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아스팔트 위에서 찬 겨울 내내 추워서 어떡하나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입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제 지난 세월 누적된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열린 셈입니다. 대충 무마하거나 덮지 말고 이참에 제대로 갈아엎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가 보았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이 꽤 많아 보였습니다. 광화문 집회에 나오려고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주제는 참담했지만, 이만한 민주주의 학교도 없겠다 싶었습니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겨울을 강인하게 버티고 선 사람들을 보면서 어릴 적, 대보름 무렵이면 어김없이 논둑을 태우던 어른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처럼 농약을 많이 쓰지 않았던 과거에는 농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벼메뚜기, 벼멸구 같은 곤충들이었습니다. 일일이 손으로 다 잡을 수도 없고, 한번 잘못 번지면 일년 농사 도로아미타불 되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봄이 오기 전에 해충이 풀줄기에 낳아 놓은 알을 태우기 위해 논둑에 불을 놓곤 했습니다. 까맣게 그을린 논둑은 볼썽사나운 풍경이 아니라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농부들의 굳건한 마음이었습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봄을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겨울의 한복판에서도 오는 봄을 맞이할 불길을 피워 올렸던 농부의 지혜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 더디게 오는 봄을 마중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겨울이 가면 어김없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봄이 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때로 그 추위가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봄이 오리란 걸 알면서도 그게 언제인지 몰라 답답할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뎌, 봄을 준비했던 농부의 마음으로, 더디게 오는 봄을 마중 나가면 좋겠습니다.
변호사가 되고, ‘재심 전문 변호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국 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 사건의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질 리 없다는 이야기도 숱하게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짓지도 않은 죄로 10년, 5년 갇혀 살았던 억울한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했습니다. 그이들의 시린 아픔에 공명하고 싶었습니다. 경찰의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살인을 허위 자백했던 열다섯살 소년의 공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배움이 짧고 가난했던 지적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변호를 받지 못해 형을 살아야 했던 억울한 시간들을 생각했습니다.
재심 청구서를 쓸 때도 그렇습니다. 한 번 청구서를 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보충서를 계속해서 추가 제출합니다. 재판부에서 새롭게 주목할 만한 사실들이 발견될 때마다 보충서를 내면서 재심을 받아들여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차가운 시절을 견뎠던 것 같습니다.
이성부의 시 ‘봄’은 제가 태어나던 해 발표된 작품입니다. 오래전에 쓰인 시입니다만, 지금 우리 곁에서 타오르는, 생동하는 촛불의 시대에 다시 읽자니 그 의미가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사람’, 그 봄을 기다리며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선한 봄을 앞당기는 역사의 마중물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이가 들어 준 촛불로 앞당겨진 봄을 공짜로 누리지 않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좋은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동한다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하워드 진의 말입니다. 겨울이 아무리 엄혹해도 봄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그 봄을 앞당기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두 팔 벌려 맞이할 봄은 기어이 올 것입니다.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