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주의 시인, 이장욱
내 인생의 책
그것은 내 인생이 적혀 있는 책이었다. 어디서 구입했는지
누가 선물했는지
꿈속의 우체통에서 꺼냈는지 나는 내일의 내가 이미 씌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따라
살아갔다.
일을 했다.
드디어 외로워져서 밤마다 색인을 했다. 모든 명사들을 동사들을 부사들을 차례로 건너가서
늙어버린 당신을 만나고
오래되고 난해한 문장에 대해 긴 이야기를 우리가 이것들을 해독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영
눈이 내리고 있기 때문
너무 많은 글자가 허공에 겹쳐 있기 때문 당신이 뜻하는 바가 무한히 늘어나는 것을 지옥이라고 불렀다. 수만 명이 겹쳐 써서 새까만 표지 같은 것을 당신이라고
당신의 표정
당신의 농담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이상한 꿈을 지나서 페이지를 열 때마다 닫히는 것이 있었다. 어떤 문장에서도 꺼내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당신은 토씨 하나 덧붙일 수 없도록 완성되었지만
눈 내리는 밤이란 목차가 없고
제목이 없고
결론은 사라진 나는 혼자 서가에 꽂혀 있었다. 누가 골목에 내놓았는지
꿈속의 우체통에 버렸는지
눈송이 하나가 내리다가 멈춘
딱
한 문장에서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2016) 수록
누가 선물했는지
꿈속의 우체통에서 꺼냈는지 나는 내일의 내가 이미 씌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따라
살아갔다.
일을 했다.
드디어 외로워져서 밤마다 색인을 했다. 모든 명사들을 동사들을 부사들을 차례로 건너가서
늙어버린 당신을 만나고
오래되고 난해한 문장에 대해 긴 이야기를 우리가 이것들을 해독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영
눈이 내리고 있기 때문
너무 많은 글자가 허공에 겹쳐 있기 때문 당신이 뜻하는 바가 무한히 늘어나는 것을 지옥이라고 불렀다. 수만 명이 겹쳐 써서 새까만 표지 같은 것을 당신이라고
당신의 표정
당신의 농담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이상한 꿈을 지나서 페이지를 열 때마다 닫히는 것이 있었다. 어떤 문장에서도 꺼내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당신은 토씨 하나 덧붙일 수 없도록 완성되었지만
눈 내리는 밤이란 목차가 없고
제목이 없고
결론은 사라진 나는 혼자 서가에 꽂혀 있었다. 누가 골목에 내놓았는지
꿈속의 우체통에 버렸는지
눈송이 하나가 내리다가 멈춘
딱
한 문장에서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2016) 수록
눈 내리는 밤의 서가에서 모든 것은 눈이 내리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매순간 다른 형태와 풍경으로, 예측도 해석도 불가능하게, 정확한 재현은 어림도 없이, 영원히 일회적인, 돌이킬 수 없는 짧은 현존과 사라짐의 무한함으로. 내리는 눈 앞에서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셀 수 없는 그러나 유한한 눈송이들이 만들어 내는 무한한 풍경에 대해, 저 많고 어지러우며 연약한 ‘있음’들이 무심히 받아들이며 투신하는 단 하나의 미래인 ‘없음’에 대해, 하얗고 차가운 ‘적막’에 대해, ‘나’라는 존재가 내리는 눈발 속에 섞여 있는 하나의 눈송이에 불과하다면 더더욱. 이장욱은 자신이 쓰는 모든 글의 운명이 ‘흩날리는 눈발’에 대한 사족이며, ‘눈 내리는 밤, 텅 빈 서가’에서의 알 수 없는 독백이라고 고백하거니와(그는 한때 ‘고백의 제왕’을 흠모한 적도 있으니), 그의 뒤를 따라 쓰는 이 미력한 해설(?)은 사족의 사족이며 모호한 주석에 대한 더 모호한 주석이 되기로 한다. 사실,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읽고 쓰는 것과 살아가는 것. 활자들과 존재들. 문장들과 그 문장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삶과 세계의 모든 것. 이장욱은 ‘눈송이’의 비유를 통해 이 둘의 오랜 간극을, 지울 수 없는 거리를, 그것을 지우거나 지우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한없이 가깝게 만든다. 세계의 모든 각각의 것들과 그들의 불가해한 공존을 읽어내(지 못하)는 일이 곧 이장욱에게는 살아가는 일이며 시를 쓰는 일이다. 그는 자주 “무엇을 읽은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있으며, “빈 의자”와 “밤하늘”과 “어긋나는 눈송이들”과 “먼 데서 잠든 네 꿈을” “읽은 것이 틀림없다”고 스스로를 위무한다.(‘밤의 독서’) 이장욱에게 시 쓰기는 타인과 자신에 어떤 질서나 해석도 덧입히지 않으려는 노력이며, 그 불가능한 발걸음이다. 점점의 활자들, 각각의 존재와 삶들, 흩날리는 눈송이들의 궤적을 다만 응시할 뿐인 그는 무해석의 주체로 남기를 원한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무해석의 말들이 어떤 해석보다도 명료하고 아름다운 역설. 모든 것은 눈이 내리기 때문이고, 우리들 각자가 하나의 눈송이이기 때문이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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