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수출판사들 (6)
인터뷰·문학과지성사 주일우 대표
인터뷰·문학과지성사 주일우 대표
문학과지성사 주일우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사무실에서 대구의 애독자가 새겨서 보내줬다는 ‘문학과지성' 목판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창비와도 다른 ‘초시장주의’ 승계방식
“‘지성’ 강화하고 회사 키우기가 과제” 지난해 창립 40돌을 맞은 문지의 서울 서교동 사옥 6층의 응접실 겸 회의실에는 몸을 편안히 기댈 수 있는 나지막한 의자 10여개가 마주보고 있고 그 사이 탁자 아래에 바둑판 세트 3개가 놓여 있다. “매주 화요일 (김병익 김주연 등) 1세대 선배들이 오후 서너시쯤 여기에 나와 얘기를 나누면서 바둑도 두고,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 주 대표는 “예전엔 10~12명 정도였는데, 요즘은 10명 안팎”이라며 “(이인성 정과리 홍정선 등) 2세대는 금요일에 모인다”고 했다. 근 40년간 지속돼 온 이 모임은 문지만의 중요한 전통이자 공동체적 기반이 됐다. 이런 과정을 거친 세대별 편집(계간)·경영(출판사) 승계와 집단적 논의 및 민주적 결정방식, 이것이야말로 “문지를 늘 젊고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호메오스타시스(항상성)의 토대로, 최대의 강점이자 동력”이라고 주 대표는 말했다. 1세대에 속한 문학평론가 오생근도 이 세대별 집단승계 방식을 “시장주의를 넘어선 초시장주의적 시스템”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성장과 발전을 가져다준 문지의 차별성이자 경쟁력이라고 했다. 문지 정체성의 근간인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은 지금 (강동호 금정연 등) 30대 초중반인 4세대가 맡고 있는데, 이들이 계간지 편집을 맡을 때 (이광호·우찬제) 등 40대 중후반의 3세대는 주 대표처럼 잡지 편집에서 손을 떼고 단행본을 내는 출판사 경영을 떠맡았다. 출판사 일도 대표 등 보직은 60살까지다. 따라서 주 대표가 출판사 경영 일선에서도 물러나야 할 60살 무렵 40대 중후반이 된 4세대가 계간지에서 손을 떼고 출판사 경영을 맡게 된다. 계간지 편집은 뒷세대 자율에 맡긴다. <문학과사회> 본책과 ‘세대론-픽션’이란 제목의 별책 <문학과사회 하이픈> 두 권으로 분권하는 파격적인 편집을 선보인 계간지 2016년 가을호에 대해서도 “(내부에서) 말들은 많았지만 4세대의 시도를 인정했다”고 주 대표는 말했다. 앞세대는 60살이 되면 경영을 맡게 될 후배 세대에게 보유 주식 대부분을 넘겨주는데, 출판경영 기획위원들은 2천 주 이상씩 보유해야 한다. 주 대표는 한 번도 배당한 적 없는 주식 보유 이전은 손익과 무관하다며, “공평과 분산을 특징으로 하는 편집·경영 승계 관련 규정은 상당히 세밀하게 돼 있다”고 했다. 이런 원칙은 1994년 문지가 주식회사로 전환할 때 완성됐다. <창비>보다 4년 늦은 1970년에 <문지>가 창간되고 1975년에 출판사 문지가 설립됐다. 1980년에 신군부는 ‘발행목적 위배’를 이유로 <문지>와 <창비> <뿌리깊은나무> <씨알의소리> 등을 폐간시켰다. 1988년에 복간할 때 <문지>는 <문학과사회>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4년에는 인권변호사 황인철이 발행인이던 문지가 주식회사가 돼 김병익이 2000년까지 대표직을 맡았다. 이후 계간 편집과 출판사 경영 승계는 세대에서 세대로 매우 규칙적으로 이뤄졌다. 세대별 매주 모임은 두 달에 한 번 모이는 출판편집인회의의 연장이기도 하다. 단행본 출판 관련 의견들을 주고받는 이 회의에는 65살까지 참석할 수 있다. 하지만 비상근 이사(10여 명)로 75살까지는 이사회에 참석해 회사 중요 결정에 의견을 낼 수 있다. 창비와 함께 ‘차이나 모델’을 연상시키는 지도부 집단승계 방식의 문지 승계 시스템은 주 대표의 지적처럼 창비보다 더 치밀하고 철저해 보인다. 이는 후손의 능력·의지와 관계없이 가족 경영 승계 쪽으로 점점 더 기울어가면서 1세대의 성공 뒤 급속히 퇴락 조짐을 보이는 다수의 한국 출판사들에 견주면 더욱 돋보인다. 주 대표는 연세대 생화학과를 나와 서울대에서 과학사로 석사를 받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에서 환경학을 공부했다. 문지 대표 중 첫 이공계 출신으로, 이례적이라는 시선을 받기도 했던 그는 1990년대 중반 문화 무크지 <이다>를 낼 때부터 문지 3세대로 활동해왔다. 문학을 중심으로 인문·사회 담론들까지 포괄했던 1세대 이후 문학 쪽 비중이 커져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사회 변화와는 거꾸로 시야가 협소해지는 데 대한 반성이 일면서 ‘문학과 지성’이라는 두 날개의 ‘지성’ 부분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던 게 그의 등장 배경이자 향후 과제다. 작은 규모 때문에 경쟁에서 밀리는 한국 출판의 왜소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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