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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대목 추위’에 부디 따뜻하세요

등록 2016-11-25 19:30수정 2016-11-25 19:59

[토요판] 오수진의 시
겨울 초대장    신달자

당신을 초대한다
오늘은 눈이 내릴지 모른다
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
당신을 위해서

어둠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내 힘이 비록 약하여
거듭 절망했지만
언젠가 어둠은 거두어지게 된다

밝고 빛나는 음악이 있는 곳에
당신을 초대한다
가장 안락한 의자와 따뜻한 차와
그리고 음악과 내가 있다

바로 당신은 다시 나이기를 바라며
어둠을 이기고 나온 나를 맨살로 품으리라

지금은 아침 눈이 내릴 것 같은
이 겨울 아침에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

눈이 내린다
눈송이는 큰 벚꽃잎처럼
춤추며 내린다 내뜰안에 가득히
당신과 나 사이에 가득히
온누리에 가득히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리고 새롭게 창을 연다
함박눈이 내리는 식탁 위에
뜨거운 차를 분배하고
당신이 누른 초인종 소리에
나는 답한다

어서 오세요
이 겨울의 잔치상에

거리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봐도 그렇고, 달력을 4계절로 나눠 보아도, 가을이 아직은 우리 곁에 머물러야 할 듯싶은데, 성격 급한 계절의 시계는 이번에도 한걸음 더 앞서 걸어갑니다. 혹독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폭염을 견뎌내면서, 애타게 기다렸던 가을인데- 안 그래도 여느 계절보다 짧아서 아쉬운 가을인데- 그마저도 여유롭게 즐길 새 없이 추위가 찾아왔는데요.

사실 이렇게 강한 추위, 폭염, 폭우 등이 나타난다는 예보가 나왔거나, 그 밖에도 환절기같이 날씨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작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는 때가 되면 열흘 전부터 저를 비롯한 제 직장 동료들은 바짝 긴장을 합니다. 혹시나 예보가 또 빗나가지는 않을까, 정말 예보대로 많은 비나 눈이 쏟아지면 어쩌나, 10~20분마다 업데이트되는 기상특보 지역을 다 외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한가득이고요.

제 경우에는 작년부터 특이기상 상황이 나타나는 날이면, 깜깜한 밤 9시 뉴스에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야외로 나가서 날씨 중계를 하고 있는데,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비를 쫄딱 맞거나, 머리가 날려 카메라를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을 맞서야 할 때, 그리고 매일매일 나가도 적응 안 되는 한파가 이어지는 날이면 하늘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사실 천기를 누설하면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이렇게 날씨를 날씨 그대로 즐기지 못한다는 점이 제가 회사에 입사하고 가장 아쉬운 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폭염의 열대야는 시원한 치맥(치킨과 맥주)으로 날려버리면 되고, 비가 오면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구수한 파전과 막걸리를 즐기면 그만일 텐데, 참 어렵습니다.

이제 저를 비롯한 기상캐스터들은 ‘대목’을 앞두고 있습니다. 벌써 올가을 최저 기온을 경신하기 시작했고,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러 들어간다는 절기 입동도 지나 추워질 일만 남았습니다. 봄가을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바쁘기 때문에 겨울을 우스갯소리로 대목이라고 표현하고는 하는데요.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신달자님의 ‘겨울 초대장’을 골라봤습니다.

왠지 차갑고 날선 바람이 느껴지는 다른 겨울 시와는 다르게 따뜻한 난로 옆에서 꽁꽁 언 몸을 녹이며 읽는 듯한, 온화한 분위기 속으로 누군가를 초대하고 초대받으며 마음과 마음을 서로 나누는 장면이 연상되었기 때문인데요.

겨울 채비를 미처 하기도 전에 찾아온 추위에 이런저런 뉴스들로 마음까지 벌써 얼어버린 요즘, 하루빨리 모든 것이 제자리를 되찾아 올해 겨울을 부디 포근하게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오수진 KBS 기상캐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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