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 주의 시인, 안상학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는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
그때 그곳에서 뿌리 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 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이 봄처럼 돌아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그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시집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실천문학사, 2014) 수록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는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
그때 그곳에서 뿌리 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 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이 봄처럼 돌아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그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시집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실천문학사, 2014) 수록
그대와 나, 서로의 부재를 채우는 사랑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그 사람은 돌아왔고, ‘나’는 거기 없었다. 안상학은 지나온 삶의 깊은 회한을 이렇게 적는다. 그대가 돌아왔으나 나는 이미 떠났고, 그대가 거기 있었으나 나는 거기 없었다. 많은 시들이 떠나간 그대를 슬퍼하고 기억하거나, 돌아올(돌아온) 그대를 희망하고 환영하는 것과는 좀 다른 양상이다. 요점은 그대와 내가 같은 시점에 정반대의 서술어를 사용했다는 것. 그대와 ‘나’의 서술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시에서나 삶에서나 흔한 일이지만, 이처럼 정확히 엇갈리는 경우는 남은 생을 두고두고 통탄할 만큼 치명적인 것이다. 이 ‘시점의 배반’을, 그대와 나의 ‘서술어의 불일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대와 나의 마음이 다른 것도, 그대와 내가 즐겨 쓰는 동사와 형용사들이 다른 것도 아닌 듯한데 말이다. 그대와 ‘나’는 같은 시점 다른 곳에 있고, 다른 시점 같은 곳에 있다. 그대와 나는 같은 시점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시점 같은 일을 한다. 이 정교하고 고독한 엇갈림 속에서 나는 그대가 떠난 자리에 있고, 그대는 내가 떠난 자리에 있다. 그대의 부재를 채우는 것은 나이지만, 나의 부재를 채우는 것은 그대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시들이 쓰이지 않았을 것이고, 그 많은 노래들이 불리지 않았을 것이며, 그 많은 촛불들이 궤도를 지닌 별처럼 매주 거리를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이 헐겁고 아름다운 연대의 이름은 ‘사랑’이다. 안상학은 사랑의 시간과 장소가 일치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지만, 그의 슬픔은 이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질책으로 화한다. 나는 왜 그때 그곳에 있지 않았던가/못했던가. 자신을 질책하는 자는 그대의 부재가 아닌 나의 부재를 심문한다. 그대가 언제 어느 곳에 있든, 어떤 서술어를 사용하든 문제는 언제나 그 이상의 무엇이다. 핵심은 나의 부재를 ‘있음’과 ‘행위’로 바꾸는 것. 나의 위치와 행위를 조금 바꾸자 그대와 내가 이루고 있는 세상과 삶의 구조가 바뀐다. 2016년, 우리가 함께 행한 것은 이 작고도 거대한 위치 이동이며 구조 변경이다. 서로의 부재를 채우는 ‘사랑’이 있어 가능했던.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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