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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직원들은 모두 내 선배, 잠재력 극대화하겠다”

등록 2016-09-22 19:28수정 2016-09-22 19:37

한국의 장수출판사(5)
을유문화사 정무영 대표 인터뷰
서울 종로구 을유문화사 사무실 서고 앞에 선 정무영 대표. 그는 “직원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서울 종로구 을유문화사 사무실 서고 앞에 선 정무영 대표. 그는 “직원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직원들의 포텐셜(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려 노력할 뿐이다. 내 자부심, 자랑거리로 내세울 게 있다면 그것이다. ‘을유’의 직원들은 모두 오래 근무해왔다. 출판에 관한 한 다들 내 선배다.”

서울 한복판인 종로구 수송동, 조계사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을유문화사. 1945년 창립한 71년 역사의 이 출판사 정무영(72) 대표는 2010년 대표이사직을 맡기 전까지는 “출판 문외한”이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유지를 계승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요, 향후 출판전략으로 삼고 있다는 그는 출판업계 전반의 심각한 불황 속에서도 매출액이 늘었다고 했다. “지난 3월 회계연도 결산 때 우리는 전년 대비 22%가 늘었다. 내년에도 그러기를 기대한다.”

정 대표의 부친 정진숙(1912~2008)은 1945년 12월, 34살 나이에 아동문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조풍연, 아동문학가 윤석중, 1960년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민병도 등과 을유문화사를 세우면서 4가지 출판원칙을 내세웠다. 첫째, 원고를 엄선해 민족문화 향상에 기여한다. 둘째, 교정을 열심히 해 오식(잘못된 글자 인쇄)을 없앤다. 셋째, 제품을 지성으로 만들어 독자의 사랑을 받자. 넷째, 가격을 싸게 해서 독자들에게 봉사하자. 일제 때, 지금은 없어진 조흥은행의 모태인 동일은행 직원이었던 그를 출판인의 길로 나서게 만든 데는 같은 동래 정씨 집안 할아버지뻘이었던 위당 정인보(당시 64살)의 강력한 권고도 한몫했다.

“내 말 듣고 출판업을 시작해라. 36년 동안 일본놈들에게 빼앗겼던 우리 조선의 문화유산, 언어, 문자, 이름까지 되찾으려면 36년이 다시 걸리는 거야. 오늘날에는 우리 문화유산을 되찾는 일, 그런 걸 하는 게 진짜 애국자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려면 무엇보다 출판업을 해야 해.”(<출판인 정진숙>, 2007, 을유문화사 펴냄)

동일은행 지점장 민병도가 자금을 대고 윤석중이 주간, 조풍연이 편집장, 그리고 정진숙이 전무를 맡아 종로2가에 출판사를 차렸다. 그해가 을유년이었으므로 을유문화사로 이름을 지었다. 첫 책이 여운형의 조카 여경구와 결혼해 해방기에 건국부녀동맹위원장을 했던 이각경의 한글 습자책 <가정 글씨 체첩>(1946)이었다.

전쟁통인 1952년 대표가 된 정진숙은 1992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고, 대한출판문화협회장 등을 지내며 한국 출판 1세대 대표주자로서 1960~70년대에 을유문화사를 출판 명가로 키웠다. 방송극작가 한운사는 을유문화사를 “해방 직후부터 많은 문인들이, 또 학자들이 신세지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던 곳”이라고 예찬했다. 정 대표는 정진숙의 5남 1녀 자녀 중 다섯째다.

경기고를 나와 18살 때 미국으로 유학 가서 20여 년을 살다 온 정 대표는 원래 건설 분야에서 개인사업을 했다. “(2008년 작고한) 아버지 돌아가신 뒤에도 (출판전략에서) 큰 변화는 없다”는 그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좋은 책을 저렴한 가격에 많이 보급한다”고 한 아버지의 유업 계승을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는 정 대표는 “어떤 결과를 내든 그것은 마땅히 감내해야 할 출판인으로서 사명”으로 여긴다. 하지만 직원들의 자율성과 잠재력 극대화를 얘기하는 그가 옛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건 물론 아닐 것이다.

71년 역사 자랑하는 ‘출판 명가’
‘출판문외한’이었지만 매출은 ↑

“좋은 책 싸게 많이 보급한다는
아버지의 유업을 경영 철학으로”

그가 지난해 경영업적 호조의 요인으로 꼽은 것 중 하나는 자신이 대표가 된 뒤 “회사 분위기를 확실히 바꿨다”는 점이다. 부서별로 점심식사를 하며 함께 흉금을 터놓고 얘기를 하는 등 “강물이 흐르듯” 직원들의 능력 발현과 신뢰 구축을 위해 노력했고, 일할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어떤 조직이든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며 어느 곳 어느 직종이든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 대표는 자신이 미국에서 대학 졸업 뒤 여행사에 취직해 4년 만에 부사장 자리에까지 오른 경험을 얘기하면서 “서로 믿으면서 일한 만큼 보상해주면 개인이든 조직이든 바뀐다”고 했다. 최근의 경영실적 호전에는 직원들에게 줘야 할 몫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도 ‘기여’했다는 그는 “올해 연말에 직원들(편집 6명 등 22명) 봉급을 올려주겠다”고 말했다. 매출규모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위축됐다”면서도 그렇게 얘기하는 그의 말에서 묘한 자신감 같은 게 느껴졌다.

을유문화사의 최대 베스트셀러는 백만 권 이상씩 팔린 필립 체스터필드의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권오갑 옮김)와 웨인 다이어의 <내 인생 내가 선택하며 산다>(권오갑 옮김). 하지만 을유문화사가 자랑하는 대표서적들은 따로 있다. <지용시선> <청록집> <임꺽정>(홍명희) <조선말 큰사전> <삼대>(염상섭) <당랑의 전설>(채만식) <무녀도>(김동리) <복덕방>(이태준) <여요전주>(양주동) <김약국의 딸들>(박경리) <금강>(신동엽) 그리고 ‘을유문고’ ‘한국문화총서’(대학총서) ‘세계문학전집’과 지금도 간행 중인 ‘세계사상 고전’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 등…. 최근 스테디셀러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서민의 <기생충 열전>, 기시미 이치로의 <엄마가 믿는 만큼 크는 아이> 등도 선전중이다. <지용시선> <청록집>은 지금도 수십년째 팔리고 있다.

이달 초 <불교신문>이 ‘조계사가 오랜 숙원이었던 을유문화사 건물 매입을 137억여 원에 성사시켰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1973년에 이곳 370여 평 땅에 5층짜리 건물을 지어 입주한 을유문화사가 40여 년 만에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될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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