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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민주적 편집·경영 승계가 문지 최강의 동력”

등록 2016-10-06 19:18수정 2016-10-07 09:05

한국의 장수출판사들 (6)
인터뷰·문학과지성사 주일우 대표

문학과지성사 주일우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사무실에서 대구의 애독자가 새겨서 보내줬다는 ‘문학과지성' 목판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문학과지성사 주일우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사무실에서 대구의 애독자가 새겨서 보내줬다는 ‘문학과지성' 목판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계간지와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된 두터운 지식계 인맥, 그리고 그것이 빚어낸 강력한 영향력에서 문학과지성사(문지)는 창작과비평사(창비)와 더불어 1970년대 이래 지금까지 곧잘 함께 거론되고 비교되면서 한국 지식사회에서 쌍벽을 이뤄온 출판사다.

문지 1세대 김병익(78)은 <문지>와 <창비>를 이렇게 비교한 적이 있다.

“<창비>가 진보적인 자세로 ‘평등 문제’를 제기하며 현실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가했다면 <문지>는 ‘자유 문제’를 제시하며 지적 성찰을 현실 접근의 방법론으로 제기했다. 그렇기에 두 잡지가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당시의 권력과 사회 정치 경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나는 <창비>의 문제 제기적 용기에 감사했고 <문지>의 대안 제시적 태도로 자족했다.”(<문학과지성> 창간 10주년 기념호 복각본 해제, 2015)

직원 총 27명(편집 13명 중 6명이 한국문학 담당), 지금까지 약 3천 종 발행에 연간 매출액은 45억~50억원 안팎. “지난 20년간 조금씩 증가해오긴 했으나 거의 변화가 없다”고 4년째 대표를 맡고 있는 문지 ‘3세대’ 주일우(49) 대표는 말했다. “20년 전엔 문지보다 크지 않았던 창비나 문학동네”에 비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아졌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100쇄를 넘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광장>(최인훈),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등 한국문학사를 빛낸 많은 스테디셀러 소설들이 문지에서 나왔다. 30만 부를 넘긴 <입 속의 검은 잎>(기형도),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성복),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등의 문지 시인선은 최근 나온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허수경)가 490권째로, 500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주 대표는 “연간 100종 정도를 내는데 한국문학 분야가 50~60종을 차지한다”며 “한국문학에 관한 한 문지가 최강”이라 자부했다.

지난해 창립 40년 맞은 문학과지성사
창비와도 다른 ‘초시장주의’ 승계방식
“‘지성’ 강화하고 회사 키우기가 과제”

지난해 창립 40돌을 맞은 문지의 서울 서교동 사옥 6층의 응접실 겸 회의실에는 몸을 편안히 기댈 수 있는 나지막한 의자 10여개가 마주보고 있고 그 사이 탁자 아래에 바둑판 세트 3개가 놓여 있다. “매주 화요일 (김병익 김주연 등) 1세대 선배들이 오후 서너시쯤 여기에 나와 얘기를 나누면서 바둑도 두고,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 주 대표는 “예전엔 10~12명 정도였는데, 요즘은 10명 안팎”이라며 “(이인성 정과리 홍정선 등) 2세대는 금요일에 모인다”고 했다. 근 40년간 지속돼 온 이 모임은 문지만의 중요한 전통이자 공동체적 기반이 됐다.

이런 과정을 거친 세대별 편집(계간)·경영(출판사) 승계와 집단적 논의 및 민주적 결정방식, 이것이야말로 “문지를 늘 젊고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호메오스타시스(항상성)의 토대로, 최대의 강점이자 동력”이라고 주 대표는 말했다. 1세대에 속한 문학평론가 오생근도 이 세대별 집단승계 방식을 “시장주의를 넘어선 초시장주의적 시스템”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성장과 발전을 가져다준 문지의 차별성이자 경쟁력이라고 했다.

문지 정체성의 근간인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은 지금 (강동호 금정연 등) 30대 초중반인 4세대가 맡고 있는데, 이들이 계간지 편집을 맡을 때 (이광호·우찬제) 등 40대 중후반의 3세대는 주 대표처럼 잡지 편집에서 손을 떼고 단행본을 내는 출판사 경영을 떠맡았다. 출판사 일도 대표 등 보직은 60살까지다. 따라서 주 대표가 출판사 경영 일선에서도 물러나야 할 60살 무렵 40대 중후반이 된 4세대가 계간지에서 손을 떼고 출판사 경영을 맡게 된다. 계간지 편집은 뒷세대 자율에 맡긴다. <문학과사회> 본책과 ‘세대론-픽션’이란 제목의 별책 <문학과사회 하이픈> 두 권으로 분권하는 파격적인 편집을 선보인 계간지 2016년 가을호에 대해서도 “(내부에서) 말들은 많았지만 4세대의 시도를 인정했다”고 주 대표는 말했다.

앞세대는 60살이 되면 경영을 맡게 될 후배 세대에게 보유 주식 대부분을 넘겨주는데, 출판경영 기획위원들은 2천 주 이상씩 보유해야 한다. 주 대표는 한 번도 배당한 적 없는 주식 보유 이전은 손익과 무관하다며, “공평과 분산을 특징으로 하는 편집·경영 승계 관련 규정은 상당히 세밀하게 돼 있다”고 했다.

이런 원칙은 1994년 문지가 주식회사로 전환할 때 완성됐다. <창비>보다 4년 늦은 1970년에 <문지>가 창간되고 1975년에 출판사 문지가 설립됐다. 1980년에 신군부는 ‘발행목적 위배’를 이유로 <문지>와 <창비> <뿌리깊은나무> <씨알의소리> 등을 폐간시켰다. 1988년에 복간할 때 <문지>는 <문학과사회>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4년에는 인권변호사 황인철이 발행인이던 문지가 주식회사가 돼 김병익이 2000년까지 대표직을 맡았다. 이후 계간 편집과 출판사 경영 승계는 세대에서 세대로 매우 규칙적으로 이뤄졌다.

세대별 매주 모임은 두 달에 한 번 모이는 출판편집인회의의 연장이기도 하다. 단행본 출판 관련 의견들을 주고받는 이 회의에는 65살까지 참석할 수 있다. 하지만 비상근 이사(10여 명)로 75살까지는 이사회에 참석해 회사 중요 결정에 의견을 낼 수 있다.

창비와 함께 ‘차이나 모델’을 연상시키는 지도부 집단승계 방식의 문지 승계 시스템은 주 대표의 지적처럼 창비보다 더 치밀하고 철저해 보인다. 이는 후손의 능력·의지와 관계없이 가족 경영 승계 쪽으로 점점 더 기울어가면서 1세대의 성공 뒤 급속히 퇴락 조짐을 보이는 다수의 한국 출판사들에 견주면 더욱 돋보인다.

주 대표는 연세대 생화학과를 나와 서울대에서 과학사로 석사를 받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에서 환경학을 공부했다. 문지 대표 중 첫 이공계 출신으로, 이례적이라는 시선을 받기도 했던 그는 1990년대 중반 문화 무크지 <이다>를 낼 때부터 문지 3세대로 활동해왔다. 문학을 중심으로 인문·사회 담론들까지 포괄했던 1세대 이후 문학 쪽 비중이 커져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사회 변화와는 거꾸로 시야가 협소해지는 데 대한 반성이 일면서 ‘문학과 지성’이라는 두 날개의 ‘지성’ 부분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던 게 그의 등장 배경이자 향후 과제다. 작은 규모 때문에 경쟁에서 밀리는 한국 출판의 왜소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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