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수 출판사들 (7)
이기웅 열화당 대표
이기웅 열화당 대표
17일 열화당 창사 45돌 기념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파주 출판도시 열화당 책박물관에서. 뒷줄 왼쪽부터 조윤형 편집실장, 임원규 영업관리 팀장, 이기웅 대표, 박미 편집실 팀장, 조민지 편집자. 앞줄 왼쪽부터 이수정 기획실장, 정혜경 책박물관 학예사. 이 자리에 송선미 영업관리 차장, 김남희 주임, 박소영 편집 디자이너는 함께하지 못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우리 시대를 담아내고 이끌어 가는 책” 목표
연말까지 특별전 ‘마흔다섯 해의 자화상’도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한 이 대표는 1966년, 당시 상승세를 타고 있던 일지사에 공채로 들어가 편집장 겸 업무부장에 전무까지 하며 경험을 쌓은 뒤 일지사쪽 권유로 1971년 열화당을 등록했다. 그러니 올해가 창사 45돌이다. 일지사에서 나와 청진동에 따로 사무실을 차린 건 1975년. 연건평 약 500평짜리 건물 두 채로 구성된 열화당 사옥의 책박물관은 창사 기념일인 지난 7월 2일부터 지금까지 800여 종에 이르는 열화당의 책들로 꾸민 ‘마흔다섯 해의 자화상’ 특별전을 열고 있다(연말까지). 전시회장인 책박물관은 1980년 이후에 나온 책들을 전시하는 제1 전시실과 그 이전 동서양 ‘옛책’들로 꾸며진 제2 전시실이 있는데, 각각 1·2 두 개 층이 서로 연결된 이 공간이 소장하고 있는 동서고금의 책은 약 4만권. “박물관을 위해 내가 책들을 모아왔는데, 소문을 듣고 저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책을 기증해줬어.” 열화당은 외관도 매력적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수많은 책들과 어우러진 내부 전시실이 “환상적”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측면 벽들은 상설 전시 공간이고 바닥면은 미술작품집이나 사진집을 비롯한 테마별 책 기획전시, 그리고 행사장으로 쓰인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볼 수 있는 라운지도 있다. 이 대표는 “우리(출판사)는 돈을 목표로 한 일반 기업이 아니다”고 했다. 시장경제체제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책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시장에 좌우되거나 그 눈치를 보는 기획, 출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출판은 고성장·고수익의 논리가 지배하는 장이 아니라 지적 생산자인 저자와 수요자인 독자의 교류와 발전을 위한 터전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고통 속에서 아름다운 영혼을 품고 태어난 예술작품”으로서의 책, “우리 시대를 담아내고 이끌어 가는 책”, “한국문화의 미래를 떠받치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미술과 사진 등 시각매체, 한국전통문화 분야 책들을 주로 내온 열화당. 가장 비중이 큰 미술 분야에선 19세기 말과 20세기 주요 미술운동을 다룬 현대미술운동 총서와 미술선서, 미술책방 등의 많은 기획 단행본들을 출간했다. 미술·사회비평가요 사진이론가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바실리 칸딘스키의 <점·선·면>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지오 폰티의 <건축 예찬>, 하싼 화티의 <이집트 구르나 마을 이야기> 등은 스테디셀러들이다. 그리고 사진문고 시리즈, <한국 악기> <서원> <경주남산>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 등의 전통분야, 최근 쇄를 거듭하는 김영석 전 이탈리아 대사의 <이탈리아 이탈리아>, 그리고 이성복 시집 <어둠 속의 시> 등 인문 분야 책들, <루브르 만화 컬렉션> 등도 열화당이 자랑하는 책들이다. 연간 15~20권의 책을 내는 열화당 직원은 이 대표 외에 9명, 그 중 5명이 편집·디자인 담당이다. 한자 사용과 세로쓰기 등 “너무 쉽게 폐기해버린” 전통의 창조적 재활용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 이 대표는 “열화당은 내 개인 재산이 아니다. 오래 일해온 직원들이 함께 꾸려가고 공유하는 일종의 가업(家業) 같은 것”이라며 “열화당을 지키는 이들에게 물려주겠다”고 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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