 서재에 가져가서 해부를 했는데요.” “집에서요?” “기계손 달린 현미경이 있거든요. 손이 꽤 정교해서 쓸 만해요. 일단, 날개는 의외로 특이하지는 않았어요. 가느다란 뼈대에 얇은 막에. 뼈대가 뻗어 있는 패턴이 낯설긴 했지만 상상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구조 같은 건 아니었으니까요. 어쩌면 같은 재료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제일 효율적인 구조를 누군가가 찾아낸 건지도 모르죠.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건 나중에 전문가들이 연구해보면 알 문제고, 우선 분해를 했죠. 내부구조가 간단했어요. 통신장치처럼 보이는 뭔가, 전지, 날개를 움직이는 부분, 그리고 뾰족한 무언가.” “뾰족한 뭔가?” “네, 그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순서대로요. 통신장치처럼 보이는 뭔가부터. 솔직히 이게 정확히 뭔지 알 수는 없었는데요, 통신장비는 맞고, 그중에서도 수신장치로 보이긴 했어요. 송신장치일 수도 있지만 본체 안에 다른 처리장치가 전혀 안 보였거든요. 그리고 하나만 있다면 역시 수신장치일 거니까. 송신장치든 저장장치든 뇌에 해당하는 부분이 전혀 없어서, 그냥 신호를 받는 대로 바로 처리한다고 할까요. 뇌가 밖에 있는 거예요. 누가 밖에서 조종을 하겠죠.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그만큼 본체가 작아지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외부를 관찰하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센서도 없고 카메라도 없고.” “한 대가 더 있는 거군요.” “아마도요. 열감지기 장착한 애가 하나가 더 있거나, 아무튼 무슨 방법으로든 집 안을 감시하고 있었겠죠.” “가능한 구상이에요. 작게만 만들 수 있다면 기능을 여러 대에 분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것도 잡으셨나요?” “못 찾았어요. 나중에 제 침실 뒤져 보면 아마 나올 거예요. 제가 모르는 구멍으로 빠져나갔을 수도 있지만 급한 대로 스파크를 여기저기 터뜨려 놨으니까 그런 정교한 장비면 회로가 나갔을 수도 있죠.” “손상됐으면 아깝겠네요. 그래도 그쪽에 저장장치 같은 게 있는 거면 벌써 어떤 정보를 입수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잘하셨어요. 그다음은요?” “그다음은 전지. 사실 이것도 정체를 전혀 모르겠어요. 그냥 전지가 없을 수는 없으니까 전지라고 가정하는 거예요. 다른 장치에 다 병렬로 연결이 돼 있으면서, 교체가 가능한 구조이기도 했고요. 정보 처리장치일 수도 있지만, 동력원과 뇌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동력원이니까.” “동력원이겠죠. 그런데 그렇게 특이하던가요?” “특이한 정도가 아니라 여기서부터는 진짜 미궁이더라고요. 정말정말 희한한 제조사에서 만들었거나 아니면,” “아니면?” “지구 물건이 아니거나.” “에이, 설마요. 찾아보면 나오겠죠.” “맞아요, 찾아보면 나올지도 몰라요. 그런데 아닐지도 몰라서요.” “왜죠? 이상한 게 더 있었나요?” “날개요. 날개를 움직이는 부분. 자세 제어하는 부분이 자동인 것 같긴 했어요. 기체 크기에 비하면 좀 큰 장치가 부착돼 있었거든요. 조종하는 사람이 자세 제어까지 다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쪽이 아니죠.” “진동 장치!” “맞아요. 역시 그게 핵심 부품이라. 들여다본 지 꽤 됐는데, 요즘도 그렇죠?” “기본개념은 똑같죠. 날개 움직임 하나하나에 다 동력을 소모할 수는 없으니까, 탄성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날개가 파르르 떨리게 하는 거. 그 스프링 역할 하는 소재 찾아내는 게 아직도 숙제고요.” “그건 여전하네요. 가볍고, 탄성 좋고, 수없이 반복해서 늘어났다 줄었다 해도 재료 자체가 노화돼서 끊어지지 않는. 나름 제2전공 정도는 되는 분야라, 발견하자마자 좀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 자르셨군요.” “한쪽만요. 반대쪽은 안 건드렸어요.” “두 개가 있었군요! 두 개가 따로 움직이면 하나로 둘을 연결했을 때보다 자세 제어가 훨씬 어려울 텐데요, 비행능력은 향상되겠지만. 그걸 실현하다니, 우리 연구팀이 좌절하겠네요. 아무튼 그래서, 들여다보니 뭐가 나오던가요?” “유기체요.” “역시! 생명이 개입하는 수밖에 없군요!” “맞아요. 그런데 이게 진짜 문제인 게, 뭔지를 모르겠어요.” “네, 그쪽은 진짜로 전공이신데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전지는 전문이 아니라 확언을 못하겠는데, 이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지구 물건이 아니에요.” “네? 지구 물건이 아니라는 건?” “물론 외계에서 보낸 비행기라는 뜻이겠죠. 외계 암살자. 아까 맨 뒤에 이야기하려고 남겨둔 장치가 하나 있었죠? 뾰족한 무언가. 이건 비교적 알아보기 쉬웠어요. 몸체 밖으로 가느다란 바늘이 사출되는 구조더군요. 그 반대쪽에는 무슨 액체가 연결돼 있고요. 그 이상은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았어요.” “그렇겠네요. 하지만 왜죠? 외계인은 뭐고, 또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왜 하필 김은경씨를 노린다는 거죠?” “그야 저는 모르죠. 그쪽에서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요즘 우주에서나 쓸 만한 무기에 눈먼 돈 막 뿌리시던데. 그쪽에 적이 새로 생긴 거 아닌가요? 아니면 그냥 윗분들 취미생활? 그럼 제가 잘못 짚은 거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요. 그 초소형 비행체의 핵심부품 중에 지구생명체가 아닌 무언가의 생체조직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 “정확히 뭘 보고 확신하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건 당연히 비밀이죠, 계약 성사될 때까지. 성사가 안 될 일은 없다고 보지만. 아시겠죠? 제 연구 말이에요, “■■■■ ■■■ ■■ ■■”. 희나씨네 본부에서 적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는 기술이 분명해요. 어때요? 이쯤 되면 매입할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제가 보기엔 꽤 괜찮은 보증서 같은데. 기술 감정하는 거 솔직히 귀찮고 어렵잖아요. 잘 안되면 추진한 사람 입장도 난처해지고. 그런데 그 귀찮은 걸 남이 해 주다니, 얼마나 좋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냥 덥석 무세요. 조건은, 지금 당장 잠적하게 해 주시고 보수는 어제까지 생각하시던 것의 스무 배. 평소에 얼마를 생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연구비 별도에, 법률 문제 알아서 해결해 주시고, 숙식제공에 안전보장. 어때요? 윗분들도 아까부터 희나씨 연락 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죠? 어차피 결정권자들도 다 모여 계실 것 같은데 더 끌 거 있나요. 연락하고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니 저기, 흠.” “왜요? 시간이 더 필요하세요?” “아니, 좋아요. 지금 바로 이야기해 볼게요. 그런데 이쪽으로도 꽤 치밀하시네요. 이런 일을 이렇게 잘 처리하실 줄은 몰랐는데.” “당연하죠. 저요, 간밤에 모기에 물려서 죽을 뻔했어요. 그 생각만 하면 아주, 아, 진짜! 그러니까 이건 부탁이기도 해요. 희나씨,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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